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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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이야기
  • 김철순 시인
  • 승인 2015.01.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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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 집엔 소랑 돼지랑 닭은 키웠어도 개는 키우지 않았다. 엄마의 말로는 우리 집에서는 개가 잘 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아무튼 나의 기억으로는 단한 번도 개를 키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고양이는 무서워하기 까지 했다.
그런 내가 반려견을 12년 가까이 키우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예뻐하면서 말이다. 12년 전 봄날 어느 날, 남편이 작은 갈색의 강아지를 안고 들어왔다.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들고 온 터라 화부터 냈다. 만약 상의를 했다면 분명 나는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강아지가,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강아지가,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주유소를 하는 집에서 시츄인 개를 키우는데,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아 4마리는 20만원씩 팔고, 이 강아지만 눈이 짝짝이라 팔지 못하고 있는 것을 10만원에 사왔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눈이 짝짝이였다. 한쪽 눈이 하얗고 눈동자가 또렷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 눈이 무서워 강아지 눈을 자꾸 피했다.
한 달이 조금 넘은 강아지는 작은 상자를 주니 거기가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자고, 졸졸 따라다니며 예쁜 짓을 했다. 그 예쁜 짓에 내 마음은 누그러지고 자꾸만 강아지에게 마음이 갔다. 마음이 열리니 이제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어떤 이름이 좋을까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처음 갈색이던 강아지 털이 어느 정도 지나자 회색빛으로 바뀌었는데, 그럼 은색털이니 은비라고 이름을 짓자고 했다. 그렇게 은비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남편은 자기 성을 따서 한은비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커서 모두 떠난 휑한 집에 은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삶에 활력소가 되었다. 나갔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반기고, 혼자 하기엔 멋쩍은 산책길에 은비는 동무가 되어주었다.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를 때면 배낭에 넣어 업고 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냥 걸려서 산에 올랐다가 진드기가 올라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 집에 가서 자고 올 때면, 은비가 눈에 아른거렸다. 남편보다 더 걱정되고 보고 싶기도 했다.
은비 때문에 개나 고양이를 싫어하던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은비 때문에 내 감성이 더 풍부해질 수 있었고, 내 삶이 풍성해질 수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동시를 쓰는지 모르겠다. 나의 영향으로 내 딸들도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내가 일하는 약국에는 출근하자마자 나를 반기는 고양이가 있다. 뚱뚱해서 내가 뚱땡이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출근을 하면 쏜살 같이 달려온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 녀석에게 사료를 주는 일이다. 검은 털에 가슴에는 하얀 무늬가 있는 고양이인데 길고양이다.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약사님과 함께 약국 주위를 서성거리는 길고양이들에게 약국 뒷마당에 사료를 주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뚱땡이는 등에 상처가 나있어서 약사님이 연고를 발라주곤 했더니, 붙임성이 있어서 사료를 먹고는 사람 가까이 다가와 부비기도 하고 난로 옆에서 졸기도 하면서 놀다가곤 한다. 예전 같으면 고양이가 무서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던 내가 이제는 고양이를 예뻐하며 밥을 챙기고 있다. 아마 이것도 은비를 키우면서 동물을 가까이한 덕분인지 모르겠다.
텔래비젼에서 버려진 반려견을 볼 때면, 한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그 개가 가엾어 눈물이 난다.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어떻게 버릴 수 있는지 마음이 아프다. 또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도 이해를 못하겠다. 동물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결코 잊지 않는다. 주인의 목숨을 구하고 죽은 개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은비를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보살펴 주리라. 은비는 나의 가족이니까. 가족은 그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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