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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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별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4.11.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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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사무소엔 형형색색의 국화들이 화사한 빛으로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젠 조금 퇴색되기는 하였어도 아직은 그런대로 제 빛을 지니고 있어 고맙다. 지난주에는 충남 서산의 국화 축제에도 가보았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애써 가꾼 손길을 생각 하면 그보다 한결 친근한 정감이 느껴진다. 봄부터 가을 내내 주민 자치 교실에서 틈틈이 가꾼 것들인데 꽃을 피우면서 지금까지 야생화 동산과 어우러진 국화의 송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추의 빛을 그윽한 향의 정취로 머물게 하여 저마다의 그리움을 자아내주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차가운 날씨의 시샘이 그 그리움마저 떨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쌀쌀한 날씨 속에 찬 서리를 맞으면서도 잘 견디어내고 있지만 이제 곧 달려오고 있는 겨울 발굽에 유린당할 터이니 서글픈 연민이 앞서기도 한다.
지난 달 말 윤 9월 초닷새 날 초승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는 저녁 이 동산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날씨는 조금 쌀쌀하였어도 그리고 무대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여기에 정이 모였으니 모두가 반갑고 즐거운 밤이었는데 특히 성악가 하유정님이 특별 출연하여 불러준 이별의 노래는 깊은 가을밤의 정서를 아름답게 수놓아 주어서 지금 까지도 여운이 남아 있다,
“이별의 노래”는 알려진 대로 시인 박목월님이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라고 했는데 이는 빗나간 사랑과의 이별을 하고서 쓴 시에다 작곡가 김성태님이 곡을 붙여서 모든 사람들이 애창 하게 된 우리의 가곡이지만 간결 하면서도 애절하게 이별의 아픔을 묘사한 시어의 노랫말과 곡은 항상 그리움을 자아내게 하여 가을 음악회에서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로 등장 하고 있다.
이별은 마음을 아프게 하기 마련이다. 후일 다시 만날 기약이 있는 이별도 있겠고 때로는 서로가 축복 해 주면서 보내고 남는 이별이 있겠어도 아름다운 이별일수록 그리움은 더하듯이 문득 문득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첫사랑의 이별이든지 이 가을 마지막 잎새가 앙상한 가지에 이별을 고하고 바람 따라 가듯이 다시 못 볼 슬픈 이별도 있으니 때가 되면 이러한 이별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가까이 지내는 이의 부인께서 이 땅의 생과 이별을 하고 영원한 여정의 길을 떠났다는 부음을 접하고는 몇몇 친지들과 함께 조문을 다녀왔다. 팔순이 다 되어 사별 하는 것이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어도 고락을 함께하며 평생을 살아온 반려자를 영면의 세계로 떠나보내는 남는 이의 설움은 돌아서서 조객들 몰래 눈물을 찍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엿 볼 수 있었다. 만추의 석양 노을이 아름다워도 어둠에 묻히듯 이토록 마음 저려 절실한 이별은 보내는 이의 마음을 위로 해 주는 것으로 치유 해 주지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날씨가 꽤 추워졌다, 한낮은 그런대도 따사롭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외투가 생각 날 만큼 추워진 것이다. 절기로도 입동이 지났고 빛 고운 석양이 산 그림자를 소리 없이 내려주어도 추수가 끝난 빈들엔 휑한 바람만 지날 뿐 고요한 적막감에 싸여 풍요로운 가을의 모습은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젠 겨울이라 해도 누구라도 부정은 않겠지만 아직은 눈이 내리지 않았고 가을의 주인인 국화도 내게 이별을 고하지 않고 있으니 나도 가을과의 이별을 미루어 온 것이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기겠다는 영랑처럼 나도 뜰의 국화가 내게 이별을 고하는 날 가을을 보내 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을을 떠나보내려는지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가을비라 할지 겨울비라 할지 망설이게 하여도 아직은 내가 가을을 품고 있으니 가을비라 하겠는데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날씨가 더 추워지겠다고 하니 그러면 나도 이 비와 함께 가을을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 이별의 시간이 되었다면 보내주어야지, 나도, 떠나는 이 가을도 서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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