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도 나 여기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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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도 나 여기에 있으니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2.12.2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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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해도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새해 달력을 서너 개 정도는 준비하기 마련이지만 아직 하나도 바꾸어 걸지를 않았다. 달력이라면 한 해의 날짜와 요일, 절기 등을 열두 달로 나누어 필요에 따라 보고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새 달력은 표지에 가는 해 12월로 시작하여 13월력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다. 지난 시간 속에 있었던 좋지 않았던 것들을 빨리 잊고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정리하여 새해를 맞으라는 뜻인지 아니면 새 달력을 일찍 걸게 하여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아직 새 달력으로 바꾸어 걸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2012년이라는 한 해의 세월을 하루라도 그대로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달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하여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대로 머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또 한 해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의 미련을 하루라도 더 잡고 싶은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하루하루를 앗아가는 세월이라는 허공 속에 하나하나 넘어가던 달력이 이제는 이 해의 며칠만의 시간만 남긴 채 앞서간 날들을 힘겹게 등에 지고 남은 몇 시간의 공간을 채워가며 나와의 이별을 고하려 하고 있다. 나 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게야 한 해 동안 무엇이 그리 대수로운 일이 있었겠느냐 라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세월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냥 스쳐가는 법이 없기에 저 달력의 시간 속에는 내게도 나름대로의 사연들이 있어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듯 또 한 해가 가노라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세월의 한 조각이라도 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미련의 마음도 가져 보지만 그러나 그 누구도 잡지 못하고 후회하며 뒤따라 달려가기만 하는 것은 그 세월이 너무 빠름인지 아니면 매듭도 없는 그 세월의 매정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세월은 야속타 하더라도 내 인생이 세월을 쫒아가다 가끔은 주저앉아 쉬었다 라도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지도 못한 것이 인생이고 보면 세월의 어느 길목에서 미아가 된 것처럼 헤맬 수밖에 없는 것도 어쩌면 삶이라는 의미 속에 감추어진 또 하나의 이율배반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내북면 주성 노인대학의 수료식에 축하 화분이라도 하나 놓아 드리기 위해 전 날 보은엘 가는데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 한다. 생각 같아서는 전에 가끔 다니던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눈이 많이 쌓이면 돌아 갈 길이 걱정 되었기에 가까운 꽃가계를 찾아가게 되었다. 노인 분들을 생각하여 화사한 난을 사려고 하였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다른 화분을 하나 고른 다음 장식하고 리본을 다는 사이 처음 간 가계라서 장사 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마흔을 조금 넘은 듯 한 여주인은 칠팔년은 되었다고 하면서 어르신 세월이 참 빠르지요?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한다. 그러기에 내가 말하기를 아직 한창 젊은 분도 세월이 빠르다고 생각 하느냐고 하면서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 한다고 하지 않느냐며 나의 세월에 비하면 그래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은 그렇게 빠르질 않을 것이라며 정말 세월이 빠르다고 느껴질 그 때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니 지금도 후회가 많은데 어떻게 후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물론 아주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한 삶의 후회는 결코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 해 주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어떤 모습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내가 이제껏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돌아다보면 온통 부끄러운 것들이라는 마음의 짐도 있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 위로가 되는 것은 지금도 내가 이렇게 존재 할 수 있도록 하여준 지난 세월의 흔적들에게 감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지워지는 흔적과 지워지지 않는 흔적, 그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흔적과 지우고 싶지 않은 흔적들이 엉켜 있어 때로는 혼돈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흔적들 때문에 세월은 흘러도 나 여기에 있으니 그래서 세상은 살아 볼만한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수선 했던 대선도 끝나고 해마다 연말을 들뜨게 하는 성탄절도 지나고 보니 이제는 좀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 해를 정리하여 보내야겠다. 연말이 되면 언제나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게 되고 또 내게서 떠나가 버리는 그 시간들에 대한 미련으로 아쉬움을 남기게 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내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함께 해주었던 시간이나 또는 잊지 못 할 사연으로 남아 있는 날들은 해가 바뀌고 세월이 바뀐다 하여도 또 다른 흔적으로 남아 언제나 나와 함께 해줄 것이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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