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은 보람과 행복 주는 또 하나의 인생”
상태바
“무료급식은 보람과 행복 주는 또 하나의 인생”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0.10.07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양수 보은무료급식소 소장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의 말씀이 있다.
보은읍 삼산 1구에서 43년간 살아오면서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몸소 실천해온 사람이 있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마다않고 언제나 큰 가슴으로 품어온 동네 터줏대감 김양수(64) 소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실천해와

“사람이 살다보면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웃들을 돌아보면 그런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러면 마음에서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곤 해요. 돕기 위한 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저지르는 성격인 것을 전 들 어떡하겠어요.”
한적한 골목 안 20평정도 될까 말까한 조립식 건물에 취사용품을 갖추고 바깥기온을 그대로 맞아가며 노인들의 무료 점심급식을 봉사해 온지 어언 8년째다.
“평일엔 7, 80명 정도, 장날엔 100명 정도가 점심을 드시기 위해 몰려오죠. 그때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이지만 마음만은 평화가 깃들고 보람과 행복으로 가득 차는 때입니다.”
◇남편작고로 소외이웃 돌아보는 마음 생겨

그는 지난 1993년 남편이 군대에서 얻은 지병인 류마티즘으로 고생을 하다 작고하자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들과 여생을 함께 하고 있다.
김 소장은 “남편은 이장생활만 30여년을 지냈어요. 삼산 1구에서만 했으니까 무척 오래 했죠. 집집이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만큼 마당발이었어요?”라며 지난날을 회고해 보는 그다.
현재 가족으로는 중 2때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다 대학교 2년 때 한국으로 건너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최영준(32)을 두고 있다.

◇지난83년 새마을회, 어머니경찰대에 투신

지난 1983년 봉사단체인 새마을 회에 몸담아 이듬해 읍 회장을 지내고 지난 2002년 그 일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경찰대에 들어가 경찰대장으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한 우물만을 팠던 그였지만 당시 연임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일을 그만두고 2003년 3월 1일 무료급식소를 차리는 계기가 마련된다.

◇당시 이중재서장 권유로 무료급식소 시작

“당시 박종기 군수, 이중재 서장이 계실 때였지요. 이 서장이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하면서 무료급식소 운영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그것이 시작이 되어 지금의 인생이 되었어요.”
김 소장 집 맞은편에 살았던 총각 이중재 서장의 청으로 무료급식소를 시작했던 그는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결정을 했지만 대원들 모두가 찬성하지는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출향인사인 월송의 송시영씨 500만원, 천성호씨가 200만원을 내놓으셔서 그것이 종자돈이 되어 무료급식소를 차릴 수 있었어요.”

◇노인복지관 없던 시절 급식노인 150여명 달해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신의 은총’이라고 한 꽃동네의 모태가 된 최귀동 노인의 말처럼 우리 주위에는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생존할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시 노인장애인복지관이 없던 시절, 점심시간에는 150여명 이상의 노인들이 줄을 잇던 시절이었지요. 주로 국밥을 끓였죠. 이렇게 1년하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돈이 떨어지더군요.”
이웃을 위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봉사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마음먹으니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날아왔다.

◇영안실에서 식당일 맡아 남은반찬 급식소로

전 새마을금고 상무이사였던 김병옥씨의 도움으로 영안실에서 일을 하게 된 그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남은 반찬을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무척 도움이 되었죠. 감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워낙 모태신앙인 기독교였기 때문에 음식 만드는 일만 했지요.”

◇작년부터 군 지원 이뤄져 김 소장에 큰 도움

군에서 작년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한 김 소장은 무료급식을 도와주는 새마을회원들이 고맙기만 하고 지금은 바쁜 농사철이라 이웃들이 도와준다며 흐뭇해한다.
매주 수, 목, 토가 되면 오전 9시 30분부터 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학생들 차를 타고 병원 일을 보러오는 그들은 탄부, 마로, 수한, 회남, 회북 등 각 면지역에서 몰려온다.
또한 토요일에는 식품회사인 대영식품에서 모든 찬거리를 마련해 봉사를 해주고 있다.
“밥, 국, 반찬 3가지, 어쩔 때는 생선 등을 올리죠. 이들을 위한 먹거리 지원은 꼭 필요합니다. 처음 어려웠을 때는 미국에서 성공한 친정조카들이 많이 도와주었어요. 특히 ‘지짐이’를 운영하는 조카가 육류 등을 도와 줍니다. 감사하죠.”

◇겨울대비 무료급식소 건물마련 시급한 현안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김 소장의 걱정은 겨울을 대비하고 더운 여름을 피할 수 있는 무료급식소 건물 마련에 있다.
“몸이 성치 않은 노인들이 많아 보행손수레를 많이 끄는데 자동차 사고나 위험요인이 많지요. 그래서 안전한 지역에다 무료급식소를 마련하고 싶어요. 도로가를 지나거나 도로가를 끼고 있는 건물은 절대 위험하기 때문에 고생스러워도 군이 제안하고 있는 곳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료급식 노인들의 대모로 살아온 인생

점차 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가면서 그의 걱정도 함께 깊어간다. 무료급식 노인들의 안위 때문이다. 자식이 있지만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90대 노인을 위해 비닐에다 몇 끼의 밥과 국을 몰래 싸주는 마음이 그것이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과의 인연이 계속 사랑으로 이어지길 그는 오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뿐이다.
/천성남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