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물든 여름날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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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물든 여름날의 휴가
  • 서당골청소년수련원 원장 손진규
  • 승인 2013.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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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모임에 다녀 온 아내는 저녁 식사 시간에 ‘늙은 엄마가 죽는 네 가지 방법’을 들었다며 첫째, 우리 집 경우처럼 아들만 둘 있는 엄마는 거부하는 두 아들집 사이를 왕복하다 길에서 죽으며 둘째, 딸 둘이 있는 엄마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외손자를 업고 고무장갑을 낀 채 서서 죽는데 ‘죽어도’ 해줘야 할 일이 끝도 없어서란다. 셋째,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엄마는 크고 좋은 병원 문 밖에서 죽는데 이유는 딸은 아들에게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라’고 닦달하지만 돈은 내지 않고 아들은 문턱까지 모시고 간걸로 의무를 끝냈기 때문이며 넷째, 아들 또는 딸 하나만 둔 엄마는 뒷방이나 지하실에서 죽는데 달리 갈 데가 없어서라며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했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듣는 순간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국민연금이나 예ㆍ적금 등의 노후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노인(39.0%)보다 노후가 막막한 노인(61.0%)이 1.5배나 많다는 통계고 보면 유난스러운 자식사랑 탓에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바친 노인들이 자식과 함께 살더라도 부모를 구박하기 일쑤인 언어폭력, 버는 돈 없어 아파도 병원 갈 수 없는 노숙인 무료진료에 줄선 가난한 노인들, 끼니를 이을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주지 않는 ‘경제학대’에 시달리며 치매에 걸려 지방 수용시설에 버려지거나 하소연할 곳도 없는 쪽방 노인들, 자식을 생각해서 자살까지 서슴지 않는 노인들이 급증 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내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새겨 봤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면 큰아들이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3박 4일의 가족 휴가를 서비스해서 며느리의 해산으로, 올해도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셋이서 여수의 '히든베이호텔'로 떠나게 되었다. 여든 일곱 연세의 장모님은 걷기가 불편하다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내년부터는 아들 내외와 손자가 함께 하는 휴가라서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하며, 전국 각지의 일류호텔에서의 여름휴가를 열 번 째로 모시게 되었다. 여수 세계 엑스포를 위해서 신축한 호텔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시설이용이 편리하고 건축미가 돋보였다. 아들 덕분에 호강한다며,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올해도 어김없이 맛 집과 명소를 두루 돌아 볼 심산이었는데 36~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라 낮에는 시원한 객실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이른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야경을 보며 대신 여수의 맛집을 두루 섭렵하기로 약속을 했다. 나폴리, 라우데지네이루, 시드니에 이어 세계 4대 미항을 만들겠다는 여수에는 곳곳에 '세계 4대 미항으로 웅비하는 여수!'란 현수막이 걸리고 여수를 세 번 째로 오는 곳이었지만 많은 변화로 인상 깊었다. 이른 새벽 달려간 오동도는 섬 자체가 하나의 동백꽃이고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자연이어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만큼 운치가 있는 곳, 황톳길, 잘 다듬어진 시누대길,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해무는 시야를 흐리게 했지만 동트는 여수 바닷가를 보며 시드니의 미항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갈매기를 쫏던 추억에 잠겨 행복함이 더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28km를 달려 도착한 향일암! 푹푹 찌는 폭염에 거의 40도에 가까운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일주문 같은 첫 석문을 지나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뒤로는 금오산, 앞으로는 돌산의 푸른 바다와 하늘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여행의 덤이었다.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아름다워 조선 숙종41년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해맞이! 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출을 본적이 몇 번 있었을까?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 본 미항 여수는 낮보다 더 아름다운 화려한 밤 풍경에 넋을 놓게 했는데 역시 야경의 백미는 450m 돌산대교였다. 서대회, 20여분을 줄서서 기다리다 맛본 게장백반, 장어구이, 호텔 내 바닷가에서의 바비큐 파티, 갈비살과 전복이 어우러진 한정식의 맛이며 마지막 날 새벽의 어시장에서 싱싱한 은빛 갈치와 다양한 해산물 구입은 오래도록 추억의 장으로 펼쳐칠 것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아들 때문에 10여 년 동안의 호강한 여름휴가는 푸짐한 여행 경비까지 쥐어 주던 아들의 효심은 늘 고마움과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악성 보험은 자식'이라는 영국의 속담이 있다. 요즘 자식들은 정말 부모 고마운 줄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자식이 한 가지만 잘해도 감지덕지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한 가지만 잘못해도 불평을 쏟아내고 부모가 자식들 눈치 보는 사회라지만 내 생각엔 전혀 ...... '지금 당장 자식들한테 바치는 돈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부모의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주장하던 어느 경제학자의 말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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