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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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만의 만남
  • 서당골 청소년수련원 원장 손진규
  • 승인 2012.08.3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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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의사이며 작가였던 한스 카토사의 '인생은 만남이다'라는 이 간결한 말에서 우리는 인생의 깊은 뜻을 발견한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기쁨, 성실한 친구를 만나는 환희, 믿음직한 제자를 만나는 보람, 좋은 남편 착한 아내를 만나는 행복, 이 모든 기쁨이야말로 만남의 묘미가 아닐까? 만남이란 단순히 얼굴을 마주대고 대화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영혼과 영혼의 부딪침이 있어야 하며 고통과 기쁨이 엇갈리는 숨소리가 통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곧 만남을 의미 하는 것이다.
39년만의 만남! 1년여를 교사로 재직하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하여 6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이야기다. 교탁 위에는 <오, 주님 내가 교실에 들어갈 때에 나에게 힘을 주시어 유능한 교사가 되게 해 주소서. 나에게 지식 이상의 지혜를 주시어 내가 준비한 지식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나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의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소서>라는 글귀와 함께 '교사 10계명'으로 <차별하지 마라. 체벌은 가급적 하지마라. 아동들의 인격을 존중하자. 아동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 사제동행 하라. 칭찬을 아끼지 마라. 아동들의 이름을 부르자. 하루에 몇 번이고 아동들과 인사하라. 유머를 아는 선생님이 되자. 친절한 선생님이 되자.>는 글귀를 읽고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던 그 열정!
그 제자들이 벌써 쉰둘의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의 흐름이 쏜 살 같다는 말이 무색하다.
어느 날, 환갑 축하 파티를 열어 다이어로 수놓은 백금 반지를 끼워 주며 '스승의 노래'를 합창했고 행복에 취해 건배의 잔을 들며 그렇게 우린 1974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 여름밤이 깊어 가도록 추억을 반추했었다.
그 후 정년 퇴임식에도 많은 제자들이 참석해서 멋진 이벤트로 축하를 받았고 지난 달 부산에서 치러진 아들 결혼식엔 경향 각지에서 찾아와 축하 해 주었던 제자들!
군자삼락!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고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들이 작년 '스승의 날' 특집으로 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에 실리는 영광도 얻었다.
폭염 속에 7월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 동향이에요! 기억하세요? 너무 반갑습니다." 6학년 담임을 할 때 작은 키에 늘 생글생글 웃으며 모범생으로 착했던 여자 아이! 유난히 일기를 잘 써서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받고 초승달처럼 작은 눈매에 복숭아처럼 붉은 볼로 누구에게나 붙임성 있었던 13살 소녀가 두 대학생 자녀를 둔 중년여인이 되어 나와 통화를 했고 상기된 목소리에 감동이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제자 세영이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나의 근황을 알렸단다. 생생한 기억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제자와 대화를 마치며 카톡 아이디를 알려 주었더니 이튼 날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문자로 보내왔다.
<선생님, 어제 그렇게 짧은 선생님과의 첫 통화가 못내 아쉬웠는데 퇴근 후 예배 갔다 온 후 양파 오이장아찌 담근 것 정리하다 보니 늦은 시간이어서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수화기 속의 선생님 음성은 여전히 그 때의 그 젊디젊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친근감 있는 반가운 통신 속의 대면이었어요. 그동안 저의 불필요한 핑계 때문에 단 한 번의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안부조차 여쭙지 못한 불효 불충한 제자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선생님의 근황, 그저 먼발치에서만 불그스레한 눈빛으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향내 나는 마음의 꽃다발로 축하드리며 박수쳐드리고 그랬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신 몸과 마음으로 훌륭하신 일, 후대에 남아 기념비적인 일들로 저희 제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매김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젯밤엔 옛 제자들을 향한 그 특유의 사랑이 담긴 음성에 얼마나 혼자 웃으며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 보았는지요.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곧 머잖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못난 제자의 모습 기다려주세요.>
그 후 며칠이 지나 휴가를 얻는 제자는 친구들과 함께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열세 살 소녀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며 살면서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은 덕을 베풀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고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일에 대한 보상과 이득을 따지지 않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란 말이 있다. 제자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는 나는 분명 행복하며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제자들아! 어느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 모두 잊혀 지지 않는 의미가 되도록 노력하고 남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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