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회상
상태바
가을의 회상
  • 김정범 내북면노인회장
  • 승인 2010.10.21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제께 토요일 오후, 속리산 잔디 공원에서 명사 초청 충북 순회 문학제가 있었다. 나야 명사랄 것도 못되지만 초청을 받아 출연하여 신석정님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암송 하였다. 아침엔 비가 조금 뿌리더니 날씨가 쾌청하여 그야말로 문학과시 그리고 음악과 정서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늦가을의 오후였다. 다른 출연자 분들의 시 낭송을 들으면서 느꼈던 이 가을의 한없는 은혜와 환희의 여운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어 나를 설레게 해 준다.
왠지 별로 즐기지 않는 커피가 먹고 싶다. 콤팩트 디스크를 밀어 넣어 타이슨의 명상곡을 들어본다.
어느새 산자락으로 깊어진 단풍은 가을의 정취로 한없는 꿈의 나래를 펴게 하다가도 이제는 빈들이 되어가는 들판과 발길에 구르는 낙엽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서글퍼지며 센티해진다. 어느 시인이 말 했던가? 여자는 울기를 잘 한다고, 봄에는 롯데의 순정에 울고 여름에는 카르멘의 정열에 울고 가을에는 시몬의 고독에 울고 겨울에는 카추샤의 실연에 운다고, 만일 내가 여자였더라면 오늘 같은 날엔 시몬의 고독에 함께 울었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이 저녁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신록의 싱싱함이 어제인데 이제는 낙엽이 되고 또 낙엽 되어 바람 따라 떠나는 것을 보노라면 세월의 무상함과 빠름을 새삼 느껴본다. 세월은 강물처럼 또 유수와 같다고는 하지만 지난 세월들이 잡힐 듯 하면서도 아득히 먼 것은 세월의 이율배반인가? 나 비록 아무리 가는 세월을 서러워한들 이 가을을 마지막으로 내 나이 고희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세상을 살 만큼은 살아 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소년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 주책일 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럴 때이면 가끔 스쳐가는 그리움과 잊혀 지지 않는 추억들이 이 가을의 낙엽처럼 쌓여지게 마련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일들이지만 내게 머물다 스쳐가고 또 망각 속에 멀어지면서도 다시 내 곁에 다가오곤 하는 조각들이 그래도 씨와 날이 되어 내 삶을 소중하게 엮어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낮 모르는 여인과 갑자기 만나게 되고 또 결혼 하여 아이 들을 낳아 기르면서 쫓기듯 살면서도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헤쳐 왔는지 지금 생각 하면 신기하면서도 나 자신 대견하게 느껴진다.
행복한 사람은 후회 없는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후회 없이 살아 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물론 욕심을 가지고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세월의 길목, 모퉁이 마다 후회스러움으로 다시 오라 손짓하며 서 있지만 그래도 이제껏 열심히 살았고 또 큰 불행 모르고 살아 온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축복이리라 생각하며 늘 감사한 마음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부모님과 아내 아이들에게 고맙고 그리고 친구들을 비롯하여 내 삶의 곁에 다가 왔던 수많은 이웃들 모두가 좋은 만남이었기에 그들에게도 감사 한다.
항해사가 험한 파도와 폭풍을 슬기롭게 이겨 나가고 순풍에 감사하듯 나도 내 인생의 슬기로운 항해사가 되고 싶다. 지금은 아내의 건강이 썩 좋은 편이 못되어 조금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곁에 있어 서로가 절반 되어 행복 한 것은 이 또한 나에게 주신 신의 은총이리라.
며칠 전 아내와 농담을 하면서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고 한 아내의 말을 새삼 되 뇌이게 된다. 나의 지난날이라고 해야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남에게 나쁜 이웃이 되지 않았고 또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에 최선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아 왔음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또 그렇게 살아가리라.
곡식 영그는 소리가 들려오던 들녘에선 이젠 콤바인 엔진 소리가 마법사의 주문처럼 빈들을 만들고 갈 숲을 지나온 바람은 거침없이 빈들을 지나 와 나의 뜨락을 쓸고 간다. 져버린 꽃들의 잔해를 서러워하며 그래도 이 가을을 지키고 있는 국화는 언제 기러기 떠나는 날 찬 서리에 몸부림칠는지,
흰 구름이 걸친 하늘가의 저녁 햇살이 유난히 정겹다. 소슬 바람도 창가에 다가왔다. 이 저녁에는 사진첩이라도 넘겨 가면서 그리운 영상, 잊혀 지지 않는 상념, 그리고 흩어진 추억의 조각들을 모아 인생이라는 말 속에 담겨진 그 수많은 뜻을 정리 해 보아야겠다.

/내북면 노인회장 김 정 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