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포노인의 절규
상태바
어느 교포노인의 절규
  • 보은신문
  • 승인 1999.07.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치훈(보은 죽전, 전 농협 충북도지회장)
"쌀은 우리의 얼이 담기 우리의 자존심! 쌀만은 안된다"라고 거센 농산물수입개방 압력에 맞서 싸워던 열기가 전국을 뒤덮고 있을때였다. IMF 못지않게 UR물결이 이나라 농업인의 가슴을 애끓게 했던 그때 마침 내가 충북 농협의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을무렵, 관ㄴ내 각군 조합장 대표 열분과 함께 그 쌀을 수입하라고 호통치던 미국쌀 캘로스(CAL ROSE)의 본산인 LA현지를 찾아가 시위겸 현장 탐사를 하게 되었다.

버스로 대여섯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미곡농장을 거쳐, 그 쌀이 유통되고 있는 농산물시장을 찾아갔을때의 이야기다. 「LOSANGELES WHO LWALE PRODUCE MARKET」간판이 붙어있는 그시장은 세계 4대시장중의 하나로 각국 주요농산물의 총집산지임을 저차하는 엄청난 규모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현지 관계책입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마침 한국인 노인 한 분이 우리쪽으로 달려오다시피 다가와 인솔자를 찾고 있었다.

백발이면서도 무척 강인해 보이는 70대 중반의 이노인이 아주 반가운듯 내손을 잡고 자기소개를 하면서 우리 일해등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는 40년동안 그시장에서 "중매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수천명의 중매인 중 한국인은 자기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 참 잘오셨습니다. 내 이름은 백인철, 고향은 충남 아산입니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중매인 생활을 하는동안 이곳을 보러오신 한국인은 여러분이 처음입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참 잘되었구나 하고 그뒤를 따랐다.

"보세요, 수천종의 각국 유명농산물을 잘보셨습니다만 그중에 우리 한국산 농산물은 과일 한개, 채소 한 단 없잖습니까? 참 서글픈 일입니다. 더욱 기막힌 일은 몇달전에 제주산 감귤이 들어온적이 있었습니다마는 처음 보는 한국산이기에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올 포장을 풀자마자 품질이 떨어지는 과일이쏟아져 나왔고 포장의 위 아래가 고르지 못한게 속출해서 이를 받아드렸던 내가 수많은 중매인들에게 대 창피를 당했지 뭡니까?" 노인의 얼굴은 점점 상기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공식일정을 마치자, 노인은 곧바로 자기 점포로 우리일행을 그의 열변은 계속 이어졌다.

"더욱 기막힌 일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관광객이 흥청거리고 돈을 뿌리고 다닐때 많은 일본사람들은 관광비용을 아껴서 이곳에 땅을 삽니다. 1에이커(약 1200평)에 천불 정도지요, 수십만 에이커의 농토가 일본인 소유인데다가, 그땅에 「후지사과」를 비롯하여 온갖 과채류를 재배, 이 시장에 출하하여 큰 돈을 벌고 있지요, 미국땅에서 일본사람이 재배한 농산물을 고향의 맛이라고 한국사람이 줄을이어 사먹고 있는 꼴을 보면,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이곳 우리교포가 60만이 넘습니다" 노인의 격앙된 목소리는 어떤 한에 가까운 절규 그것이었다.

그랬다. 고희를 넘긴 한 교포노인의 절규는 백전 지당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노인의 한맺힌 외침속에 우리 일행은 저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무거운 가책과 부끄러움을 누를 길이 없었다. 세계 제일이라는 캘로스 쌀값이 우리쌀 값의 4분의1 밖에 안 된다는 사실 앞에 무척이나 당혹해 했던 우리는 해질녁 그곳을 벗어나면서 허탈한 마음으로나마 노인에게 한마디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머지않아 반드시 좋은 우리 농산물을 보내드리게 될겁니다. 기필코 백선생의 40년 한이 풀리도록 꼭 약속드리겠습니다"라는 요즈음 가락시장에서, 양재동, 창동, 용상, 관악의 농협 농산물을 대할때 눈물겹도록 반가움을 느끼면서 그 교포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부디 사랑받는 우리 고향, 보은산의 농산물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염원과 함께… 보은 대추음료를 비롯하여 탄부쌀이며 속리산 한우고기며, 회남의 둥시감이며… 우리 고향 농업인과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이 하나되어 보다 좋은 품질의 먹거리를 생산하여 전국제일은 물론, 세계시장까지 보라는듯 내놓을 수 있도록 더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자고 강조드리고 싶다.

물론 출향인사 여러분께서도 내고향 형제의 정성을 산다는 마음으로 우리 고향 농산물을 소중히 가슴에 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겠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앞설 수 없다"라는 이치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함게 분발해야겠다. 만리 이국에서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 그 교포노인과의 약속이 바로 우리 고향 농산물로 꼭 이루어지도록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