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김장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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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김장 하는 날
  • 김정범
  • 승인 2011.11.2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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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집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11월이 되면서부터 일찌감치 오늘을 D데이로 정해 놓고 집사람이 어머니의 직권으로 아이들에게 김장 작전 소집 명령을 내려서 모두 모이게 하여 김장을 하게 되었다.
김장을 하려면 우선 텃밭에 있는 배추를 뽑아 와야 하는데 처음부터 아내가 세워 놓은 작전 계획에 차질이 생길 뻔하였다. 비가 내리고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는데도 군민 체육대회를 비롯해서 D데이 전 날인 금요일 까지는 예정 된 일정으로 내가 그 일을 해 줄 시간이 여의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김장하는 것을 다음 날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더니 그럴 수 없다며 막무가내기다. 하는 수 없이 군민 체육 대회가 끝나는 대로 빨리 와서 배추를 뽑아 오겠다고 약속하였는데 행운이랄까 요행이랄까 공교하게도 내가 선수로 출전한 우리 게이트볼 팀이 우승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끝나는 시간도 늦어지고 어쩌다 보니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 질 수밖에 없어서 날이 어두워 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보니 헛간에 배추가 쌓여 있다. 누가 한 것이냐고 물으니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서 아내가 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늦게라도 내가 할 터인데 몸도 성치 못하면서 왜 힘든 일을 하였느냐고 오히려 야단치는 것으로 변명을 대신하며 무마하려 하였지만 미안한 마음은 삭으러들지를 않는다.
아내의 수고로 이렇게 작전 첫 단계는 겨우 차질 없이 진행 되었으나 또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배추를 다듬고 쪼개어 놓는 것은 아내가 한다 할지라도 전 날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것은 내가 해 주어야 하는데 이 날도 아침 일찍 부터 외출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아내도 의례건 자기 몫으로 알고 말없이 하였는데 이제는 몸이 전 같지 않다보니 지난 해 부터는 내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이유는 또 다른 하나가 있는데 그 것은 김장을 너무 많이 하려는 아내의 의도를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옛날에는 김장이 반양식이라고 하여 김칫광을 크게 지어 커다란 독을 여러 개 묻어놓고는 김치를 겨우내, 늦은 봄까지 먹기 위해서 어느 집이든 웬만하면 배추 한 접 정도는 다 하였지만 그 당시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께서는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이 하였던 것으로 생각 된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저장이 편리 할 뿐 아니라 사철 저장도 할 수 있어서 김장을 많이 하지 않고들 있지만 그래도 아내는 욕심인지 아니면 예전에 하던 버릇인지는 몰라도 요즘도 5, 60포기씩은 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좀 적게 할 요량으로 내가 돌아와서 하겠노라고 말하고 외출하였다가 저녁에 돌아와 보니 또 아내가 혼자서 배추를 절이고 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염치가 없어서 조금만 하자고는 말 못하고 힘든데 무얼 그리 많이 하느냐고 하였더니 아내는 볼멘소리로 애들도 주고 하려면 이 만큼도 안하느냐고 하면서 내 맘이니 상관 하지 말라고 하며 배추나 담아오라고 하여서 금년도 내가 또 한판으로 지고 말았다.
드디어 D데이가 되었다. 아내는 무우를 썰고 양념거리 준비하랴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이들이 올 터인데 맡기면 될 것을 왜하느냐 하여도 들은 체도 않는다. 이미 소집 명령이 내려진 터라 아이들이 오자마자 아내는 작전 지휘관으로서 1차 임무를 부여하고 수행 명령을 내린다. 부여 받은 임무에 따라 딸아이와 며느리는 양념을 만들고 나와 맏이인 아들은 절인 배추를 씻는 것이다.
초동 작전이 완료 되고 점심시간 되자 오늘 같은 날은 냄새를 좀 풍겨야 한다며 돼지고기 수육에다 이제 막 버무려서 뿌리부분 만 잘라 낸 기다란 김치 쪽으로 보쌈 해 먹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훌륭한 식탁이다.
점심 식사 후 포만감에 졸음이 올 무렵 지휘관이 또 2차 임무를 부여 한다. 이번에는 좀 제외 시켜 주려나 했더니 나와 딸아이에게는 배추에 양념 버무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고 아들에게는 배추를 주방으로 그리고 버무린 김치 포기를 저장 할 곳으로 운반 하는 일이다. 하는 수없이 부여 받은 임무대로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버무리면서 부당한 인사에 항변을 하였더니 지난해에도 잘 하였기에 금년에도 같은 임무를 주었다고 하니 더는 항변 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해서 금년도 우리 집 김장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후 저녁이 문제였다. 작전 시작부터 마무리 될 때 까지 고군분투하며 진두지휘하던 아내가 허리 어깨 팔다리 할 것 없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한다. 그러기에 그런 걸 누가 하랬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가슴이 찡하다. 그러니 어쩌랴? 아프다는 곳을 두드려주고 주물러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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