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담그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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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담그기2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0.11.2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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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말은 “김장 하셨어요?”란 말이다. 남자들 까지도 그런 말이 오고 갈 정도이고 보면 겨울철 저장식품인 김장이 우리의 생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큰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꼭 해야 할 김장, 김장철이 돌아오면 주부들은 몸과 마음이 함께 바빠진다.
김장을 준비하면서, 이미 나눠줄 사람들과 양을 계산해 보니 마음과 손길이 즐거워진다. 몇 시간째 마늘과 쪽파를 다듬으면서 큰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 해 4월이었다. 오랜만에 언니 둘과 만나 부모님 산소에 갔다. 세 자매는 산소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가져간 팩 음료수가 따가운 햇살에 따뜻해질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각자 반추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 그 이야기 속에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양력으로 11월 초순에 내가 태어나던 날, 몹시도 추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김장배추를 절여 놓고, 산통이 왔고 이후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당시 고2에 다니던 큰 언니는 산모인 어머니의 밥과 국을 끓이면서 청솔가지가 땔감이라 연기에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쌀 한 줌에 보리쌀을 넣어 지은 밥에서 막내를 출산한 어머니를 위해 쌀알을 고르려 해도 보이지 않아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때가 되면 밥을 지어야 했고 김장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식구가 많았으니 그 양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니는 어머니가 절여 놓은 배추를 머리에 이고 먼 거리에 있는 냇물에 가서 씻었고, 다시 이고 날랐다고 했다. 그 배추를 이웃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충 고춧가루를 풀은 물에 마늘과 생강 그리고 파를 적당히 넣고 그 물에 적셔 김치를 담았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손톱 끝이 다 달아 피멍까지 들었고 눈물을 섞어 만든 그 해의 김장은 정말 맛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학교를 열흘 이상 쉬고 갔더니 담임선생님께서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언니는 울면서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못 나왔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언니의 손을 잡으면서 “18살인 네가 이 작은 손으로 어머니 해박바라지를 했다니...” 하고 말씀하시며 함께 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탄생은 또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고, 많은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어머니는 큰딸에게 짐을 주어 미안했고 창피한 마음도 드셨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 머쓱한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망초를 뽑고 또 뽑았던 때가 떠오른다.
오십년이 넘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김장김치를 한다는 것이고, 만드는 방법과 시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주로 찹쌀 풀을 쑤어 고춧가루를 개곤 했는데, 이제는 황태와 다시마 고추씨 무 등을 넣고 푹 끓인 육수를 만들어 활용하기도 하고 마늘과 생강 등을 갈을 때, 무도 함께 갈아 사용하기도 한다. 음식도 흐름에 따라 유행이 있는 것 같다. 내 년쯤에는 그 이후 몇 년 후에는 김치에 무엇을 넣는 것이 유행이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핵가족에 맞게 김장을 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아직도 시골에는 형제자매들이 친정이나 시댁에 모여 많은 양의 김장을 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매년 5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친정에서 김장하는 친구가 있다. 8남매의 장녀인 친구는 1박 2일에 걸쳐 배추를 절이고 이튿날은 버무리는데 그렇게 김장을 끝내면 몇날 며칠을 앓는다고 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각자하라고 해야지 다짐을 하지만 김장철이 돌아오면 다시 반복된다고 한다. 그것은 친정 부모님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8남매가 먹을 양만큼의 배추와 무 등 김장 부재료를 심어서 수확을 하고 자식들이 모두 모여 김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친구네가 김장을 담는 날은, 어머니는 절편을 한 말 뽑고, 귤과 과일도 상자로 들여 놓고, 동네사람들을 위해 막걸리와 돼지고기 수육과 많은 찌개를 준비한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김장 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자식들이 다 모였네요.” 하는 말을 부모님은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김장이 끝난 뒤, 친구는 동생들에게 김치 값을 톡톡히 받아 용돈도 얹어 어머니 손에 넘겨주신단다.
이제 내 친구는, 사위를 보고 손녀딸도 있어 할머니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친정식구들과 공동으로 김장을 할까? 그것도 친정엄마가 살아계실 동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 세대에는 자신이 주관하여 그렇게 일을 벌일 수가 없다.
맏며느리인 한 친구도 시어머니를 도와 김장을 담근다. “어머니! 저희는 그냥 절임배추로 김장 할래요.”하는 말이 하고 싶지만 시어머니가 김장을 함께하면서 자식 며느리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에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어머니들은 많은 양의 김장재료를 준비하면서 비록 힘들지만 당신의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이 먹을 음식이란 것을 생각하며 존재감과 기쁨을 가질 것 같다.
나 역시 김장을 담는 날, 김치를 가득 담은 여러 개의 통을 바라보며 남편은 “어~ 우리 부자 됐네.” 라고 분명히 말 할 것이다. 이어서 “당신 김치 담느라 수고했어.”란 말이 나오지 않으면 난, “김치 담느라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 데가 없어요.”라며 그 말을 들을 때까지 엄살을 살살 부릴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해 보며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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