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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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아내>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09.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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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 아닌 사람들은 평탄하게 잘 사는 것 같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크고 작은 고민을 안고 있다. 올 들어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한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한테도 공개하지 않았던 8년 전에 쓴 편지를 소개한다.

늘 수고로운 당신에게
이미 커다란 가로수 잎은 짙은 녹색을 잃어가고 있으며, 들길과 산자락에 흐드러진 야생화가 한껏 뽐내는 예쁜 가을날이네요. 오늘도 직장으로 일찍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파이팅을 외쳐보지만 말로 표현을 못했어요.
언제나 시간은 많은 일들을 남기고 뒷걸음질치고 달아나지만, 올 들어 유난히 우리에게는 분주했고 당신에게는 힘겨웠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부부의 고향이며, 결혼 후 15년 이상을 살아왔고 당신의 일터가 있는 지역에서 큰애의 고등학교 진학으로 인해 이사를 해야 했지요. 당신이 출퇴근해야 하는 수고로움과 지방공무원은 지역에 거주해야 하기에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불가피 했지요.
이사 후, 난 두 아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이어서 아버님의 부음.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야 했어요. 아버님이 떠나신 후, 당신은 겉으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잠을 잘 못자는 걸 보면 한 쪽 날개를 잃은 듯한 심적인 고통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당신은 바빴어요. 올봄 건조주의보 속에 산불방지 비상근무를 하며, 토요일과 휴일 없이 직장에 근무를 해야 했어요. 공무원들의 계도와 앰프방송을 열심히 해도 산불은 수시로 났고 그때 마다 산으로 달려가야 했지요.
이사하기 전, 어느 날에는 오후 3시쯤, 소방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산불이 났다고 했어요. 불안한 마음에 산을 올려다보니 불길은 치솟고 연기는 금방이라도 시내를 덮칠 것만 같았어요. 정말 무섭고 안 봐도 고생하는 당신이 보여 안절부절 못했지요. 시간은 흘러 날은 어두워져도 불길을 잡았다는 소식은 없고, 그날 밤, 당신은 춥고 캄캄한 산속에 있어야 했어요.
당신을 기다리며, 아들이나 남편을 감옥에 보내놓고 마음이 걸려, 한 겨울에 난방하지 않은 냉방에서 잠을 뒤척였다는 어머니와 아내들의 이야기가 실감이 났어요. 난 부끄럽게도 마음만 있었을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어요. 당신은 새벽 2시가 넘어 돌아와 잠시 눈을 부치더니 또 새벽같이 산으로 달려갔어요. 그렇게 산불로 인해 고생을 하면서도 직장에 대한 불만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신록이 짙어지면서 산불은 해제가 되었지만 그것 보다 더 비중이 큰 사상최악의 가뭄을 겪어야 했어요. 농업관련 공무원이라 또 비상근무는 이어져 휴일조차 없고 새벽 6시에 레미콘회사의 협조로 모를 심지 못한 농가의 논에 물을 날라 주어야 했지요.
당신의 얼굴도 마음처럼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워낙 물이 부족하다보니 다정히 지냈던 이웃끼리 물싸움을 하여 농촌의 좋은 인심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밤새 잠을 못 이뤄 핏발서린 눈빛으로 농업인들이 변해간다고 안타까워했어요. 천재지변이 생기면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하는 건 농업인들이라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산불과 가뭄으로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잘 알면서도 난 자주 짜증을 부리곤 했어요. 아이들 학교 보내기 위해 새벽밥 짓고, 다림질하고 집안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하며, 그리고 이곳의(고향이 아니라) 생활이 싫다고 당신을 괴롭혔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 바로 후회를 했어요. 당신을 편하게 대해 주지 못한 점 정말 미안해요.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농촌의 일손을 돕고 돌아온 날, 나 너무 답답하니 바다를 보게 데려다 달라고 투정을 부렸던 날도 있었지요. 힘든 당신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는 철없는 아내였어요. 당신은 가정적으로는 두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고민하며 늘 내게 신경을 써주었는데 말예요. 그리고 직장에서는 지역의 농업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업무에 충실하며 힘든 일 있어도 집에 와서는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런 당신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어요.
지금 사방에서 가을이 영글어 가듯 당신의 마음과 주변에도 결실을 맺을 날이 곧 돌아오리라 난 믿고 있어요. 앞으로 조금 덜 철없는 아내가 되도록 그리고 아이들 교육을 비롯해 가정 일에 가급적이면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요.
오늘도 논밭을 돌아보며 풍년농사로 가는 길에 헌신하는 당신! 힘내세요.
그럼 여기서 줄일게요.
2001년 9월 8일
당신의 아내가.

예전에도 지금도 지역농업발전에 수고가 많은 남편의 어깨가 요즘 무거워 보인다. 남편에게 개인적인 의견과 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하지 말고 그저 농업인들과 지역민의 편에 서서 신념을 갖고 후회 없이 아낌없이 업무수행을 하면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꿈은~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난 남편 편이란 걸 전하고 싶다.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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