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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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산성을 오르며..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1.09.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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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어느 새 우리들 곁에 와 있다. 가녀린 몸매를 지닌 코스모스가 길가와 들길에 피어있고, 소슬한 바람이 살짝 다가와 가을 길을 걸으며 가을을 한껏 누려 보라고 유혹한다. 해서 체력을 단련할 겸 최근 몇 번에 걸쳐 삼년산성에 올랐다.
북문의 골짜기에 들어서면, 숲 향기가 먼저 다가왔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방향성냄새와 떡갈나무의 청신한 향 그리고 감미로운 꽃의 향 등 다양한 향기를 음미할 수 있었다. 더욱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내 안을 가득가득 채워 나가곤 했다.
식물의 계통을 분류하여 식물마다 고유한 이름을 부여한 린네는, 식물이 내뿜는 향의 느낌을 유쾌한 순서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누었다. 방향성냄새, 향기로운 냄새, 머스크향과 같은 사향 냄새, 마늘과 같은 짜릿한 냄새, 땀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역겨운 냄새라고 한다. 사람이 지닌 향기도, 식물의 향기처럼 주변사람들을 유쾌하게도 하고 불쾌하게도 한다. 언뜻 바람결에 나의 향기는 어떤 것인가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느끼는 향기는 어떤 것이며 또 내 자신이 나를 평가하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하고, 이런 상념 속에 걷는 북문 숲의 향은 유쾌한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북문을 향해 오르는 동안, 귀를 기울이면 많은 소리가 들린다. 뚝! 뚝! 밤과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도 가끔씩 들리고 청량한 새 소리도 들린다.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밤나무와 떡갈나무 등, 나무들끼리 수런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들도 사람들처럼 자기자랑을 하며 편을 갈라 서로를 헐뜯기도 할까? 이 숲속에서는 내가 제일 많이 안다고 또 많은 사람들을 겪어 보았다고도 할까? 다시 귀기울여보면 나무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때가 묻었다고 하는 것 같다. 또 들려온다. 약 1540여년전, 신라가 온 국력을 기울여 삼년산성을 3년 동안 쌓았다고 하는데,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이 성을 쌓기 위해 돌을 나르고 돌을 쌓으며 서로들 주고받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의 우리는 폐허된 이 성을 복원하는데 그 시대의 정신과 실제상황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저런 소리를 들으며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을 느낄 수 있었다.
향기와 소리로 가을이라고 전해주는 것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성 주변의 숲 속에 가득 찬 나무들과 제 각각 피어있는 꽃들이었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무리지어 피어있는 자주색 물봉선은 우리들에게 할 말이 많다고 하는 듯 했다. 난 물봉선을 볼 때마다 이 꽃은 이야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가 오르는 길옆의 숲 속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 우리가 어렸을 적에 돼지풀이라고 불렀던 고마니가 하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마치 메밀꽃처럼 일부러 심은 듯 했다. 그리고 그 고마니 꽃밭 중간 중간에 요염한 빛깔의 예쁜 상사화가 피어있었다.
북문을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와 보니 보은사 뒤편, 성벽아래에 상사화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느끼며 성 둘레 길을 걸어 보았다. 오름 길에 조성된 나무계단 사이에는 질경이, 쑥, 작은 풀꽃 등 수 많은 파란식물들이 올려다보는데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성위에 서서 보은시내와 멀리 보이는 동아니들, 종곡들, 은사들 등 보은을 둘러 싼 들녘의 황금잔치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건재해 있는 북문의 성 위에는 하얗게 하늘거리는 구절초가 푸른 향기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억새와 패랭이꽃도 피어 있었다. 이밖에 참취와 성벽사이에 보랏빛으로 피어있는 쑥부쟁이.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을의 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이 꽃들은 높고 파란하늘과 바람까지 한데 어울려 우리들에게 기쁨과 쾌적의 안온감을 가져다주었다.
난 삼년산성에서 가을의 향기와 소리 그리고 빛깔을 내 몸과 마음에 담고 담아 보았다.
우리는 아주 바쁜 사람도, 덜 바쁜 사람도, 아니 바쁘지 않은 사람도 일상생활이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틈틈이, 계절이 오는 소리에 기울이기도 하며 계절이 가져다주는 향기와 빛깔, 그리고 바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계절이 주는 혜택 속에서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빈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풍요롭고 넉넉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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