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미학’으로 시심(詩心) 불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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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미학’으로 시심(詩心) 불사르다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0.11.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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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바라기'로 작품 활동...올해 세 번째 시집 출간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이 계절에 만나본 순수 전통 서정시인 구희문(40)씨.
그는 초겨울의 낭만을 따뜻한 한 잔의 차로 위로 받기에 충분한 인간 본질의 ‘서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시인이었다.
어쩌면 이태규(시 산맥부회장·단국대 일문학 전공) 시인의 말대로 구 시인은 일반 시인과는 사뭇 다른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 발생적인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인간본연의 고독을 표현하며 스스럼없이 자연과 사물의 관계를 소통해내는 현대 전통시의 매개자다.
1992년에 시집 ‘삶 바라기’ 출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사람이 그리울 때 난 혼자가 된다’란 직품으로 일찍이 현대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청년 시인이다.
그의 작품을 대하면 허공 같다. 차디찬 얼음 밑으로 흐르는 투명한 물처럼 본질 속에 가라앉은 서정성을 ‘슬픔의 미학’으로 이끌어내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는 참 많이 가을을 닮았다. 마음 속 서정의 한을 드리우고 마알 간 투명의 시어를 낚고 있는 강태공이다.

◇말수 적으나 감성과 고집 있던 어린 시절
올 7월 세 번째 시집을 낸 ‘얼굴’(천년의 시작 출판)의 주인공은 충북 보은군 탄부면 대양리가 고향이다.
온화하고 평범했던 가난한 고향의 기억은 지금껏 시성의 근원이자 아픔이며 본질적 사랑의 근원이다.
또한 고향이란 이름은 가슴 속에 잊힐 래야 잊힐 수 없는 아련한 상채기다.
그는 효성 지극한 아버지 구홍림, 어머니 송인옥씨와의 사이에 2남 1녀 중 장남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말수가 적고 감수성이 놀라우리만치 풍부했던 그는 여린 마음으로 인해 세상의 소통으로 상처 입은 순수 영혼의 소유자다.
“제 기억으론 중학교 때였나 봐요. 군으로부터 상을 받을 만큼 아버지는 효심이 지극한 효자였어요. 농사를 집안이었지만 아버지는 인자하고 어지 셨어요 회초리 한 대 맞지 않고 자라며 그 속에서 연약하지만 강인한 온화함을 선물로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소꼴 먹이고 농사일 돕던 전형적인 농촌 아이였지만 그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학업 성적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특기였다.

◇싸리 꽃 슬픈 운명처럼 만난 ‘나의 친구야’
“나는 보덕 중 출신이었고 친구 종원이는 보은중 출신이었지요. 나와 종원이는 고등학교에서 운명처럼 만났어요. 중학교 때부터 종원이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고, 고등학교에서도 늘 전교 1등이었어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은 저와 공통점이 많았던 친구였어요. 그러는 사이 나는 몸이 아파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내려갔지요. 사춘기와 맞물린 당시는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아팠던지... 그렇게 1년이 흘러가더군요. 길고 오랜 시간의 투망 속에서 무심한 강변을 쳐다보며 시심을 키웠어요. 가장 아프면서 가장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니 알겠더군요.”
해가 바뀌도록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았던 싸리 꽃이 눈물겹게 흐드러졌던(4~5월쯤) 때 였다.
“부모가 없었던 친구(이종원)는 돈한 푼 없이 우리 집까지 수 시간을 걸어왔다고 했어요. 춘궁기였던 그 때 난 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요. 가난만을 탓하며 우리는 하염없이 싸리 꽃을 바라보며 울었던 기억 밖엔 없어요. 이번 출간된 시집 ‘얼굴’ 36쪽에 그 때의 처절한 아픔인 싸리꽃 시가 바로 그 마음이 표현된 겁니다. 많이 울었던 그 날 친구에게는 마지막 봄이 되었지요.”
“나, 바다로 간다. 돈 벌어서 검정고시 볼 거야.” 친구(종원이)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떠나기 얼마 전 충대부고 담임선생님에게 남겨진 한통의 편지에는 이렇게 절절이 쓰여 있었다.
‘난 널 믿는다.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생략)...(종원이 편지내용)’
6개월 후 아는 고향친구로부터 떠나간 친구(외항선원이 된 종원)의 사망소식을 들었고 하늘도 소나기를 억수같이 쏟아내던 날, 그는 흰 국화꽃을 한 다발 사서 청주소재 절인 용화사 에 가서 친구를 위한 명복을 비는 불공을 올렸다고 회고했다.
“마음속에는 아직도 먼 길 찾아왔던 친구 종원이가 있어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그 안타까움을 기억합니다, 싸리 꽃 속에 숨은 눈물과 그날의 아픔까지 도요.”

◇고교 때 임승빈 교수로부터 발탁된 시적 재능
“지금은 충주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제 고등학교 때 충대부고 전영학 선생님이 임승빈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제가 쓴 시 8편을 보시고 그 중 몇 편을 보시더니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의 원고(시 50여편)를 나라원출판사(당시)에 전달했지요. 지난 92년 1월 출판된 시집 ‘삶 바라기’가 세상에 처음 빛을 본 계기가 된 거죠. 당시 14쇄를 출판할 정도로 인기 베스트셀러였던 ‘삶 바라기’예요. 이듬해 대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사람이 그리울 때 난 혼자가 된다’ 작품은 당시 계약금만 180만원 받고 출간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어요.

벼 떠난 자리
                            구희문
눈 내리 쌓인
허연 볏 논 위에 구멍 숭숭 뚫린
 
대지의 피리 ?
 
그걸, 내 입술에 대고 목 메듯 불어라
바람의 꿈을 목 메듯 불어라
 
봄 목련 뚝뚝 떨어지듯
저 하늘로
대지의 꿈을 푸르게 불어라


◇선배 시인들이 바라본 구 시인의 작품세계
고향은 누구에게나 훌륭한 스승과도 같다. 시인의 작품 세계는 살아내 온 고향의 자연과 인성이 삶의 배경과 깊은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한 가운데 그를 보고 느껴온 선배시인들의 번뜩이는 그에 대한 평가수준은 과연 얼마 쯤 될까.
현재 시인이며 숭실대 영문과의 김영호(미국하와이주립대 초빙교수·현대시학 등단)교수는 “질박한 토속어 사용, 순수 감성의 19세기 낭만주의 특성을 살린 서정적 시풍의 시인이며 자연친화적인 대상으로 시인의 영혼을 추출하는 직관력이 뛰어난 시인”이라며 “본질적 고독성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하며 전통 민요풍의 운율로 조화로운 리듬의 미감을 살려내는 순수 서정시인"이라고 밝혔다.
한글학자로 강남시문학회부회장인 우재욱 시인(세계·문화일보 신춘문예, 현대시학 등단)은 “현대적 감각을 전통 시 문법으로 풀어내며 거칠게 풀어내지만 시 내면에 흐르는 감각과 정서는 아주 섬세하다.”고 말했다.
임윤식(시인,서울대‘오늘의 한국’)발행인은 “삶을 진솔하게 표현, 은유와 함축성, 반전과 긴장감이 뛰어난 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표현했다.
백우선(현대시학,한국일보 등단) 시인은 “전통가락이나 한의 정서로 삭막해진 우리 정서를 옛 고향의 아릿한 추억으로 촉촉이 적셔주는 역할을 하는 서정시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언제나 고향의 향수를 가슴에 끌어안고 사는 구 시인은 “부모를 너무 사랑해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의 부모가 모두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 시집 ‘얼굴’ 천년의 시작서 출간
“저의 세 번째 시집인 시 작품 ‘얼굴’ 50여 편이 천년의 시작에서 빛을 보게 된 계기는 써놓았던 시 50편을 우편으로 송달하게 되었는데 약 3개월 후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출판을 결정해 준 천년의시작 출판사 김태석 발행인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시 쓰는 시간 ‘무념무상·가장 행복한 순간’
“우리나라 특유의 소박하고 전통적인 정한의 시를 바탕으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정을 표현한 마음의 시를 쓰는 것이죠.”
슬픔을 영원히 간직하고 갈 그는 “시를 쓰는 동안은 무념무상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꿈은 가을같이 오리라고 말하고 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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