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내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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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락내리락
  • 김종례 회남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13.12.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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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을 뒷산에 올랐다. 지난 봄 아카시아 꽃향기가 계곡을 타고 내려와서, 마을 구석구석에 여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려줄 무렵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산이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능선이 아늑하고 완만하여 등산에 자신이 없는 내게도 혼자서도 잘 다녀가는 놀이터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금년 여름과 가을에는 이 작은 산등성이 한번 오를 시간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해가 바뀌는 시점에서 이제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 하니, 섣달 해넘이가 저만치서 나를 바라보며 갈 길을 재촉한다. 동장군이 백설공주를 등에 업고 쏜살같이 달려올 거라고..... 눈이라도 쌓이면 오르지 못할 핑계거리가 다시 생기므로, 오늘은 퇴근을 하자마자 용기를 내어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호들갑을 떨어본다. 정신없이 오르다보니 어느덧 중간 쉼터인 멍석바위에 다다랐다. 남편이 어릴적 소를 몰고 올라와서 놀았다던 멍석바위 한 모퉁이에 잠시 걸터앉아 숨을 돌린다. 올라온 능선을 내려다보며 생각에도 잠겨본다. 옷을 모두 벗어던진 나뭇가지의 앙상한 틈새로 마을들이 언뜻선뜻 그림처럼 앉아있고, 이름 모를 철새들은 공중을 빙빙 선회하며 청아한 울음보를 터뜨린다. 서산에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한해의 흔적을 필름처럼 펼쳐 본다. 과연 내가 한해를 잘 달려 왔는지, 아니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그냥 허우적거리다 중요한 사안들을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무작정 세상에 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점검 해 볼 시점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꽃이 피어나는 봄날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마냥 누구나 저마다의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등대를 세워놓고, 기대감과 행복의 도가니에 사로잡혀 한 해를 출항했으리라. 그 기대감과 몰입의 순간이 영원 할 것처럼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저 아래 구불구불한 능선과 험난한 골짜기를 동시에 통과하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행복의 순간과 불행의 순간들이 아주 잠깐사이에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 안에 오래도록 갇혀 있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다. 불행의 순간은 참을 수 없도록 괴롭고 고통스러워 그 복잡한 굴레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참담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섣달 해넘이 아래서 뒤돌아보니 그 순간도 잠깐 휙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여정이 다 그러하듯이, 이 안락하고 편안한 쉼터 역시 오래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다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해 본다. 늘 푸른 솔가지 사이로 청정한 하늘빛이 일러준다. 정상이 가까우니 분발하라고, 얼른 목표점에 도달하라고...... 마지막 도전인 줄 알고 헉헉거리며 올라갔지만, 능선은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정상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능선은 더욱 가파르게 다시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것이다. 막바지 오르막에서의 힘겨운 씨름을 감내하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두 팔로 크게 원을 휘두르며 심호흡을 오랫동안 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야호도 외쳐본다. 잠시 소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산바람을 붙잡아 본다. 늘상 독야청청 의연한 솔잎향도 툭 건드려 본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힘겹게 올라온 정상은 절정의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지만, 정상에서 누리는 이 최고의 순간도 잠깐이라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된다. 모든 인생들의 마지막 종착역인 천국의 행복이나 지옥의 고통도 이렇듯 짧을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거기가 거기라는 결론을 내리며, 나는 후다닥 일어서서 능선을 뛰어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평온한 숨을 돌리며 여유로운 자세로 갈수 있어서 좋다. 내가 걸어온 지난 한해의 발자취처럼 오르막내리막은 널뛰기 게임이나 줄다리기와도 흡사하다. 미지수의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종지부를 향하여 정처없이 가는 우리네 여정! 계사년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그리던 그림들이 행여 완성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말 일이다. 새해에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이 능선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대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거나 나쁜거나 매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갑오년의 여정이 우리의 생애 중 가장 긴 여운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기대하며 마지막 능선을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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