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도 때로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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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도 때로는 고맙다
  • 김정범 실버기자
  • 승인 2012.02.2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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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풀릴 때가 된 듯도 한데 아직은 여전히 춥다.
얼마 전 한국 문인 협회 보은군 지부 창립식에 참석 하였다가 기증 받은 책에 지인의 글이 있어 읽고 있다가 스포츠 방송을 보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아내가 들어오더니 주말 연속극을 보겠다며 채널을 돌리겠다고 한다. 주방에는 아내의 전용 텔레비전이 있어서 대개는 주방에 있다가 9시 뉴스가 시작 되어야 들어오는데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일찍 들어와서는 거침없이 주도권 행사를 한다. 원래 텔레비전의 채널 선택권은 언제든지 아내에게 있는 터여서 어쩔 수 없이 양보하면서도 조금은 볼멘소리로 당신은 아마도 내가 금방 죽는 다고해도 연속극을 볼 사람이라고 하였더니 그 걸 이제 알았느냐고 하면서 그래도 조금은 미안하였는지 과일을 가져다 깍아 준다. 나도 채널을 빼앗겼으니 할 수 없이 e메일을 검색하여 보고 있는데 한참 후 누어있던 아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베개도 들어보고 이불도 들쳐보고 야단을 피운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안경을 벗어서 머리맡에 놓은 것 같은데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도 자칫 밟아버리면 돈도 몇 만원 손해려니와 며칠이라도 아내가 불편 할 것이기에 이불을 들고 털어보고 요를 뒤집어 보아도 나오지를 않는다.
아내는 몇 년 전에 한 쪽 눈을 백내장 수술을 하였는데 지난해부터는 다른 한 쪽 눈도 침침하다고 하여 병원에를 갔더니 혈관이 조금 터져서 수술이나 회복은 어려우니 약물 치료로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여 그 날로 안경을 다시 맞추어 쓰고 지내는데 언젠가 한번은 벗어서 방바닥에 놓은 것을 내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밟아 못쓰게 되어 안경을 벗었으면 한쪽에 잘 놓을 것이지 아무데나 놓아서 밟게 하였다고 야단을 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는 아내도 안경을 벗게 되면 화장대 위에나 방 한 쪽에 잘 놓곤 하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를 않아 혹 다른데 두지 않았는지 잘 생각 해 보라고 하였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화장대 쪽으로 가다가 깔깔대고 웃는다. 영문도 모른 채 아내를 바라보는데 그제야 내 눈에도 아내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안경이 보인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려니 화장대 거울에 안경이 보이더라며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누어서 연속극을 보다가 그냥 머리 위로 올린 것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되어 안경을 찾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아내의 건망증이 문제이다. 지난 주말에도 아이들이 오면 먹인다고 찌개거리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는 다른 일을 하다가 냄비까지 태워서 버렸는데 오늘 또 이러니 이게 바로 주말 연속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어쩌다 내가 아내에게서 돈을 몇 만원이라도 빌려 쓰고 돌려주지 않으면 그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영락없이 받아내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업은 아이를 찾아다닌다더니 그 짝이라며 이는 건망증이 아니라 벌써부터 치매가 온 것이냐고 놀렸더니 그래도 그 소리는 싫었든지 요강에다 밥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란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안경을 찾느라고 그 동안 연속극 보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하고 있는 아내의 투정이다. 그래서 내가 놀리는 말로 연속극 보다말고 안경 찾는 것을 보니 연속극 보다는 안경이 더 귀한가 보다 라며 안경보다는 내가 더 좋을 것이고 그러고 보면 드라마보다는 나를 더 좋아 하는가보다 라고 하면서 언제고 재방송을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더니 그래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그런데 건망증이라면 나도 큰소리 칠 처지가 못 된다.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떠오르지를 않아서 애태울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외출 할 때에 아내가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한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오기가 일수고 약속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이랴, 어떤 때는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도 찾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무엇을 찾다가도 무엇을 찾는지 조차도 모를 때가 있으니 총명이 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이라는 말대로 그래서 나는 약속이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어느 때는 그 적어 둔 것조차 생각지 못하고 지나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메모 수첩을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또 그것도 잊어버리지 않을 런지 모르겠다.
건망증이야 나이 들면 다 찾아오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보면 그 것도 걱정일 수밖에 없기에 웃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만은 아내의 건망증으로 이렇게 한참을 웃을 수 있었으니 건망증도 때로는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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