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공직에만 몸담고 있다가 퇴직하고 농사를 짓는 초보농군이라고 자칭 말은 한다.
농사의 ‘농’자도 지어보지 않고 살다가 뒤늦게 생의 말년에서 농사를 지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어쩌면 되지도 않은 괜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봄부터 내 농토에 씨 뿌리고 열심히 가꿔 수확을 해보려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봤을 때 얼마나 어설프고 형편없는 짓거리였는지 농부님들께 죄송스런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당시 퇴직을 앞두고 벼농사를 지어보겠다 마음먹기 전에 친구들과 걱정 어린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베테랑 농군인 친구가 벼농사일은 내가 다 챙겨줄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논에 물꼬나 대보라고 권하였다.
농부로 입문하고자 하는 용기 없는 마음에 순전히 힘을 안겨준 것은 친구의 격려이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를 믿고 시작한 농사일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는 것을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를 믿고 시작한 일이라지만 농사일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논에 비료하고 제초제 뿌리면서 벼를 키우다보니,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인가 웬 놈의 피가 그리도 많이 올라오는지 감당이 안 되었다.
커 올라오는 피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피사리를 시작하고 보니 장장 10여일이나 족히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피사리에 매달린 이유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저 친구 퇴직하고 할 일도 없으면서 논에 피 좀 봐!’ 이렇게 흉을 볼 것만 같은 생각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때로 논에 물을 대러간 아침, 저녁으로 들락거리면서 들녘의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예전과는 다르게 참으로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손을 놓고 앉아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그동안의 세상과의 부침 속에 느껴왔던 희로애락들과는 사뭇 다른 ‘세상의 평화가 이곳에 있구나’하고 진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좁은 논두렁길을 지날 때마다 농부들이 소복하게 심어놓은 콩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싶은 나름의 요량이 들 때도 있었다.
논두렁에 콩을 심어 수확하고자하는 논두렁콩!
논두렁에 그까짓 콩을 심어 얼마나 수확을 한다고 콧방귀 뀌며 지나쳤던 지난날 철없던 생각들이 얼마나 농부님들의 땀과 열정을 모독 하였는가 죄송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직까지 벼 수확을 하지 못한 나는 추수할 걱정을 하면서 벼 모두를 농협에 수매를 하고 쌀을 사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님께 여쭈어보니 그리 달가와 하지 않으신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것만 같은 심정이다.
방아를 찧어놓고 아들딸들에게 쌀 가져가라 하시던 어머님의 생각을 먼저 헤아리지 못하고 편의주의적인 생각만으로 먼저 말씀드린 것에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추수하고 난 뒤 자식들을 챙겨주시던 살가운 어머님의 그 마음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이 아닐까?
뒤늦게나마 철들어가는 나의 삶이 초보 농군으로 입문한 덕이 아닐까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모든 분들이 밥을 먹을 때 한번쯤은 농부님들의 피땀으로 생성되는 그 어려운 과정을 생각하면서 이제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