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건산에 핀 106세 노부모향한 고슴도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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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건산에 핀 106세 노부모향한 고슴도치사랑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4.01.16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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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각(수한면 교암리)씨
영하의 수은주로 천지사방 얼어붙는 엄동설한이지만 훈훈한 효심에 동장군마저 피해가는 곳이 있다. 바로 항건산 자락 밑에 아담한 둥지를 튼 공간에는 106세 노부와 치매를 앓는 94세 노모, 언제나 따끈한 구들장을 덥히기 위해 장작 같은 사랑을 준비하는 50대 아들이 함께 살고 있다. 부모봉양과 치매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매일같이 사회면 탑을 장식하고 있는 각박한 세태 속이지만 이들은 아침마다 서로 맞대는 얼굴, 어린아이 같은 투정마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부모자식 간 고슴도치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박홍각(52·보은군 수한면 교암리 거먹길 15-8)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대통령선거 때 지역최고령자로 한 표 권리행사
지난 대통령선거 때 지역의 최고령유권자로서 한 표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했던 부친 박순봉(106)옹은 “인생을 살면서 젤루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인데 집사람이 건강치 못해 그것이 가장 걱정”이라며 “그러나 아들이 이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을 맡아주어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갑오년에 맞는 새해아침, 봉양을 위해 5년여의 세월이 후딱 지나가버린 50대 막내아들의 한결같은 효심에 가슴 먹먹해진 노부(老父)는 이렇게 가슴에 품은 애틋한 고슴도치사랑을 내비쳤다.

4년간 ROTC장학금 받아 공부한 막내아들 대견
하루에도 몇 번씩 이상 정신을 내보이곤 하는 94세 노모는 맑은 정신을 선물 받은 듯 “우리아들요? 대학교 다니는 내내 돈 한 푼 안 들고 전액 장학금만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아들이 너무 착하고 대견스럽지요. 그리구 아픈 나를 이렇게 정성껏 돌봐주고 나이 많은 아부지 까지 봉양하는데... 나는 몸이 아파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것이 너무 안타깝고 간절해 속이 많이 상해요”라며 노모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4년 째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94)는 이 순간만큼은 아들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어쩌지 못해 가슴으로 고마움을 호소하는 듯 했다.

76년 해로하며 이불 덮어주기 등 일상 부부애 과시
“지금도 어머니는 정신이 맑을 때면 아버지의 양말이며 속옷 등 갖은 수발을 다하고 또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수발 없이는 생활이 곤란할 정도지요. 무조건 어머니가 해준 것만으로 생활하시니까요, 아버지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벽시간대 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밥을 떠먹여주는 등 일상에 불편을 겪는 어머니에게 도움 주는 것이 행복한 것처럼 보여요. 이것을 지켜볼 때 자식이 아무리 잘 한들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부애죠. 두 분이 정이 좋아 함께 천수를 누리는 것 같아 이를 바라보는 저는 오히려 행복해요.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두 분이 제 품안에서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곤 합니다.”

ROTC임관 후 23년6개월 근속정년 마치고 낙향
그는 보은삼산초(63회), 보은중(28회)을 거쳐 청주운호고, 충북대 생물학과를 나왔다. 대학재학시절, ROTC로 임관, 23년6개월 동안 전방부대 등 안 거친 곳 없이 근속정년을 마치고 군인장교로 전역했다.
“열네 살 때 부친을 여윈 3대독자아버지는 제사도 지극정성으로 조상 묘에 상석까지 준비하며 자식위한 마음 또한 극진했어요. 젊은 시절,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일하는 등 열심히 사셨으나 재산을 모으거나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한학을 비롯 주역, 풍수사상 등에 심취했던 아버지는 현실적인 문제는 무관심한 편이었어요. 4남3녀 중 막내였던 저는 어려운 살림에 돈 안들이고 학교공부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었어요. 그래서 대학시절 ROTC로 임관해 4년간 ROTC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과대표도 도맡아했어요. 고교3년 때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자취생활은 기본이었지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7남매를 키우느라 무척 고생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욱 큰가 봐요.”

낙향해 부모와 함께하는 생활자체가 행복과 보람
“저는 좋은 것도 해보고 외국서 생활도 해보고 모든 것 다해보았어요.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좋은 것 하나도 해볼 틈 없이 나이 들고 병이 들었어요,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두 분만 사시다가 연로해져 몸도 성치 않게 되었는데 당연히 자식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해 어렵게 결정한 것이죠. 남들은 어려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제가 부모님과 함께하면서 치유 받고 위로받을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부모님과 함께 생활 한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고 여유 있고 보람 있는 일이죠.”

막차 탄 송아지사업 10마리 키우다 3년 만에 정리
“시골로 내려와 소도 키워봤어요. 뒤늦게 막차 타는 바람에 송아지를 250만원 주고사서 시세가 떨어져 40만원에 팔았어요. 10마리 정도 키우다가 3년 새 모두 팔아치웠어요. 아무나 하는 농사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소 키우는 분들을 보면 아무래도 뭔가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지금은 편합니다. 인근에 직장을 잡아 다니고 있어요. 부모님께 드릴 따뜻한 조석과 군불을 지펴드리려니 직장이 필요해 짬을 내 다니고 있어요.”

방문요양 덕에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어 감사해
“노인장애인복지관 파견 방문요양(재가보호) 덕분에 편안히 일을 다니고 있어요. 요양사 누님이라 부르죠. 너무도 감사하고 생활일부를 도와주시니 너무 고마울 따름이죠. 거의 1년이 다되셨네요. 한 가족처럼 생각 들어요.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아버지도 판정을 받으셨는데 결과 나오는 대로 요양혜택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식사도 잘하시고 반찬도 가리지 않고 잘 드시지만 시간이 갈수록 먹는 것이 약해지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드네요. 주무시는 것처럼 품안에서 돌아가셨으면 하는 것이 또 다른 소망이지요.”

한 달에 한번 ROTC선후배모임은 또 다른 행복
“주로 만나는 모임에는 한 달에 한 번 서울가축병원, 나나약국 등 ROTC 7기선후배모임 8명이 모여요,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에 간직했던 이야기 등등 다양한 화제로 바람 한번 쐬고 들어오는 저만의 행복한 순간이지요. 최근 이날평생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신적 없는 아버지를 위해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행복한 소년이 된 듯한 느낌이더군요.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요. 큰아들이 가톨릭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죠. 착한 신부가 되게 해 달라 기도하지요.”
촌부로 살며 품속에서 부모님의 임종을 맞게 해 달라 기도하는 그의 효심은 언제나 서로 간 고슴도치사랑임을 깨닫는 순간 행복바이러스가 퍼져 감을 확인하고 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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