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씨앗 한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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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속의 씨앗 한줌
  • 김종례 회남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14.01.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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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돌아온 청마의 해 첫 달이 어느덧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대의를 품었으면 그 목표점을 향하여 훌쩍 뛰어올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벽두새벽부터 청마질주 채마가편 등 행운의 메시지들이 날아와서 우리의 가슴을 활기차게 열어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작심삼일이나 조령모개를 반복하면서 나의 일월은 부리나케 하순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상의 커튼을 걷어 올려서 하루의 휘장을 내리기까지 어영부영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자신에게 다시 자문하기 알맞은 요즈음이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방안 정리를 하다가 서랍 속에서 작은 씨앗 봉투 하나를 발견하였다. 여름날 끝자락에서 열정의 부스러기들이 얼굴색 바래가며 슬며시 뒷걸음질 할 무렵, 마당을 정리하다 목화랑 백일홍 씨앗 한 움큼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일을 그 동안 깜빡하고 있었다. 손바닥에 작은 씨앗 하나를 올려놓고 오랫동안 눈 맞추기를 하면서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돋아나고,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 새삼 동시를 외우며 봄을 그린다. 올해도 봄을 기다리며 자신을 거두어 준 주인에게 수십 배의 보람과 열매를 돌려주려고 이 긴 겨울을 어두운 서랍 속에서 웅크리고 인내하는 작은 씨앗 하나! 새삼 잊었던 감사와 소망의 찬송이 나오기도 한다. 주님은 로마서에서 자칫 인간의 지혜가 교만을 범할까봐 ‘서로가 높은 데만 마음을 두지 말며....도리어 낮은 곳에 처하며....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하시며 경종을 울려 주셨다. 작은 것에 신비로운 보물을 많이 숨겨 놓았으니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캐내어 네 것으로 삼으라는 뜻이 분명하다. 자칫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의만을 고집하는 인생에게 큰 것에만 마음 두지 말고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라는 경고문일 것이다. 실개천이 흘러 폭포가 쏟아지듯이, 버터플라이의 날개짓이 모여 회오리를 일으키듯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을 옮기듯이..... 이 우주에는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일을 이루어내는 자연의 섭리가 가득하다. 그 작은 존재에 숨겨진 커다란 보물찾기를 희망한다면, 굳이 뜬구름과 같은 대의에만 목숨 걸지 않아도 우리 인생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에 커다란 비전과 대의를 품은 이는 분명 훌륭하고 특별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정신은 역동적인 청마처럼 기상이 있어야 하며, 그의 삶의 모습은 존재가치를 포용하며 세상적인 완성을 향해 질주하여야 한다. 그러나 ‘나의 큰 뜻이 이루어 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잘못된 방법이나 그릇된 모습이 되어도 좋습니다.’는 결단코 아니어야 한다. 그 품은 뜻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며, 대의를 품은 삶의 과정이 성실하였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며,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에 신의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자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작은 일에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작은 일에 커다란 관심을 쏟는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단조로워 질것이며 훨씬 행복해 질 수 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우리들의 가정과 일터가 작은 천국으로 회복되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한 해였으면 참 좋겠다. 이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경쟁의 시대에서 설령 돌파구 없는 아득한 절벽에 부딪치더라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 것이다.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 꺼져가는 작은 불씨 하나도 정성껏 다독거리며,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한 해가 되도록 기도하는 이들이 아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마음 설레며 맞이한 청마의 해! 작은 것들에 대한 소망의 불씨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겨울도 그리 무상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마당과 꽃밭을 바스락거리며 거닐어 본다. 어두운 서랍 속에서 침묵하며 봄을 기다리는 작은 씨앗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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