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흔히 캄보디아에 대한 이미지는 후진국, 크메르루즈, 킬링필드를 연상한다.
맞다. 분명 후진국이고, 가난하고 문맹율도 높은 어둡고 그늘진 곳 그래서 봉사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는 곳. 이곳을 보은군자원봉사센터(소장 김순자) 봉사자 10명과 청원군자원봉사센터(소장 박종숙)봉사자 10명이 자난 10일~14일까지 3박 5일간 다녀왔다.
그 봉사활동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 반도국가의 설움, 민족상잔의 비극, 사회주의 압박에서 벗어나 입헌군주제의 민주공화국으로 전환 이제 경제성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조선, 광개토태왕의 고구려, 끝없는 외침, 일제식민지, 남북분단, 6.25전쟁, 가난, 녹색혁명, 경제성장, G20 의장국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와 과거역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캄보디아가 정글 속에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을 만들었을 만큼 강성했던 크메르 제국인 앙코르 왕조의 영광과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해 베트남과 태국에 지속적으로 침략을 당했던 설움, 프랑스식민지 상태에서의 일본식민지, 해방, 그리고 40여년 전 당시 800여 만명의 인구 중 크메르 루즈정권 ‘폴포트’에 의해 200만 명의 동족이 무참히 살해당한 킬링필드 그리고 찾아온 가난 우리나라의 역사와 너무나 닮았다.

우리일행은 예정보다 한시간 늦어진 밤 8시 40분 인천을 출발해 캄보디아 제2의 도시 씨엠 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캄보디아어로 씨엠은 ‘태국의 씨암족’을 말하며 립은 ‘물리쳤다’는 뜻으로 옛 크메르제국을 침입한 태국의 씨암족을 물리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씨엠립은 캄보디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16,000명 가량으로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천년고도다.
씨엠립국제공항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앙코르와트 신전과 근세 이전 크메르의 수도인 앙코르톰의 유적 등이 있다.
인천서 씨엠립 까지는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도착한 시간은 한국시간 새벽 2시10분 현지시간 밤 12시 10분이었다. 한국과의 시차는 2시간으로 우리보다 2시간이 늦다.
전기 불빛과 바람에 실려 오는 또 다른 내음과 높은 온도만으로도 이국에 왔다는 강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따르릉 따르릉”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모닝콜, 모닝콜”하며 어눌한 영어발음의 캄보디아 아가씨가 잠을 깨웠다. 5월 11일이다.
첫 봉사지인 다일공동체로 출발했다.
다일공동체는 국내 노숙인과 노인을 위해 1988년 설립되어 급식봉사를 해온 기독교계 사회복지단체로 굶주림에 못 이겨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노숙하는 거리의 아이들과 만남이 인연이 되어 2003년부터 준비 2004년 3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를 설립했다.
이후 다일공동체는 프놈펜과 씨엔립에서 집단빈민촌 결식아동을 돕기위한 ‘밥퍼’와 ‘빵퍼’로 대변되는 무료급식과 다일천사클리닉을 설립하여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기초진료와 보건위생교육을 하고 있으며 유치원, 체육관, 도서실을 건립해 문맹퇴치에 나서고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조선소사업을 통해 나무배를 만들어 수상빈민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우리는 기온 38도 체감온도 46도의 무더위속에서 400명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식기세척, 식당청소, 채소다듬기, 반찬 만들기에 나섰다.
밥솥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서서히 한 끼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남루한 옷차림, 씻지 못해 땟국이 주르르 흐르는 얼굴, 슬리퍼하나 신지 못한 맨발의 아이들, 입은 아이보다 벗은 아이가 더 많은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못 먹고 못 입고 사는 곳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봉사자들은 밥을 퍼주고 아이의 손을 잡고 식탁에서 먹여주고 다 먹은 식기를 세척하고 마지막으로 식당을 물로 깨끗이 청소했다.
움직일 때 마다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봉사를 한다는 보람이 큰 만큼 돈이 없어 학교에 는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어렵고 어려운 환경에서 하루 한끼 밥한 그릇에 만족해하는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처참함이 서글픔에 더 크게 다가왔다.
초롱초롱한 눈, 밥을 먹다 말고 “굶고 있는 아빠에게 가져다주겠다.”며 자신의 밥을 봉지에 담는 아이, 동생과 밥을 먹다 동생에게 덜어주는 아이의 모습에서 표현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급식봉사 후 인근 수상가옥촌으로 알려진 톤레삽 호수가에서 “원달러”를 외치며 몰려든 아이에게 1달러를 손에 쥐어주자 세상을 다 얻은 듯 만족해 했다.
내일도 밥 한끼를 얻기 위해 달려올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일인당 10달러씩을 걷어 200달러를 공동체에 기부했다. 오늘 우리가 퍼준 밥의 경비가 약 200달러란다. 24만원으로 400명에게 밥을 먹였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5월 13일 자원봉사자들은 씨엔립 남서쪽에 자리한 쩌리우 초 중학교를 찾았다. 이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과정으로 9학년까지 있다. 6학년까지가 초등학교과정 9학년까지가 중학교과정이다.
학생수는 초등학교가 562명, 중학교가 310명 초등교직원이 19명과 중등교직원이 9명이 900여명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교에 도착해 교문을 보니 교문에는 라면을 부셔 붙여놓은 것 같은 글씨가 붙어있었다. 캄보디아 언어인 크메르어다.
갑자기 들어닥친 이방인에 대해 학생들은 경계심이 없다. 쉬는 시간도 아닌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우리는 꿈을 키우라는 뜻으로 풍선을 불어 나누어줬다.
풍선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리 완탄(58)교장의 안내로 교실을 방문해 준비해간 연필세트를 학생 한명 한명에게 나누어주며 “열심히 공부해서 캄보디아가 부자나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여자 선생님의 곁에 혹하나가 붙어있었다. 봐주는 이가 없어 선생님이 아들을 학교에 데리고와 수업을 진행하면서 돌보고 있는 것으로 어린아이를 둔 선생님 대부분이 아들이나 딸을 교실에 데리고 와 수업을 하면서 돌본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취학연령 아이들 중 10%만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이중 10%가 중학교를 다니고 있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선택받은 아이들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입장인데도 수업을 받는 학생들 군데군데 신발살 돈이 없어 맨발인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리 완탄 교장은 “한국이 식민지와 해방후 겪은 전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는데 이제는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선진국이 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 한국의 발전은 한국인들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이 있어 가능했던 것으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한국을 배우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국의 발전을 부러워하며 “한국인들이 캄보디아에 와서 우물도 파주고, 집도지어주고, 무료급식과 진료를 해 주고 있어 캄보디아사람들은 어느 나라 보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들은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위해 작은 성의지만 100달러를 기부했다. 교장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학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학비를 내 주겠다.”고 고마움을 표하며 교문을 나서는 우리들을 버스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김순자 소장을 비롯한 몇몇 봉사자의 눈가에 이슬이 비쳤다.
5월 14일 우리는 폭 1.8㎞ 길이 8㎞에 이르는 서바라이 호수가를 찾았다.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몰려와 “원 달러”를 외치며 구걸을 했지만 여기 아이들은 정당하게 물건을 팔며 “원 달러”를 요구했다. 50이 넘어 60이 되어가는 봉사자에게도 “언니 이뻐 난 오늘 하나도 못 팔았어” “하나만 팔아줘 언니 이뻐”를 외치며 살 때까지 따라붙었다.
마음 좋은 봉사자들은 외면하지 못하고 사줬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오늘은 굶지는 않겠구나”하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묻어있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현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집은 마치 우리나라 참외 수박을 지키던 원두막 같았고 면적은 10평 남짓했다.
보통 캄보디아 건물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4m가량의 나무를 세워 2m정도의 높이에 마루를 깔고 2층을 만들어 2층에서 주로 생활한다. 2층은 곧 무너질 것 같이 삐거덕거리고 금방 무너질 것 같아 무서워서 얼른 내려왔다. 농촌지역의 개인집에는 수도는커녕 우물도 없다. 공동우물이 있을 뿐이지만 건기에는 물이 말라 고생하며 살아간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2009년 앙코르와트 서측 4.84km와 동측 10.34km 등 총 15.2km연장의 2차선도로 '대한민국-캄보디아 우정의 도로'를 건설해 주기도 했다.
잘못된 지도자의 폴포트의 등장으로 200여 만명의 지식인과 경제인들이 학살된 한을 안고 아직도 경제, 문화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에서의 봉사활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구호와 봉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천진난만한 수많은 어린이의 눈망울을 가슴에 품으며 3박 5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정리/ 나기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