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 自恨 / 매창 이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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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 自恨 / 매창 이계랑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4.12.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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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5】
사랑을 모르던 한 여인이 사랑을 알았다. 가슴에 품고 있는 시를 통해 정을 주고 정을 받았다. 수많은 남자들의 유혹이 있었건만 모두 뿌리치고 고이 간직했던 마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임은 한양으로 시인은 지방 부안에 남았다. 예고된 이별이었지만 밤이면 밤마다 그리움과 사무침만 남았다. 봄날이 너무 추워 겨울옷을 손질하는데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려 꿰매고 있는 바늘과 실을 적셨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恨(자한) / 매창 이계랑
봄날이 매우 추워 겨울옷을 꿰맵니다
사창(紗窓)가 햇살 한 줌 살며시 비처오니
옥루가 바늘과 실 적시어 손길 따라 맡긴다네.
春冷補寒衣 紗窓日照時
춘냉보한의 사창일조시
低頭信手處 珠淚滴針絲
저두신수처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自恨)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매창(梅窓) 이계랑(李癸?:1573~1610)으로 부안 아전이었던 이탕종의 첩 태생이다. 어려서 한문을 배웠고, 거문고 타기를 즐겼다. ‘향금’이었는데 기생이 된 후로 ‘계량’으로 바꾸고 ‘매창’이라 했다. 위 한시를 번역하면 [봄날이 추워 겨울옷을 꿰매고 / 사창에는 햇살이 비치는구나 /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 옥루가 바늘과 실을 적시네]라는 시상이다.
매창의 이 시에서는 유희경이 떠나고 없는 봄은 너무나 추웠던 모양이다. 추울 때 입던 옷을 다시 꺼내어 수선하면서도 그리운 마음에 바느질은 되지 않아 눈물만 흘리는 서러움이 진하게 베여 있다. 남해로 유배 온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 생신날 지은「사친시(思親詩)」를 연상하는 다음 글이 전한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워 글을 쓰자 하나, 글을 쓰기도 전에 눈물이 가득하구나] 마치 유희경 역시 전쟁 중이라 만나지 못하는 매창을 그리워하면서 여러 편의 시를 지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인은 지금 바느질을 하고 있다. 봄날임에도 날씨가 추워 겨울옷을 꿰매는 시간에 창문으로 햇살이 새들어 온다. 옷이야 어떠하든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구슬 같은 눈물이 바늘과 실을 적신다고 했다. 여자의 깊은 심회를 읊고 있다.
화자는 비록 옷을 꿰매고는 있지만 마음만은 서러운 임 생각에 사무쳐서 옷이 어떻든 아무렇게나 꿰매고 있으니 구슬 같은 눈물만이 손길 가고 있는 바늘과 실에 촉촉이 적시고 있다고 했다. 여자의 깊은 심정을 나타내는 심회를 본다.
【한자와 어구】
春冷: 봄날에 춥다. 補: 꿰매다. 寒衣: 겨울옷. 紗窓: 얇고 성기게 짠 비단으로 바른 창문. 日照時: 해가 비칠 때에. // 低頭: 머리를 숙이다. 信: 믿다, 맡기다. 手處: 손길 가는 대로. 珠淚: 구슬 같은 눈물. 滴: 적시다, (눈물이)적시다. 針絲: 실과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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