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아배총리의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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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아배총리의 망언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4.01.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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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87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고 일제가 36년간 통치하던 세대에 자라 우리나라 글도 제대로 못 배우고 자랐다.
나는 보은군 보은읍 강신 1구에 7번지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 어머니에게 우리 글자를 배우고 한글을 배울 땐 가자 기억하고 나자 기억하며 국문을 배웠다.
초등학교 일학년에 들어가 일본어를 배우는데 하나이에 이누라는 일어였다. 꽃집게라는 뜻으로 국어책이었다. 일제들은 우리 조선어를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고 우리 대한의 딸들을 광목공장에 데려간다고 하고 보은 삼산학교 운동장에 데려가 훈련을 시키곤 했다.
훈련을 시키며 데려간 곳은 정신대였다. 처녀들은 정신대, 청년은 군인 중년들은 진용, 참 비열한 한국인들에 최후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을 내 나이 17세에 이웃마을 뼈나 안속는 집으로 출가나 시킨다고 어린 나를 강신1구에서 등 넘어 김씨 문중으로 출가를 시켰다. 현재 살고있는 집이 어려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린 17살에 물을 길러야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하고 시부모님, 시동생 솜바지 저고리, 남편 옷 세벌씩을 고메어 입히고 두루마기 다딤이질 해서 꾀메는 반복된 생활의 시집살이였다.
고추장초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매운 삶은 없었다. 그러나 대동아 전쟁으로 놋그릇 목화솜 다 뺏어 일제들은 군용품 만들고 농사지면 공출하고 날마다 점점 더 전쟁은 치열해져 일제들은 홍콩, 싱가폴을 함낙하고 일본군가를 지어내어 학생들에게도 군가를 가르치고 하던 중 의기양양하던 일제들은 오키니와 히로시마에 미국에서 원폭두대를 투화하여 36년간 기세 만만하게 우리 대한민국을 막바지로 괴롭히다 어쩔 수 없이 소하는 항복하고 말았다.
해방이 되자 우리 국민의 함성은 하늘을 향하고 산천도 초목도 손뼉치듯 해방에 즐거운 음성들이 사무쳤다. 그때 그 기쁨은 버스도 가다쉬어 태극기를 흔드는 국민들이 만세를 외치면 차에서 내려서 만세를 불렀다. 소화가 기세만만하다 항복하니 일제들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이 36년간 통치한 것을 다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역사적으로 오랑케라는 누명아래 우리나라 순절한 여승들을 불법으로 데려가 참혹한 정신대로 몰아넣어 비참한 생을 보낸 여승들에 죄지은 일제진용으로 끌려가 해방 후 훗카이도로 얼어 죽으라고 보냈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철통같이 뭉쳐 눈이 지붕까지 쌓이는 추운지방에서 그 눈도 서로가 협력하여 다 치우고 똘똘 뭉쳐 우리학교도 세우고 우리국민성을 돋보이며 잘 살아간다는 실제 영화를 보았을 때 환호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일본아베에 망언에 우리국민들은 철저한 국민성으로 아베의 망언을 철저히 뒤돌아 볼 줄 아는 대한민국으로 다시금 새벽종을 울리는 시점으로 너도나도 일어나 새아침에 동참하여 밝아오는 해 노고지리 쉰질뜨는 상귀아니 일었느냐 네넘어 사래긴 밭도 갈고 지당에 비뿌리고 양류에 내끼이면 빈 배만 두지말고 사공은 배를 저어라.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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