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한 안고 우즈베키스탄 정착한 동포들의 삶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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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 안고 우즈베키스탄 정착한 동포들의 삶에 감동
  • 보은신문
  • 승인 2013.08.1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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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의회 김응선 의원 공무 연수기
보은군의회가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으로 국외 공무연수를 다녀온후 레포트를 제출했다. 이에 본보는 보은군의회 의원들이 제출한 연수기를 2회에 거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보은군의회 의원들이 모국어를 모르는 동포 3~4세를 위해 설립된 세종한글학교를 방문해 모국을 그리워 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포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 6대 보은군의회 마지막 해외연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6대 보은군 의회 마지막 해외연수를 옛 티무르 제국의 수도이자 실크로드 무역의 중계 거점지였던 중앙아시아의 심장부 우즈베키스탄을 4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보은군 의회에서는 해외연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군민들의 염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의원 개인 소감문을 군민들께 공개함으로서 보고 배운 것을 함께 공유하기로 하였다.
참고로 의정연수 개인당 비용은 215만원으로 국외공무연수 개인 한도를 초과한 35만원은 자부담 하였으며 의원 6명과 4명의 직원이 함께 동행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와 월드컵축구 최종 예선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나라로 연수에 참가한 10명 모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처녀 방문국 이었다.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22일 오후 5시 30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8시간 가까이 날아서 도착한 수도 타슈켄트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았고 모든 시설이 취약했다. 입국 수속에만 2시간이 나 소요되는 지루한 시간 이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입국하는 현지인들의 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들 우리 일행 전체의 짐만큼이나 큰 짐을 이고 지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맨 위에 라면 한 박스씩이 올려져 있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생필품과 공산품이 부족하여 한국의 물품이 매우 인기가 높다는 설명을 후에 가이드에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4시간의 시차가 있어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새벽 2시가 아닌 당일 오후 10시로, 4시간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시간을 따져보니 집을 나선지 16시간이나 걸린 셈이었다.

관공서는 보통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업무를 본다고 하며 첫 방문지인 ‘한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일반현황과 양국 간 교류에 대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실크로드의 거점, 무한한 잠재력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91년 완전 자주 독립국이 되었으나 그 이전인 1990년 카리모프 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두 번의 국민투표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24년째 장기집권을 하는 이면에는 각종 통제와 언론 장악의 결과로 이런 후진정치는 국가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나 약 3,000만 명에 달하는 인적자원과 풍부한 지하자원 광활한 농토로 인한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국가라 하였다.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 민족 국가로 우즈베크인이 80%를 차지하며, 그 외 러시아인, 타지크인, 카자흐인, 카라칼락인과 함께 1937년 소련 정부가 연해주의 한인을 강제 이주시킨 고려인이 전체 인구의 1%에 달한다고 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88%이고 기독교는 국가에서 철저히 금하고 있었다.

국민 1인당 소득은 1700달러로 우리의 10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여유로워 보였으며 도시 전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도로와 건물사이에는 항상 완충지대가 있어 나무와 잔디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곳곳에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연간 강수량이 300mm에 불과한 탓에 사방 2m간격으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수시로 관수해주고 있었다.

이곳의 날씨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지만 공기가 건조하여 우리네 가을 날씨처럼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만 들어서면 매우 시원했다. 나무마다 밑둥에서 1m정도 모두 흰 칠을 해놓아 신기했는데 생석회를 물에 반죽해서 발라 놓은 것으로 이렇게 하면 해충퇴치와 더불어 사람 눈에 잘 띄어 안전에도 좋다고 하였다.
또한 더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나무를 매우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는데, 개인 집안의 나무도 허락 없이는 함부로 베어낼 수 없게끔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곳의 나무는 미루나무와 플라타너스로 알려진 버즘나무, 소나무 등 매우 다양하였는데 도토리나무에는 탐스런 도토리가 빼곡히 달려있고 호두나무와 감나무에도 탐스런 열매가 잘 맺혀 있었는데 특히 곶감용 둥시는 매우 크고 싱싱해보였다.

연간 맑은 날이 300일 이상으로 일조량이 우리나라 보다 50%나 많고 태풍도 없어 병해충과 자연재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연수 내내 파리, 모기를 보지 못하였으며 타슈켄트 남서쪽으로 300km 떨어진 사마르칸트까지 2시간 30분 동안 고속열차로 이동하는 내내 차창 밖으로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는 실로 장관이었다.
농지는 필지마다 최소, 수 만평은 되어 보일만큼 구획정리가 잘되어있고 화이트 골드로 불리는 세계 제2위의 면화 수출국답게 목화와 해바라기, 옥수수 등 각종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었으며 밀을 수확한
밭에는 말을 탄 목동들이 소와 양떼들을 몰며 한가로이 방목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포에 대한 지원 아쉬워
사마르칸트는 옛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 당시의 화려했던 유물로 인해 2001년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동방의 낙원’, ‘아시아의 로마’란 수식어에 걸맞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도 매우 짜임새 있고 쾌적한 것이 14세기 티무르제국 초기부터 계획도시 건설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은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 망원경도 없던 때에 1년을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해냈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는 오늘날 정밀기기로 계산된 365일 6시간 9분 9.6초와 비교해 오차가 채 1분도 나지 않으니 당시의 천문학과 수학이 얼마나 발달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정확한 계산속에 건설된 도시는 60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과거 약소국의 설움으로 대변되는, 외세의 침략과정에서 강제 이주된 우리 동포 노인들을 수용하고 있는 아리랑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과는 우리말로 대화가 되었는데 1937년 이전 출생 고려인이 입소 대상이며 부모님을 따라 이주되어 온갖 설움 속에 지나온 회한을 말씀하셨다. 이곳은 한국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 양로원으로 40여분이 입소해 계셨다. 앞으로 지원시설을 늘리는 등의 해외 동포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해 보였다.

우즈벡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매우 강하다고 하였는데 연간 6000여명의 근로자가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500여명의 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온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한 세종한글학교에서는 이를 반증하듯 40여 명의 학생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배움에 대한 열기가 가득했다.

국교 수교도 없던 시절 우리와 똑같은 외모의 해외 동포가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애타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에 28살 젊은 나이에 교사 임용도 포기한 채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22년째 한글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계신 허선행 교장선생님께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 중에는 재한 우즈벡 대사 등 정·관계에 유명인사가 많이 포진해 있다고 했으나 한국 정부의 지원은 고작 문화체육부에서 연간 2000불이라니 뜻있는 많은 후원인들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 속에 준비해 간 학용품 외에 약간의 성금을 쥐어주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국토의 80%가 평원으로 산이 귀하고 바다가 없는 이곳 사람들은 타슈켄트에서 70km 떨어진 3309m 높이의 침간산에서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고 했다. 산은 거의 벌거숭이로 눈만 쌓이면 스키타기에는 제격일 듯 보였고 그 아래 인공 호수인 차르박 호수에서는 한창 여름을 맞아 해수욕을 대신한 담수욕과 수상레저를 즐기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

◇느림의 미학으로 졸속 행정 줄여야
이번 연수를 통해서 본 우즈벡은 결코 후진국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 내륙의 독특한 날씨로 인한 농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도로와 전기 등 잘 갖추어진 사회기반시설은 밝은 내일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우즈벡의 화폐는 ‘숨’을 단위로 하는데 최고액권인 1000숨짜리 지폐가 우리 돈 500원 정도로, 신용카드와 수표가 통용되지 않는 탓에 연수 내내 현지 가이드인 고려인 4세 이 마리나(28세)양의 커다란 가방 안에는 아침마다 수십개의 돈다발로 가득했었다.
‘돈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대신 들어 주기도 했는데 우리에게 500원 주화로만 생활해 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금번 연수를 통하여 아시아 중원의 웅장함을 만끽 할 수 있었으며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치밀한 계획으로 백년대계를 준비해 오고 있는 느긋함의 여유를 본받아야 할 듯 싶었다.
소위 빠름으로 비유되는 속도에 치중한 나머지 준비에 소홀하여 머잖아 문제점이 노출되고 다시 뜯어 고쳐야 하는 오류를 범해온 것이 다반사 였다.
내년 4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보건소 신축 공사도 총 51억여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지만 지난 83년과 87년 2차례 신축과 2000년 증개축시 철저히 준비했더라면 아낄 수 있는 돈이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느림의 미학으로 졸속 행정의 폐해를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면서, 도심속 곳곳에 잘 정비된 공원은 너무 좋아보였다. 보은읍 시가지에도 공원이 들어서 있다면 하는 상상속에 현재 공터로 남아있는 박맹호(민음사대표)님의 부지를 군에서 매입하여 군민의 쉼터로 조성하면 어떨까?
정치가 바뀌고 옛 사회주의의 잔재가 사라질 수 있는 민주화 바람이 80년 서울의 봄처럼 이 땅에도 불어 닥치길 고대하면서 한때 1800ha의 농경지에 6000명의 대식구를 거느리고 북극성 농장의 신화를 창조한 영웅 김병화 선생의 근성과 기개를 마음속에 담고 나흘간의 현지 연수를 마치며 귀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수에서 보고 배운 바를 충분히 전달치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군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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