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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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더......
  • 회남초등학교 교감 김종례
  • 승인 2013.07.0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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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조지 버나드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읊조리며 이웃 마을로 이어진 시내 둑길을 혼자 걸어서 귀가하였다. 6월의 해거름 속에서 망초대가 둑길 가득 허연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하늘나라 저 멀리 가버린 수수하고 씩씩한 친구의 웃음이 저 망초꽃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스스로 채찍하면서 강둑을 걸어서 돌아왔다.
<할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런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지금 부르십시오.> 라는 묘비명의 귀절을 외우며 걸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오랫동안의 합숙연수로 침체된 지체를 쭉 펴며 안도의 숨을 막 돌리려고 할 때, 친구의 이름으로 메세지 하나가 휴대폰에 떴다. 안부 메세지려니 하면서 천천히 열어보다가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의 죽음을 알리는 유족의 메세지였다. 일년 반 동안 지병과의 싸움을 치르면서도 씩씩하게 잘 견뎌내는가 했더니, 병원 재입원 중에 돌연이 찾아온 패혈증으로 숨을 거두어서 유족과 친구와 지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주변에서 죽음을 목격하기는 수도 없었으나 친구의 죽음이 이렇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렇게 암과의 투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오히려 가끔씩 내게 안부를 물어주며 씩씩하게 웃음을 날리던 친구였다.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이 혹은 자신조차 서서히 죽음의 문턱에 도달하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사는 것이 정녕 우리네 일상의 분주함인가 보다.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모릅니다> 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싯귀절처럼 나는 가끔씩 내게 안부를 물어주던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여, 한없는 미안함과 서글픔으로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던 요즘이다. 오히려 많이 외롭고 힘들고 아파서 지쳐있을 그녀에게 내가 위로를 하고 자주 방문을 했어야 했는데도, 그녀는 오히려 힘든 내 처지를 염려해주고 근황을 궁금해 하면서 얼마 전까지도 소식을 끊지 않았었다. 그녀의 망초꽃 같은 웃음이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이렇게 자책을 하는 줄도 모른다. 아직도 내 휴대폰에는 친구의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울까 망설이면서도 차마 삭제를 누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돌연히 <야, 잘 있냐? 도대체 청주는 한 번도 안 나오는거여? 교감 자리가 무에 그리 바쁜거여 도대체.....> 하면서 한번 더 허허허 웃어 줄 것만 같아서다. 한번만 더 전화가 와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아쉬움이 있어서다. 이렇게 쓰라림을 흠뻑 겪고 나서야 후회하며 ‘한번만 더‘를 수없이 되뇌며 사는 게 아마도 우리네 인생의 참 모습인가 보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 <한번만 더>를 금새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런지..... 매번 <한번만 더>를 외치는 우리네 일상을 뒤돌아보면 그 상황은 수없이 많다. 한번만 더 먹게 해 달라고 조르던.....한번만 용서해 준다면....하루만 더 공부할 학창시절이 온다면......한번만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하게 해달라던.....한번만 내게 그런 기회가 다시 와준다면.......한번만 더 청춘이 돌아온다면......한번만 낫게 해 주신다면.....급기야는 한번만 더 살아나 준다면 내 목숨 바쳐서.....한번만 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면.....이라고 애원하며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한번만 더> 대신에 <한번이라도> 나를 쳐다봐 주고 의미와 사랑이 되어주었던 모든 사람과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행여 스쳐가는 바람처럼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과 일들을 <한번 더> 생각하며, 그 숨겨진 의미를 마음속에 새겨야 할 때이다. 그 한번이 영원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인생의 여정에서 생애컨설팅을 필요로 할 때다. 나는 이제 친구의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려 마음을 다잡으며, 한번이라도 내 뇌리를 스쳐간 사람들의 안부를 오늘 일일이 묻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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