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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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3.07.2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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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비를 뿌리더니 점차 개면서 햇볕이 나고 또 무더위가 활개를 친다. 내일이 중복이고 보면 더위도 한창 제철이기도 하지만 금년 여름은 장마도 긴데다가 쪽 장마가 되어서 장마전선이 오랫동안 중부 지방에 만 머물러 있고 남부지방은 마른장마로 있으니 우리나라 주변의 기상 여건상 비가 오지 않는 곳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오늘만 해도 경기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시간 당 백 미리가 넘는 폭우와 함께 삼 백 미리가 넘는 기록적인 장맛비가 내렸다고 하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장마다운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지만 33년 전 오늘에는 우리도 그랬으니 말이다.
1980년 7월 22일, 우리 보은 지역에 대 홍수가 있던 날이다. 그 날도 그랬다. 이른 아침에는 그저 비오는 날의 평범한 하루 시작쯤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아침 식사를 할 무렵부터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급기야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은 삼 면을 냇물이 두르고 있어서 장마가 지면 마을 사람들은 의례히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동구 밖 다리 앞에 나와서 물 구경을 하곤 하였는데 그 날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그럴 겨를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앞의 청벽산 만 바라보고 있었다. 웬만큼 비가 와서는 좀처럼 볼 수 없지만 많은 비가 내리면 청벽산에서는 40여M 높이의 절벽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장관을 이루는데 그 모양이 홍두깨가 수직을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마을에서는 이를 홍두깨물이라고 하여 지금도 그렇게 불리어지고 있다. 홍두깨물이 떨어지면 전에 어른들은 이제는 비도 올만큼 왔다 여기고 비가 그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동구 밖에 모이게 되고 지난 장마 이야기를 하며 함께 물 구경을 하였는데 그 날은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홍두깨물이 내리기 시작 하였고 웬만한 장마에는 제구실을 다하던 하천 제방도 두어 시간쯤 후에는 붕궤되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는 집으로 물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 하였다. 우리 집은 냇가에서 가깝기도 하고 또 지대도 마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장마라 해도 침수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오셨다는 아버지 말씀도 있고 하여 지금까지 걱정을 한 적이 없는데 제방이 붕궤 되고 보니 사정이 너무 급박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마침 방학이라서 집에 있었기에 옷가지나 가재도구 하나 챙길 겨를도 없이 울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큰댁으로 가게하고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은 다음 가재 등을 벽장이나 높은 곳에 올려놓고 있는데 어느새 물이 밀려들어 담이 무너지고 방에까지 차올라 이제는 더 이상 버틸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급히 큰댁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형님 댁은 우리 집과는 달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그 날 동네가 어떻게 물난리를 겪고 있는지를 잘 볼 수가 있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현실 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불과 30여분이나 되었을까하는 짧은 시간에 수마가 온 마을을 휩쓸게 되자 사람들은 모두 큰댁 옆에 있는 교회당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그야말로 교회당은 노아의 방주가 되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고 어느 한분은 탈출 하던 중 미처 나오지 못하고 커다란 살구나무에 올라가 6시간을 견디었는데 그 때 그분의 부인이 잠자리비행기를 불러달라고 울며 절규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이 있고 하여 헬리콥터 출동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 때 통신 수단으로는 집 전화뿐이었기에 이미 전주가 넘어지고 전선이 끊긴 상태에서는 어쩔 수없이 발만 구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으려니 둔탁한 굉음과 함께 마을 어귀에 있는 작은 형님네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야 만 했는데 그래도 폭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어 하늘만 원망 할 뿐, 그 바람에 형수님이 실신하여 쓰러지고 형님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게 된 것 만도 다행이라며 위로 해 주었다. 정말 그랬다 그 때 만일 그 많은 비가 낮에 내리지 않고 밤에 내렸다면 주민 중 절반은 아마도 죽었기 십상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던 비는 오후 2시쯤 되어서야 빗줄기가 약해 졌는데 그러니까 소나기 같은 폭우는 6시간 정도 계속 된 셈이다. 어떤 말에서는 그 때 350미리가 내렸다고도 하고 어떤 말에는 너무 많이 내린 탓에 얼마나 내렸는지 측량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86세셨던 아버지께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엄청난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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