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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단상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08.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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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작렬한 태양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연상하는 8월이, 한 가운데에 서있다. 대체적으로 7월 말에서 8월초가 가장 덥고 이 기간에 여름휴가를 산과 강 그리고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올해는 저온현상과 긴 장마 탓에 피서지가 예년에 비해 한산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여행이고,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1년이면 겨울과 여름 두 번 이상은 가족여행을 다녔는데, 아이들이 시간을 낼 수 없어 부부 모임의 여행을 가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떠났던 여름휴가는 성장기에 따라 시기와 장소, 동행자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우리 가족만 주로 숲과 계곡을 찾아서 떠나곤 했다. 맑은 물에서 물놀이를 하며 물고기도 잡고 감자와 옥수수도 쪄 먹고 낮잠도 잔다. 아이들은 민박보다 텐트 치는 것을 좋아했고, 밤이면 불을 밝혀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큰애가 은나방이라고 표현했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그것을 감상하며 별자리와 은하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별을 헤아리기도 했다.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몇 가족이 함께 주로 바다를 가게 되었다. 처음 바다를 갔던 곳은 대천 항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갔던 삽시도였다. 보은에서 새벽 일찍 출발하여 오전 9시경, 섬에 도착해보니, 경운기가 줄지어 있었다. 경운기는 피서객들을 태우고 삽시도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안내했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물결의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늘을 지워줄 송림도 있었지만 바다와 더 가깝게 백사장에 짐을 풀고 남자들은 텐트를 치는데 아이들은 바다로 달려가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 5살이던 작은애와 큰애도 조심스럽게 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더니 바다로 달려갔다. 걱정이 되어 아이들을 따라 가보니 물이 맑고 경사가 완만하여 어른들의 보호가 없어도 안전하였다.
물이 쪽 빠진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고동을 주워왔고 조개도 잡아와 냄비에 담아 놓곤 하였다. 모래밭에는 게가 지천으로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구멍이 송송 뚫어진 곳으로 재빠르게 숨곤 했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막대기나 손으로 모래를 파헤치곤 했지만 게는 꽁꽁 숨어 발견하지 못했다.
3박 4일간 아이들은 온종일 바다에서 놀았고, 어른들 역시 물놀이를 함께 하다가 휴식을 취하곤 했고 밤에는 썰물이 되어 갯바위가 드러난 곳까지 걸어가기도 했으며 밤사이 밀물이 몰려와 찰싹찰싹 파도소리에 잠을 깨우곤 했었다. 큰애는 그림일기를 텐트에 들어가 틈틈이 썼다. 바다 속으로 잠수를 하여 물을 많이 먹었다는 것과 바닷물이 짜다는 것과 조개, 게, 홍합을 잡았다는 것 등을 썼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에도 여름휴가를 다른 가족들과 어울려 바다에 가서 즐겼지만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다른 가족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 가족만이 섬과 바다를 찾아가 새로운 것에 대한 체험과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오곤 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집이 너무도 편안하다는 걸 느끼게 되고 남자 셋이 웃통을 벗고 나란히 누워 얼굴에 오이 맛사지를 하고 누워 여행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부부와 아이들 자신도 모르게 쑤욱 자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큰애가 고1, 작은애가 중1이던 때, 대천 주변의 해수욕장을 갔었다. 어른들이 민박에서 쉬는 동안 두 아들은 초코파이와 물을 갖고 우리가 작은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서 멀리 있는 바위섬까지 갔었다고 했다. 무섭지 않았냐고 했더니 구명조끼를 입었기에 괜찮았다고 한다. 형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힘을 모아 노를 저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소중성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두려움은 도전정신으로 극복했을 것이다. 아마 두 아이의 마음속 깊은 방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을 것이며 지금 생각해봐도 눈물겹게 내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큰애가 고3이 되던 해에는 방학이 3일간 주어져, 그 애가 다녔던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돌아보고, 우리가 11년간 살았던 집 주변도 서성이며 예전에 공부하고 살았던 흔적을 찾아보면서 수능대박을 기원했다. 그리고 아이의 조부와 외조부모 산소를 찾아뵙고 속리산 상환암까지 등반하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 이후 여름휴가는 아주 한적한 계곡에 가서 쉬곤 했는데, 큰애가 군에 입대를 하고 작은애가 고3이 되고 해서 몇 번 밖에 가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도 남편은 아이들과 만나서 함께 떠날 것을 이야기했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아마 여름휴가는 가족이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여름에 떠나지는 못하지만 다른 계절에 우리의 가족여행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언제까지나......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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