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회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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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회비에 대한 단상
  • 신현성 농협보은군지부장
  • 승인 2013.01.1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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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눈이 내려 산과 들이 하얗게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지난 시절 60년대 중반쯤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는 1920년생으로 사형제중 맏이셨다. 내가 초등학교시절 가끔 막걸리라도 한잔하시고 집에 오시면 ‘둘째를 찾아야 한다’며 담배를 깊이 피우시며 늘 수심이 가득하셨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끝자락에 벌어진 힘든 일 중에 송진을 채취하던 일, 식량은 공출당하시고 콩깨묵 드셨다던 일, 위안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열 세살에 시집오신 어머니의 사연 등등. 그 시절의 어려움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 대신 사할린으로 끌려가 해방되고 나오지 못한 채 소식이 끊긴 삼촌에 대한 추억을 새기며 침통해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아셨는지 일제 때 징용간 고향동네의 몇몇 가족들이 편지를 보내서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수소문하여 대구에 있는 ‘사할린동포찾기운동본부’를 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괴산에서 대구를 가려면 버스로 괴산→청주→조치원으로 가서→열차로 내려가 대구에 있는 운동본부에 편지를 전달하시고 밤 늦게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아버지가 삼촌을 왜 그렇게 찾으려 하셨는지 어리석은 소견에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매년 그렇게 하시기를 10여년.....
1978년 군에 입대하고 이듬해 휴가를 나왔는데 아버지께서는 인사도 받기 전 눈물을 글썽이시며 "니 삼촌 찾았다"며 감격에 겨워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편지봉투에 쓰인 러시아어를 처음 보았고 편지지에 쓰인 비뚤비뚤 하면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잊혀 진 민초의 절절한 사연을 보았다.
80년대 이산가족 찾기의 반향에 힘입어 적십자사와 KBS의 도움으로 아버지께서는 두동생과 함께 소련과는 국교가 맺어지지 않은 관계로 일본에서 ‘사할린 삼촌’을 상봉하게 되었다.
일본 공항에서 사할린 동포를 최초로 상봉한다고 뉴스에도 나오고, KBS방송국에 출연하고 받으신 녹화 테잎을 늘 돌려 보셨는데 몇 년 뒤 소련과 수교 후 ‘사할린삼촌’은 한국에도 오셔서 그리워하던 고향산천도 보시고, 부모님 산소도 찾아 통곡도 해 보시고...이젠 다들 세상을 떠나시고.....
헌데 그 당시 일본과 사할린 가시는 비용은 어찌 마련하셨나 궁금하였었는데 적십자사에서 지원되어 이를 해결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적십자사가 그런 일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우리 충북지역에는 사할린동포들이 영구 귀국하여 생활하고 계시는데 이분들도 이러한 도움으로 들어오셨으리라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가 그저 그렇게 몇백원, 몇천원씩 내던 적십자회비가 눈물로 지새고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우리의 이웃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커다란 가치를 지녔음을 알고 나서는 더 많이 참여하지 못함이 부끄러웠었다
1월말까지 적십자 회비를 자율 모금하고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일부단체에서 이를 거부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팍팍한 사회의 어려운 이웃과 세상을 감싸고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는 ‘적십자회비’를 거부하는 처사에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조직간 혹은 개인 간의 이해다툼은 그 자체로 풀어야지 좋은 일에 쓰이는 적십자회비를 시비대상으로 한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날씨가 많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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