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동창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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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동창을 열자
  • 회남초등학교 교감 김종례
  • 승인 2012.06.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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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새벽의 미묘하고도 고요로운 신비함과 적막감을 만끽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겨울에는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어둑어둑한 시간에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있다는 잠시의 즐거움으로 하루를 열곤 하였는데, 여름이 오자 일조시간이 길어져 새벽이 지나고 이미 동창이 훤하게 밝아 온 뒤 아침을 맞게 된다. 우리 시골집에는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이 하나 있다.
겨우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으려 테이프로 꽁꽁 동여매고 헌 커튼으로 가려서 쓸쓸히 숨겨 있던, 봄이 와도 아무도 아는 체 열어 주지 않던 동쪽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다. 오래오래 방치해 두어서 거미줄이며 먼지가 터줏대감마냥 버티고 있는 못생기고 지저분한 창문이다. 방안의 공기가 후덥지근해지자 오랜만에 테이프를 뜯어내고 동창을 활짝 열어 제쳤다. 이 계절 초록을 뭉개고 앉아 씨름하는 진록의 물결이 한 눈에 들어오며, 떠오르는 한줄기 햇살이 우주의 정기를 가슴에 쏘아 대었다.
오랜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가슴앓이로 묵직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참으로 상쾌하고도 눈부신 아침이 안겨온다. 앞산 아래 청보리밭이 청마 한 마리 고랑을 넘실대며 달려오듯 눈부셔 잠시 눈을 감는다. 자연의 평화가 오감을 자극하며 전원 교향곡으로 연주되는 아침! 새벽이슬에 얼굴 씻은 찔레꽃 청순한 얼굴도 산들거리며 향기를 먼저 보내온다. 모는 모끼리, 보리는 보리끼리, 꽃잎은 꽃잎끼리 몸을 비비며 푸르디푸른 그들만의 생을 눈웃음친다. 탱탱히 물이 올라 윤기 도는 감나무 잎들만 확 트인 시야를 살짝 가리울 뿐, 막힘없이 들판을 소통하던 바람들이 동창으로 들어와 교류하니 일상의 분주함으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원초적인 세상을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그냥 일어나서 창문 하나 열기만 하였는데, 동으로 난 굳게 닫힌 창문 하나 활짝 열어 제쳤더니 이렇게 많은 선물과 깨달음이 안겨왔다. 신선한 아침을 혼자 누리기가 아쉬워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좋은 아침! 일어났나요?’ 아직도 꿈나라인지 답장이 없다. 전화를 걸어도 모두 굳게 닫혀있는 폰들. 야행성 생활에 젖어들어 아침을 점점 잃어가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일어나자마자 메시지를 보내는 습관이 생겨났다. 저녁형 생활리듬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새벽잠이 꿀맛처럼 달콤하리라.
그 사람의 아침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둥, 아침의 한 시간은 대낮의 3시간과 비교되니 일찍 일어나서 소중한 아침시간을 잡으라는 둥, 자연과 상큼히 아침을 출발하는 하루는 인생의 보증수표와 마찬가지라는 둥, 날마다 잔소리만 늘어간다. 오늘날 생활경쟁이나 비즈니스 경쟁이 춘추 전국시대보다도 못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문보도가 불현듯 생각난다. 아침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오랜 생활습관을 바꾸기 또한 누구나 쉽지 않는가 보다. 고도화 정보시대에 갇혀서 심리적 정서적 조화가 흐트러지기에 알맞은 저녁형으로 아이들이 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몇 년 굳게 닫혀있던 동창처럼 마음의 문도 그러하리라. 마음의 문도 꼭꼭 닫아 버리면 모두가 생소한 남이 된다.
문은 열렸느냐 닫혔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되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면 우주와 자연과 사람과 통하게 되었는데, 깨달음과 축복이 동시에 찾아오는데, 그게 누구에게나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한번 닫으면 열기가 매우 힘이 들다. 닫힌 문안에서 자신과의 싸움만을 계속할 뿐이다. 제 안에서 소통이 없이 말라가는 웅덩이의 빈 바닥같이...... 아침이슬로 갓 세수한 푸른 신록을 닮은 청소년들은 날마다 아침의 신성한 빛을 바라보기 바란다. 자기만의 매너리즘을 깨워서 마음의 통로를 활기차게 매만지는 아침시간을 활용하는 젊은이들이 되기 바란다. 복잡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이른 아침, 여호와의 선물인 자연이 소망의 빛으로 안겨오는 이 시간, 마음의 눈을 떠서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인생에 얼마나 유익하랴! 지금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정 새벽빛을 바라볼 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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