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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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2.11.0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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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까운 친구 분이 메일을 보내 주었다. 내용인즉 꽃피고 무성 할 때 보이지 않던 가지가 잎이 지면 고개를 내미는데 그 가지 이름이 바로 연민이란다. 그리고 또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오래가는 것이 연민이란다.
연민의 정이 나아가 사랑도 미움도 되고 또 사랑이나 미움이 연민이 될 수도 있겠기에 연민으로 살아 갈 때도 많이 있겠지만 연민 또한 좋은 감정의 하나이기에 오래간다하여 나쁠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연민으로 괴로워해야 할 마음만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모든 감성이 내가 나를 사랑 할 줄 알 때 아름답게 내게 머물러 주는 것처럼 사람이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순수한 마음 때문이리라,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서 내가 존재 한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밤에 비가 내렸다. 단풍 의 빛으로 산을 온통 덮고 있던 나무들이 젖어 있다. 나무들은 언제나 젖고 흔들리며 잎을 피우고 지면서 사계절을 견디어내지만 이제 품고 있던 수많은 잎들을 낙엽으로 떠나보내야 할 저들의 운명의 서러움에 젖어 있는 것 만 같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바람이 일적마다 하나 둘 떨어져 뜰에 쌓이는 낙엽을 보노라면 내 마음도 함께 젖으며 나도 모를 연민으로 서글퍼지게 마련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함께하고 있는 고향의 산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으로 채워진 풍광을 보노라면 언제나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인데 이제 그 아름다움도 퇴색 되어가면서 떠나가고 있으니 아쉬움이 앞선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일까 아니면 날씨가 재촉하는 때문일까? 바람이 불면 나그네 같이 외로이 떠나야 할 낙엽들이 잠시 머물고 있는 내 뜰에도 저들이 흩어져 젖어 있으니 이렇게 저들에 대한 연민이 내게 찾아 올 때 또 한 차례 바람이 지나면서 이제 막 지는 잎새 하나가 멀리 떠나간다. 아직은 그런대로 만추의 빛갈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이제는 찬 서리와 비에 젖으며 절정의 무대에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아쉬움에 관객은 텅 빈 객석에서 홀로 연민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가는 바람을 따라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따라가 본다. 가는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좀 쉬었다 가면 내 인생 여정도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 해 진다. 보은을 가는 길에 가로수 은행잎 하나가 날려 오더니 내 차창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와이퍼를 돌리려는 순간 손길이 멈추어 진다. 내게 이별을 하려 찾아온 손님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 인생의 운명이 이 낙엽과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인 것이다. 나도 이제 칠십여 성상을 그냥 세월로만 보냈으니 어찌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싶어 마음이 울적 해 진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노란 잎이 길가에 수북이 쌓이며 날리고 있다. 지금 이렇게 길에 떨어져 밟히고 날리는 저 낙엽들이 아직은 고운 빛으로 남아 있지만 언제 바람이 불면 흩어져 흔적 없이 어디로 떠날는지? 그리고 그 때는 아무도 지금의 아름다움에 감사하거나 기억 해 주는 사람도 없이 잊혀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날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을 막아주며 여린 가지를 감싸주고 풍성하게 품어 주었지만 이제 때가 되어 떠나야 할 이들의 운명에 어찌 또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싶기도 하다. 아마도 겨울날 밤 앙상한 가지사이로 달이 뜨고 별이 지는 차가운 밤에야 나신이 된 나무들만이 이들을 애타게 그리워하겠지만 그 그리움 또한 침묵의 메아리가 된 찬바람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기에 나만이라도 이들을 잊지 말고 기억 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그 앙상한 가지 에 걸려 있는 싸늘한 겨울 달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몇 년 전 이맘때에 노인대학 어른 분들과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 곳 바다가 보이는 작은 공원에서 마침 시화전이 열리고 있어 둘러보는데 별 모양의 빨간 단풍잎이 너무 좋아서 그 것을 몇 잎 따서 지갑에 넣어 가지고 와서는 천상병님의 시 “귀천”과 함께 색상으로 복사하여 나누어 드렸더니 노인들께서 그렇게 좋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끔 씩 만나는 그분들 중 어느 분은 지금도 그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생각이 나면 꺼내어 읽어본다고 하시기도 한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은행잎 몇 잎을 주웠다. 머지않아 흔적 없이 떠날 낙엽들을 기억 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연민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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