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환 깃든 공용버스터미널 45년 역사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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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애환 깃든 공용버스터미널 45년 역사의 산증인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4.01.09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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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영록·68) 새서울고속 소장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공용버스터미널에서 45년을 하루같이 교통과 관련한 대민서비스의 역사를 써온 장한 생활인이 있다. 거칠고 고된 성격의 배차업무를 맡아오면서도 14년째 새마을지도자로 봉직해온 그는 계절을 막론하고 소속버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이리저리 발로 뛰며 합의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도 마다않고 만능해결사 역할을 해온 그다. 두어 평정도 되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매일평균 2백~3백 명이용객의 안전지킴이 역할과 버스기사들의 대부로 살아온 그는 이제는 공히 버스터미널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재권(전 민원과장) 읍장의 남다른 노력으로 지역의 천덕꾸러기에서 현대식시설을 갖춘 보은의 새얼굴로 부상하며 외지인과 지역민에 환영받는 공용버스터미널로 거듭나기 위해 불철주야 발로 뛰는 김영환(영록·68·새서울고속) 소장을 만났다.〈편집자 주〉

열악한 시설로 승객에 미안했던 마음 이젠 내려놔
“아휴, 이제는 여름에 먼지 냄새 안 맡고 숨을 자유로 쉴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더기 같은 천정 때문에 승객들 볼 낯이 없었는데…또 비만 오면 마구 패인시멘트 바닥으로 흙탕물이 길길이 뛰어 승객들 옷 버릴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했어요. 버스들이 나가고 들어올 때 심하게 패인 바닥으로 안전사고위험도 높아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젠 지나간 일이 되었네요. 괴로웠던 일상에서 이제는 현대식으로 바뀐 버스터미널 환경이 너무나 고맙지요. 전에 보면 어린아이와 함께 차를 타려는 아이엄마가 편하게 앉을 곳이 없어 안절부절 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기다리는 공간에 새 의자까지 설치됐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요.”
그동안 열악한 시설로 인해 걱정 반 안타까움 반으로 노심초사해왔던 김 소장은 현대식으로 변모되는 새로운 환경의 공용터미널을 바라보며 이와 같이 흐뭇한 마음을 토로했다.

새벽까지 쓰레기 뒤져 신혼부부패물 찾아준 열정 보람
수십여 년 간 많은 버스기사들과 함께 생활해오며 갖은 만고풍상을 다 겪어온 그는 배차업무에 관한 한 이젠 누가 뭐라 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베테랑이 됐다.
“대우장 인근 구 버스터미널에서 10년, 이곳 근무를 합하면 45년 세월이지요. 그동안 버스터미널지기로서 가장 보람되고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면 그중에서 막차타고 들어온 한 신혼부부가 놓고 내린 패물을 찾아주려 노력했던 사건이지요. 신부는 버스에서 목걸이, 반지 등을 잃어버릴까봐 신문지에 똘똘 말아 꼭 쥐고 있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내린 거지요. 당시 삼산파출소 근무했던 연규찬(현 무공수훈자보은군지회장) 순경에 의해 알게 됐어요. 울며불며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한 신부는 패물을 못 찾으면 집에 돌아 갈수 없다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저와 함께 새벽 2시까지 버스안내원들이 청소하고 버리고 간 쓰레기더미에서 4시간이상 샅샅이 찾아 금반지 등 패물을 찾아 돌려준 일이었어요. 벌써 15년 전 이야기네요.(웃음)”

두고 내린 케이크·돈지갑 등 찾아 준 것 부지기수
당시 지역에서 경찰관생활을 하며 이제는 어느덧 70줄을 바라보는 연규찬 회장은 “김 소장에 얽힌 일화를 얘기하라면 정말 끝이 없지만 가장 생각나는 것은 승객이 놓고 내린 케이크주인을 찾아달라며 내게 연락이 와 부랴부랴 속리산버스영업소로 연락을 취해 케이크를 찾아 준 일이라든가 서로 007작전으로 잃어버린 돈지갑을 돌려준 일 등 다양한 일화들이 생생히 생각난다.”며 “김 소장은 지역에서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성실한 사람으로 지금까지도 새마을지도자 부회장으로 마을을 위해 모범적인 일을 실천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처럼 고생 말고 편히 살라”가 자식에게 준 교훈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남에게 나쁜 짓 안하고 거짓말이나 사기안치고 성실하게 생활하다보니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말을 종종 듣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쁜 일입디다. 무엇하나 내놓을 것은 없으나 잘 자라준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죠. 아들, 사위 등 집안에서 3사람이나 보은, 옥천, 영동 등에 각 하나씩 경찰관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저부심이지요. ‘혹자는 남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어 자식농사가 잘 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해준 것 보다는 자식들에게 늘상 ‘아버지처럼 고생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라‘고 한 것밖에는 없네요.(웃음)”

군대제대 후 잡은 첫 직장 무분별한 승객에 울화통
기타가 좋고 무서울 것 하나 없었던 청년시절,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 처음 들어온 직장이었어요. 처음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요,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가장 난감했던 일은 단풍철이나 명절, 휴일 등을 맞아 승객들이 질서문란과 서로 타려고 어거지 쓰며 달려들 때, 자리가 없다고 한 참 나이어린 사람이 막 욕하고 대들 때였어요. 가슴으로 올라오는 화를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어요. 하물며 어떤 고객은 인터넷에 띄우겠다고 협박까지 일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젊은 혈기가 있었을 때라 천심(天心)이 아니면 감히 참을 수 없겠다 싶은 때도 종종 있었지요.”

올해로 새마을지도자 14년 째 활동 천직처럼 느껴져
“이 일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14년 째 새마을지도자 일을 해왔어요. 1999년부터 해왔으니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이젠 최고참으로 부회장직을 10년 째 맡고 있는데 마을일 하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고 천직처럼 느껴졌을 때가 많아요. 사람들과 어우러져 생활하는 직업이다 보니 많은 일에 연루될 때도 있어요. 물론 억울했던 일이나 보람 있던 일, 도와주면서 행복을 느꼈던 순간 등이 많았지만 지나고나니 꿈같이 세월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초봉 7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돈보다도 천직처럼 느껴져요. 그동안 일부 승객에 얻어먹은 욕만 해도 한 트럭은 더 될 겁니다. 오장육부를 다 내놓고 살아도 힘든 세월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한 순간이지요.”

어려운 살림 속 투정 없이 내조해준 아내에 감사
“어렵고 힘든 세월을 함께 넉넉한 마음으로 견뎌준 아내(김정연·58)가 참 고맙지요. 쌀이 떨어져도 내색한번 안하고 넘어가준 내조가 없었다면 내가 없었겠지요. 항상 터미널에서의 직업은 반건달로 아버지처럼 고생하지 말고 웃어른공경하고 남한테 늘 겸손 하라고만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며 견뎌온 세월이지만 반듯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늘 고맙지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이름이 두 개가 됐어요. 호적엔 영록이고 터미널에서는 영환으로 불립니다. 그래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자식들 혼사치를 때 1천장 넘는 청첩장에 이름을 두 개 써 냈으니까요.(웃음)”
가장 거칠고 힘든 생활 현장에서 45년 넘게 꿋꿋이 외길을 걸어온 그의 성정은 모두가 칭찬하는 모범적인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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