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단상
상태바
산과 단상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3.03.21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보려고 모처럼 산에 올랐다. 사방에는 봄 냄새와 봄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작은 풀꽃이 피어나고, 여러 나무들은 앞 다퉈 새잎을 틔우기에 바빠 보였다. 투박한 흙냄새가 푸름으로 뒤덮이고 마음을 들뜨게 할 약동의 봄을 예고한다.
산에 오르다 보면 많은 것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향긋함이 묻어나는 푸름이 있고, 퇴색되어 가는 나뭇잎, 맑은 새소리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뻐꾸기와 고막을 찌르는 듯한 매미,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숲길을 걸으면 많은 욕망과 갈등은 사라지고 마음이 정화되어 본연의 나를 잊곤 한다. 바람 부는 날이면 나무들이 바람과 섞여 수런거리고, 가을에는 밤과 도토리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산을 오르면 같은 길이라도 어제와 다르고, 다양한 빛깔과 향기, 소리를 지닌 맑은 정기를 가슴에 담아 올 수 있어 좋다.
사소한 식물의 변화부터 우리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우리의 삶과 닮지 않은 것이 없지만, 산을 오를 때 마다 산길과 우리의 삶이 닮았다는 걸 느낀다. 숨이 차서 힘겹게 올라야 하는 길 다음에는 숨을 고르라고 평탄한 길이 있고,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정상에 오르면 더 올라야 할 길은 없고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내리막길은 오를 때보다 시간도 단축되고 한결 쉽게 느껴지는데 정녕 그럴까?
우리 삶의 여정도 많은 노력과 정진, 좌절 등으로 이뤄낸 숱한 길을 거쳐, 어느 땐가는 자신이 추구했던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상에 오르게 된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없어 그곳에 계속 머물지 못하고 내림 길에 접어들어야 할 때가 온다. 정상에 닿기 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어려움만큼 내려오는 길도 그럴 것 같다. 아니 정상의 영예를 잊지 못해 더 힘겨울 수도 있다.
내 기억으로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시간 좀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가는 세월을 잡고 싶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치판이나 주변을 보면 그 자리가 영원할 듯 오만과 독선적인 사람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릇이 아닐까? 채워야 할 물은 많은데 그릇이 작으면 소중한 물은 넘치고 낭비되어 그것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을 피해주는 일은 없을까?
우리에게는 두 귀와 두 눈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소리도 함께 수용해야 하는데 한쪽으로만 쏠려 한 귀와 한 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된다면 훗날 아니 당장에도 그 사람의 그릇을 평가할 때 우린 포용력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에서 무능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결코 오래도록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화자찬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가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객관적으로 하는 것이란 걸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상에 있을수록 겸손하게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사이클이 있어서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보편적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지닌 나름 정상의 산이 있다. 우린 남이 살아가는 길을 보며 그 길을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자기가 지니지 못한 부분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바탕으로 가는 그 길이 자연스럽고 가장 소중한 것이란 걸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는 때가 많다. 해서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욕심과 마음을 비우며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내디딜 때 참된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도 수많은 산을 오를 것이다. 때로는 정상에서 마음을 열고 심호흡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좌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많은 산도 오르고 내려 올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슬픔과 어려움을 느끼며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어도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그 세월에 나를 맡기며 많이 부족한 내가, 감히 남 보다 우월하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오만함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 늘 마음을 점검하고 채찍질하며 산을 올라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