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향토사 문화지킴이 평생 열정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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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향토사 문화지킴이 평생 열정 쏟아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1.05.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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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식 보은문화원장
경제만 있다고 잘사는 지역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독창적이고 살아있는 대중문화가 있어야 진정한 문화를 가진 지역사회다. 지난 1966년 회북면 말단 공무원으로 입문, 32년 4개월 동안 문화재 관련 업무에 전념하다 명예퇴직, 그동안 전교를 비롯 문화원장까지 섭렵하며 향토사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한 문화지킴이를 조명한다. ‘문화를 모르면 정신이 없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야 한다.’며 지역의 문화예술론을 주장하며 지역문화 발전을 향한 열정으로 문화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김건식(71·보은읍 교사리35-5) 문화원장을 만났다.〈편집자 주〉

◇40세 때 ‘향토사’에 눈 떠 문화와 인생 접목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 출신인 그는 회인초등, 보은중을 졸업하고 서울 배문고를 나온 유학파다. 장년 40세가 된 때에 그는 절로 문화와 접목되는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청년 시절엔 정말 문화를 잘 몰랐어요. 오히려 운동과 연계되어 있어 탁구나 조기축구 같은 운동을 잘하다보니 나름 세상 키워드가 됨을 알게 됐지요. 군청공무원으로 행정 계에 근무할 당시인 1972, 1973년이었지요. 당시 김현옥 내무부장관이었을 때 전에는 문화재 공보실에서 취급하던 문화재 관련 업무인 ‘노거수목’에 대한 일제조사를 담당하게 된 겁니다. 100년 이상 된 큰 나무 조사에 들어간 거죠. 수종 상관없이 200년 이상이면 읍면나무, 300년 이상이면 군 나무, 500년 이상이면 도 나무로 지정하여 보호수로 정하게 된 것이죠.”

◇72년 군청 내무과 근무 향토사 연구 집중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문화재에 대해 ‘토양 문화재’란 고유 업무를 맡게 됐어요. 이 때부터 향토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966년 회북면 말단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지요. 다시 1969년에 보은군청으로 전보해 32년 4개월을 근무하다 지난 1998년 지방서기관으로 문화공보실장, 사회진흥과장, 보은읍장, 농정과장 등을 거쳐 명예퇴임을 했어요. 이때는 관심이 가장 큰 시절이기도 했어요.”

◇6년 전교생활 통해 공익법인 ‘한얼회’ 설립

“시대가 변화함으로써 향교에 대한 의미가 많이 희석됐지만 옛날에는 유교를 통해 공자, 맹자의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주민계도를 하는 향교의 본분을 갖고 있었지요. 보은향교 있을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향교 관리사였던 ‘교직사’를 한식으로 중건한 일입니다. 당시 너무 오래돼 무너진 상태여서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은 철거하고 새로 만들었지요. 또 한 향교의 부속건물이었던 ‘전사청’을 한식으로 건립한 일이죠. 그리고 이용희 국회의원의 협조로 특별교부세를 받아 현재 전교사무실로 쓰고 있는 이곳을 마련한 일이죠. 이 건물에는 행정동우회, 서예협회, 향교 등이 합쳐 ‘한얼회’라고 하는 공익법인을 만든 것이 큰 성과입니다. ”

◇유교정신 전통 원사인 ‘금화사’ 3억 들여 증축

“현재 지역에 산재해 있는 향교의 원사들이 많이 있지요. 장안면 서원리의 상현서원, 삼승면 금곡리 금화사를 비롯 수한면 차정리의 후율사, 관기리의 고봉사, 산성리의 백봉사 등 선비들을 모셔 제향을 하는 곳이 너무 낡고 노후돼 이용희 국회의원에게 요청하여 특별교부세를 기부 받아 당시 3억 원을 들여 원사인 금화사를 증축한 일이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당시에는 성곡 최씨와 전 이향래 군수의 협조도 한몫 했지요.”

◇바깥일엔 ‘무한 자신감’, 가정 일엔 ‘빵점’

“스스로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가정 일엔 전혀 문외한으로 빵점짜리 남편이었고 아빠로서 가족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바깥일엔 늘 인정을 해주었을지는 몰라도 가정 내에선 언제나 부족한 남편이자 아빠이지요.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큰 관심을 쏟아주지 못했지만 낙오 없이 잘 커주었다는 고마움만이 가득합니다.”
가족으로는 언제나 현모양처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내조해왔던 부인 구옥순(69)씨와 3남1녀가 있다.

◇오장환문학제·속리축제 등 지역민 관심요청

“지역민들이 지역문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정신이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역에는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는 지역문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지역민의 무관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장환문학제에 대해 외부에선 이견도 제시되고 있지요. 현재 지역 내에는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이끌고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아요. 현재 도종환 시인이 맡아 주고 있어 든든합니다만 대안 찾기에 부심하고 있어요. 현재 보은문학회가 참여하고 있어 큰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문학상에도 이견이 커 문학상을 기성시인으로 하지 않고 신인문학상으로 만들자는 제안인데 2년 간 발간된 시집으로 심사위원회에서 평가를 내려 심사 선정하는 것으로 누구나 참여의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작년 지역출신의 한 시인도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으나 박빙의 결과로 떨어졌지요.”

◇대추축제에 속리축제 편입여부 ‘아직 불투명’

“올해로서 35회를 맞이하는 속리산축제가 지역민의 대축제로 기획되고 있는 대추축제에 편입하려고 하는 계획에 대해 아직은 불투명합니다만. 우선 대축축제의 확대 실시로 속리축제는 예산도 축소됐고 그러나 상황 봐가며 축제의 방향이 정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축제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지역민들의 관심제고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지금까지 보면 지역민들은 축제에 있어 무관심 합니다. 함께 즐기고 나누는 지역문화가 될 때 비로소 문화의 가치가 살아나죠. 문화와 예술이 살아날 때 지역문화도 꽃이 피는 것입니다. 문화를 사랑하지 않는 지역민은 정신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우리군이 여러 가지 낙후되어 있지만 분명 문화 선진화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역 문화의 버팀목으로서 아직 향토사연구에도 열정을 쏟는 김 원장은 수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상황으로 무리한 운동은 피하고 한 시간 정도의 3~4㎞ 걷는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고 있다.

◆ 경 력 ◆
1988. 8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現)
1989. 2 보은삼년산향토사연구회장
1997. 2 보은문화원 부원장
1997. 3 경주김씨중앙종친회 종사연구위원
1998. 10 지방서기관 명예퇴직 (문화공보실장, 사회진흥과장
보은읍장, 농정과장 역임)
2004. 8 보은향교 전교
2005. 7 민주평통통일자문회의 보은군협의회장
2006. 7 보은문화원장(現)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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