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인생 도전으로 대망 이룬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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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인생 도전으로 대망 이룬 ‘인생역전’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1.02.1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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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구건서씨
▲ 학력·경력과 주요저서 고려대학교노동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2010년 현재)독학사 학위수여(2008년 2월, 교육부장관)고입, 대입 검정고시 합격광신중학교 3년 중퇴수유초등학교 졸업충북 보은 산외초등학교 경력(현) 열린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현) Navigatorship 학교장 (현)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컨설턴트 (현) 한국노총 자문위원주요 저서 ▲비정규직노동법 실무(2008, 중앙경제)▲근로기준법 개정판(2008, 중앙경제)▲노사협력적 고용조정 매뉴얼(2009, 한국노총중앙연구원)▲IT산업 노사관계에 대한 연구(2009, 포스코경영연구소)▲Success Navigatorship-행복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자기창조경영(2010, 시그마북스) ▲Masterful Coaching(마스터풀 코칭, 2010, 공역, 중앙경제)▲The Future of Work(퓨처오브워크, 2010, 번역, 한울)▲근로기준법 제3판(2010, 중앙경제)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도 그러했다. 인생이 주는 모진 어려움을 도전만으로 먼 과거사의 일로 인생 역전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야기의 주인공, 바로 23년 간 노동전문변호사인 공인노무사로 활약하며 변화와 도전으로 동분서주하는 구건서(56·열린노무법인·서울 서초구 서초동1553-5)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1968년 상경 생활고 못 견뎌 중학교 중퇴

능성구씨 집성촌인 보은 산외면 봉계리 출신인 그는 산외초등 5학년 때인 1968년, 꿈을 키우기 위해 궁핍했던 고향을 등지고 가족과 함께 상경한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녀야 했던 유년 시절 소 풀 뜯기고 공부보다는 농사일 도왔던 가난했던 고향의 추억이 오히려 제겐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아픈 회초리가 되어 주었고 독한 오기를 품게 한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고향이란 두 단어는 가슴 한 켠 아릿한 추억과 그리움, 애잔함으로 말없이 다가오는 오랜 우정 같은 것이었다.
재작년 76세를 일기로 작고한 부친 구연풍씨와 모친 강봉순(80)씨의 3남2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서울생활이 녹록치만은 않았던 터에 생활고에 다친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서울 광신중(3학년) 때 중퇴를 단행한다.
인생 중 그가 가장 ‘어두웠던 터널을 지날 때‘란 말로 표현할 정도로 이때가 학교중퇴, 가출, 또래들과의 비행 그리고 소년원까지로 점철됐던 밑바닥 인생이었다고 회고한다.

◇택시기사서 노무사 되기까지 혹독한 담금질

“그 시절 안 해 본 것 없었어요. 과일장사, 고물장사,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공장에 취직하려해도 나이가 어려 퇴짜 맞고...1년간의 소년원 생활에서 얻어진 소중한 정신적 소산이 나를 살렸어요. 바로 열심히 살고 인간답게 살자‘는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것 이었어요. 그것은 ’독약‘이 아닌 ’보약‘이었지요. 그 때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관이 나를 지배하게 된 겁니다.”
지난 1983년 드디어 생각한 바대로 택시운전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3년간의 피나는 인생도전이 시작된다.
“저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운전대에 법전을 오려 붙여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공부했지요. 거기다가 테이프까지 틀어 공부하니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아우성이었지요. 차라리 음악을 틀으라고요.”
1986년, 6000명의 응시생 중 4등으로 1차 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게 되고 89년 2,3차를 통과해 최종합격이라는 승리를 거머쥔다.
“그 기쁨은 캄캄한 터널을 헤쳐 나오면서 앞이 확 트이는 기분... 그런 것이었지요.”

◇2년간의 법적투쟁 삼풍사건 산재처리 보람

“삼풍사건 때 자원봉사라는 명칭으로 구조작업에 투입됐던 사람들이 분진, 가스, 연기 등 으로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결핵은 원래 산재처리가 안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위해 2년간의 법적 투쟁을 벌였지요. 마침내 산재처리로 해결을 보았던 것이 노무사로서 가장 큰 보람이었어요.”
변화와 도전만으로 2007년 고졸 검정고시, 2008년 독학사학위 취득, 현재는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 외에도 기업의 노무관리, 노동법, 법률관리, 근로자의 비정규직 부문이나 부당해고, 컨설팅, 산재처리를 위한 상담, 복수노조 등의 권리 구제 등을 위해 발로 뛰고 있는 그다.
“하루에 3~4건, 1년이면 300회 이상 유수기업의 노동법 강연을 위해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등을 동분서주하고 있지요.”

◇초등동창모임 한 달에 한 번 모여 고향걱정

“많지는 않지만 대략 8명 정도 모이지요. 한 달에 한번 꼴로 산외초등 동창모임을 가져요.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고향 보은에는 젊은 층이 없고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그의 꿈은 아직 진행 중이다. 3년 후 석사 과정을 마치면 한의사자격을 취득할 꿈과 저서로 평생 100권을 낸다는 야무진 계획이 그를 더욱 노력파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요. 한의사 자격증은 못 따더라도 대체의학 같은 공부를 하여 봉사 활동을 하고자하는 여망이 있어요. 물론 노무사로서 봉사도 가능하지만요.”

◇미래인생 저서 100권·20년 후 시·소설 집필도

“세운 꿈들을 실현해 가는 것 외에도 이제는 쫓기는 삶이 아닌 여유로운 삶을 위해 시골 모처에 농장을 만들고 있어요. 26,000㎡의 대지에 이미 집을 지어 놓았구요. 나무랑 농작물 등을 심어 농장을 운영하려구요. 이것은 가출당시 청소년 시절인 40년 전에 세워 놓았던 ‘언덕위에 하얀 집’을 짓는 꿈이었죠. 20년 정도는 저서 100권을 채우고 앞으로 20년은 시나 소설을 쓰면서 혼자만의 호사도 누리고 싶습니다.”
2010년 군 초청 연사가 되어 보은문화원에서 ‘나의 꿈 나의 도전’이란 강연으로 박수를 받은 바 있는 그는 “인생 3막은 지금부터‘란 야무진 인생관을 펼쳐놓고 있다.

◇아내와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 가입 ‘사랑 키워’

“젊어서 시집와 지금까지 고생해온 아내에게 늘 미안한 생각으로 인라이 스케이트 동호회를 통해 늦게나마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지요. 취미도 같으니 대화도 많아지고...그것이 행복이더군요. 늘 가족보다 일이었는데 이제는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인 유명자(54)씨는 “가난했을 당시인 1983년 점심값 1500원으로 돼지고기를 사서 구워드렸는데 너무도 맛있게 드셔서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아들인 인회(31·공인회계사)를 두고 공인중개사 최종합격 했을 때와 인회를 낳았을 때가 인생 중 최고의 기쁨이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인생에서 부족하다는 것은 소중한 개념이죠. 그것은 곧 쟁취하려는 오기와 배짱을 갖게 하니까요.”

◇‘큰 꿈 갖되 그보다 더 노력해라’ 고향후배에 제언

“시골에서 공부하더라도 결코 큰 꿈을 갖는다면 실망할 것이 없어요. 고향후배들을 위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큰 꿈을 갖되 그 실현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와 맞설 용기를 가지라는 것도요.”
모진 고생 끝에 대망을 이뤘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시대에 꿈꾸는 이의 도전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감히 확신하면서 말이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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