꽃과 산 27년, 공예가로 거듭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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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산 27년, 공예가로 거듭날 준비
  • 송진선
  • 승인 2001.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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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공예가 최 월 성(회북 고석)씨
생면부지의 보은땅에 귀향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농촌의 한 아낙이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시골에다 멋진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단순히 살기위해서 시골까지 들어온 그 아낙은 한때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꽃디자이너였다. 피부도 고운 유명 꽃디자이너가 시골아낙으로 변신하기까지 그리고 꽃 공예가로 다시 서기까지 그녀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소설같았다. 이름은 최월성, 48세이다. 97년 회북면 고석리로 들어와 한 허름한 돌기와 집에서 중학교 1학년인 딸과 단 둘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고향 제주도에서 가정 형편상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뭍으로 나와 어린나이에 안해본 것 없이 고생을 하던 20세 때 서울에서 우연히 꽃꽂이 강의를 듣고는 꽃에 빠졌다. 매일 연탄 한 개를 사서 불을 지피고 땟거리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했던 70년대 그녀는 월급의 상당 부분을 수강료로 갖다 받치면서 꽃꽂이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청주에 꽃집이 8개 밖에 없었던 83년경 공단 쪽에 9번째로 꽃집을 개업했다. 생면부지였기 때문에 장사가 잘안돼 야심이 절망으로 바뀌기 시작할 즈음 꽃꽂이 강습을 시작했다. 이후 88년 청주가 본거지인 은혜플라워 디자인회라는 전국단위 조직도 만들었다.

일본에서 국제전시회도 갖고 세계 대학생미인선발대회 등에서 부케쇼를 펼치는 등 꽃예술가로 손꼽히는 주자였다. 수강료로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자선 전시회도 개최하는 등 봉사활동도 전개, 꽃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녀 수하에게 꽃꽂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만원을 이뤘다.

꽃에 미쳐(?) 몸이 병들어 가는 줄도 몰랐고 꽃가루 알레르기성 천식이라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던 97년, 주위를 정리하니까 화려하고 왕성하게 활동했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 앞에 남은 것은 또다시 가난이었다. 간신히 회북면 고석리 한 허름한 농가를 겨우 살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등재된 재산이라며 정말 만족해 했다. 뒤꼍에 삼동추와 파도 심고 화분에 옮겨 심은 야생화를 돌보고 닭도 키우고 들에 핀 야생화로 눈요기를 하고 산수유, 찔레꽃, 민들레 꽃을 따서 말리기도 하는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그동안 꽃속에 파묻어 놓았던 소설같은 인생을 꽃이야기를 집필하며 드러내고 드라이 플라워 공예가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여기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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