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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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봄날에!
  • 김종례 (회남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13.03.2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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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인 월례회가 열리던 지난주 어느 날이었다. 새로 선출된 회장이 제안을 하였다. <이 시간에는 여러분들의 가슴을 살짝 열어보고 싶은데요. 오늘의 주제는 나의 봄입니다. 기탄없이 마음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로 시작한 진솔하고도 로맨틱한 순간들이 잠시 이어졌다. 모두는 다양한 봄내음을 맡으려고 눈과 귀를 쫑긋거렸다. 첫 번째 주자가 <봄은요. 장독대에 가서 뚜껑을 여는 순간 후루룩 하늘로 날아오르던데요>하여 모두의 동감을 쉽사리 얻어내었다. 그 다음 주자는 <봄은 황새냉이며 별금다지를 캐는 아낙네들의 치맛자락에 묻어 옵니다> 세 번째 주자는 일어나더니 아예 노래로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봄처녀 제 오시네....행여 내게 오심인가...’ 목소리가 턱에 걸려서 웃음을 자아내도 모두는 봄에 취한 듯하였다. 그 다음 주자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피서도 하고 엄동설한까지 보내고 막 퇴원한 위암 투병 회원이었다. 깡마른 그녀가 일어나서 <제 나이 56에 비로소 가슴에 봄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봄이 와서 마음이 설레고 눈물이 나보기는 제 생전 처음이에요> 해서 모두를 석연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저는 참으로 복 있은 여자에요. 수릿티재를 넘나들며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꽃바람을 안아보고, 대청호를 바라보며 나룻배에 실려오는 남촌의 봄을 마중하니 말이지요. 온갖 추억을 몰고 오는 시골의 봄에 흠뻑 취해있는 요즘입니다. 봄을 길어 올리시려면 대청호로 오세요!>라고 지역홍보까지 곁들이고 말았다.
아~~ 봄이다. 언제까지나 캄캄하고 차가운 얼음판만을 걸어갈 줄 알았는데, 봄 너울을 곱게 쓴 고운 햇살들이 교실 창가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이들을 불러낸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수면위로 물결을 헤치는 낚싯배가 미끄러지듯이 달리면, 늙은 어부 투망질로 선잠 깬 은어들도 함께 달린다. 그 넘어 국사봉이 아직은 새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아쉬운지 도도하게 웃고 서 있지만, 질척해진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의 머리위에 봄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늘은 드디어 봄의 전령사 산수유가 꽃망울을 노랗게 터뜨렸다. 햇살에 나른해진 잔디밭에도 보랏빛 제비꽃들이 금새 눈웃음을 칠 것만 같고, 겨우내 매운 햇살 그물에 걸려서 바르르 떨고 있던 손톱만한 새순 한 잎으로 아이들보다 봄바람이 먼저 달려와 치근대고 있다. 어린 시절 몇 명씩 짝을 지어 산과 들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함께 놀던 꽃바람의 기억이 오늘따라 생생하다. 바람처럼 꽃잎처럼 마음껏 행복을 누리던 하염없이 자유롭던 시절! 산들바람을 따라 끼리끼리 떠돌며 진달래꽃을 따먹고, 바위에 나란히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천상의 꿈을 꾸었던 상상의 시절! 각양각색의 나비를 따라 숨바꼭질하며 끝없는 해방감에 도취되어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유난히 폭설도 많고 추웠던 지난겨울을 깨우고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모두의 가슴마다 찾아왔다. 겨우내 북풍과 싸우며 외로웠던 병원 침상에도 봄 햇살이 스며들고, 벌써 쑥내음이 그리워 논두렁밭두렁을 뒤지는 순아네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에도 봄이 앉는다. 긴 겨울동안 통 모습을 보이지 않던 파란 대문 집 할아버지의 굽어진 등위에도 봄 햇살이 사르르 잠을 잔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용하고 훈기 돌게 하는 이 좋은 봄날에! 한시적이고 한계적인 부정적인 환경에서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많은 청소년들의 가슴에 소망의 봄이 흠뻑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불신과 독선의 팽팽한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각타결 등으로 결론을 내버리는 여의도 청사 깃발에도 봄바람이 불어 닥쳐 온 국민의 가슴에 따뜻한 힘바람을 안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한겨레 한민족을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붙이는 북녂의 공습경보도 백두산 꽃바람에 훌쩍 날아가기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땅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봄의 강물이 생기롭게 흘러 넘쳐서, 저마다의 강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신바람 나는 교육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훈훈하고 따사로운 남풍이 불어오는 이 좋은 봄날이 가기 전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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