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노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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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포즈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2.11.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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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끝자락에, 학교 선후배 몇 명이 서울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메노포즈를 관람하였다. 출연진과 메노포즈는 폐경 혹은 폐경기, 갱년기라는 뜻으로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 이야기라는 간단한 정보를 갖고 갔다.
메노포즈는 백화점 란제리 세일 코너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여성인 전업주부와 전문직여성, 한물간 연속극 배우, 웰빙 주부 네 명이 속옷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약간의 푼수와 지혜를 겸비한 전업주부 역할은 가수 노사연이, 호전적인 성격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과 권력을 얻지만 딸과 엄마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린 외로운 전문직 여성으로는 가수 이은하가, 아주 하찮은 광고모델 제의에 자존심이 상해 옛날의 전성기를 반추하는 한물간 연속극배우로 뮤지컬배우 추정화가, 농장에서 바람직하게 사는 것 같은 웰빙주부 역할에 유보영 뮤지컬배우가 각자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열정적으로 공연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털어놓게 된다. 살아 온 삶의 색깔은 달랐지만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불치의 병 “폐경”이라는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바로 앞에 두고도 찾아 헤매는 ‘기억력 감퇴’, 땀이 줄줄 흐를 정도의 ‘발열’, 그로 인한 ‘홍조’, ‘오한’, 자신감 상실에 의한 ‘성형수술’, ‘호르몬 변화’, 화장실을 자주 가야하는 것 등 폐경기가 가져다 준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60~80년대 팝송에 맞춰, 우리 아줌마들의 일상과 수다가 철철 넘치는 연기와 노래에 관객의 박수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큰소리로 웃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웃음거리인 그들의 말과 행동이 사실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왔던 것 같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빨려 들었는데, 확 반전이 왔다. ‘폐경기’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스스로 몸에 대한 자기 긍정과 치유의 시간을 받는 것이란 메시지가 전해졌다.
다시 뮤지컬 메노포즈를 요약하면 여성의 기능이 끝나는 시기라는 오해로 중년여성을 눈물짓게 했던 폐경기가 결코 끝이 아닌 당당하고 새로운 시작임을 노래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또래의 여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폐경기는 결코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여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삶의 여정의 하나일 뿐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기임을 알아간다. 그리고 엄마로서 자신을 버리고 한평생을 살면서 ‘여자’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던 엄마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배우와 관객의 소통시간도 있었다. 이은하가 객석으로 나와 목이 마르니 음료수가 있는 사람은 달라고 했다. 나와 동행했던 언니와 동시에 나도 음료수를 들고 흔들었다. 언니가 당첨이 되었고 이어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이 있는 분은 좀 달라고 했다. 몇몇이서 손을 들었고 과자와 빵 종류가 전달되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지역의 생대추를 가져왔으면 보은의 대추를 홍보할 수 있었을 텐데...”하며 무척 아쉬워했다. 그저 어딜 가나 보은에 대한 지독한 사랑은 떠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것 역시 연기였던 것 같다. 그만큼 아줌마는 남에게 음료와 음식물을 달라고 할 수 있는 넉살과 뻔뻔함이 있다는 것과 공연장에는 음료수 외 음식물반입이 금지되어 입구에서 확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인 아줌마는 자신만의 명분으로 먹을 것을 갖고 왔을 거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 것 같다.
아직도 그날을 되새기면 가슴이 설렌다. 우리가 메노로즈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선배의 아들내외가 뮤지컬에 대한 정보와 왕복기차예매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세심한 배려로 가장 좋은 자석을 예매해서 뮤지컬 공연배우 모두와 악수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근사한 저녁까지 사 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넘치는 아들을 둔 선배가 그저 부러웠고 고마웠다. 그 덕에 아름다운 추억과 기쁨과 행복이 충만했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린 돌아오면서 “그 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정기적으로 일상을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이벤트를 가져보자.”라며 또 다른 추억 쌓기에 도전해 볼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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