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화가의 꿈, 이제는 공공미술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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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화가의 꿈, 이제는 공공미술가를 꿈꾼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4.08.2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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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이사람-이광섭(상업미술사 대표)
보은읍 보청천에 조성된 하상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벽에는 우리 전통의 풍속화를 비롯해 보은대추, 황토사과등 다양한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딱딱한 콘크리트벽이 이 풍속화로 인해 친근감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일까? 타 도시에서만 보던 벽화가 보은군 일원 여기저기에 그려지는 모습에서 도대체 누구의 그림일까하는 궁금증을 들게 했다. 이 벽화, 풍속화를 그린 보은의 상업미술사 이광섭(69) 대표를 만나 손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편집자 주> 



▲ 40여년이 넘게 그림을 그려온 이광섭 대표.
그림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학창시절입니다. 보은중학교 재학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당시 미술반 선생님으로부터 청주상업고등학교 입학을 제안하셨습니다. 충북에서 청주상고의 미술반이 최고의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을 때 상업고등학교라기 보다는 미술반만을 보고 청주상고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상고에 입학해보니 그림보다는 학업을 소활히 할 수 없었고 주판, 부기등에 소질이 없어서 인지 1년만에 보은농고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은농고를 졸업하고 타고난 소질이 미술이었던 저는 서울에 소재한 합동영화촬영소에서 세트제작에 필요한 그림을 맡아서 그리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영화간판쟁이, 영화촬영에 필요한 배경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면서 1년만에 책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합동영화활영소에서 1년을 근무했을까 직장상사의 도움으로 직업학교였던 홍익전문학교에서 1년 동안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군대를 입대하면서 흔히 말하는 챠트병, 군사교육을 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챠트나 현황판을 제작하는 챠트병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군복무 당시에 제가 제작한 챠트가 박정희 장군에게 브리핑하는 챠트를 제작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3~4일 걸리는 챠트를 밤을 세워 7~8시간만에 제작한하는 등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후 상주에 미술학원을 겸한 제 이름을 붙혀 ‘광섭상업미술사’ 라는 상호를 걸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던중 이왕이면 외아들이었던 저로써는 부모님이 계시는 보은으로 옮겨 오늘날까지 42년을 ‘상업미술사’ 라는 간판을 걸고 그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상업미술사를 운영하면서 손으로 만들거나 손으로 그리는 그림은 자신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자신감이 ‘실사출력’이 나온면서 사업에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글씨와 그림으로 출력하는 실사출력이 보급되면서 타 업종으로 전향도 생각했지만 수십년해온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없었고 현수막이 아닌 직접 손으로 그리고 제작하는 대형광고판이나 조형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대형광고 조형물의 경우 수의계약이 아닌 공모전이나 사업제안에 대한 경쟁으로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지업체와의 경쟁은 불가피했습니다. 보은군에서만 작은 일만을 해오던 저로써는 또한번의 도전의 기회가 되었고 결국 이 기회는 저한테는 평소의 그림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실사출력이라는 위기에서 제가 그리는 그림을 믿고 타지역 대형광고 업체와의 경쟁속에서 제 그림이 인정받게 되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10년전 보은에서 삼승면으로 향하는 국도변에 보은황토 농산물을 소개하는 대형조형물을 공모전을 진행할 때는 다른 경쟁업체는 모두 컴퓨터로 제작된 시안을 제출할 때 저는 제가 직접 그린 황토사과와 황토배를 그리면서 제안서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심사위원 대부분이 직접 그린 조감도를 보고 감짝 놀라 정도로 공모전에 당선된 경험도 있습니다.
또 지금은 국도 주변환경 차원에서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보은군청에 설치되었던 대형 광고판을 직접 수작업으로 그리면서 제작했던 일이 가장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제작한 마로면 적암리의 관광안내도 속리산에 설치된 관광안내도등 이제는 남부 3군 전체를 어우르는 관광안내도를 직접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런 관광안내도 및 지역 향토 특산물을 직접 그리면서 항상 기본, 초심을 잃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학창시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초심, 이 초심을 통해 직장 상사의 도움으로 홍익전문학교를 통해 배운 그림공부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찾아낸 분야가 벽화였습니다.
사실 벽화는 외국을 비롯해 타지역에서 도시미관 차원에서 수년전부터 시작한 작업입니다. 보은군은 근래에 와서 마을의 미관을 위해 그려지고 있어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보은군도 벽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탄탄한 기초와 실력을 바탕으로 시작한 상업미술, 상업미술사가 본연의 사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벽화 라는 점에서 사업이 하나 끝날 때마다 일의 보람은 두배로 다가옵니다.
▲ 보은읍을 가로지르는 보청천변 벽면에 이 대표의 풍속화가 고향의 정겨움을 더해주고 있다.
벽화작업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작업은 회남면 거교리 마을 벽화를 그릴 당시 예전 대청댐이 건설되기 전 수몰전 모습을 옛날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습니다. 벽화작업을 통해 직접 손으로 그림외에 직접 쓴 글씨, 손글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은군의 특산물에 역사적 사실에 접목시켜 보고 싶습니다.
벽화작업을 하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벽화가 몇 년이 지나면 지워지고 훼손될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 때문에 경시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벽화는 영구적인 작업이며 인위적인 훼손외에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작업입니다. 지역의 향토성을 살린 보은군만의 독특한 작업은 보은군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분야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청정한 자연환경의 보고인 보은군에 상태적 그림, 자연친화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기록화등 보은군을 상징할 수 있는 벽화작업을 통해 보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손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작업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는 트랜드라는 사실에 기회가 되면 많은 그림을 남기고 싶습니다. 상업미술이 아닌 공공미술, 공공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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