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실을 한국유교문화의성지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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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실을 한국유교문화의성지로 만들자!
  • 보은신문
  • 승인 2009.07.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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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보은 땅이야말로 충암 김정과 대곡 성운을 비롯한 선인들의 빛나는 과거가 있기에 빛나는 미래가 있다고 단언한다. 문헌에 의하면 북실이란 지명은 북처럼 생긴 종산이 마을 뒤에 있어서 북실 이라 하였다.
이런 북실마을은 개혁정치를 펼치려던 충암 김정의 고향이며, 성리학의 대가인 대곡 성운께서 모현암에서 당대의 뛰어난 대학자들 에게 성리학을 강하던 곳이다.
그리고 경주김씨 판도판서공 장유의 후손들 세거지로 충신, 효자, 효부가 많은 한국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고장으로 뜻 있는 선비들이 들끌어 분주하던 그 곳이 오늘날 한가하기 그지없다.

충암 김정(1486~1521)은 조선중종 때의 충신이다. 22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도승지, 이조 참판, 홍문관제학,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가 되었다.
정암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개혁정치를 폈다. 미신을 타파하고 향약을 보급하였으며 현량과(학문에 대한 지식위주로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를 보완한 것)가 시행되도록 힘썼다.
그러나 위훈삭제(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정국공신의 공을 가려내는 것)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세력인 훈구파의 공격을 받아 1519년 기묘사화 때 극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 등의 옹호로 금산과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안치되었다가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자 절명사를 남긴 후 사약을 마시고 3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충암 김정의 형인 장암 김광께서 당질인 김응교, 김천우와 함께 아우의 시체를 안고 돌아왔다. 충암 김정은 인종1년(1545)에 복관된 후 인조24년(1646)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대곡 성운(1497-1579)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깊고 깔끔하였다. 공부에 힘써 나이30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1545년 형인 성우가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북실에 은거하였는데 명종이 여섯 가지 행실을 잘 갖추어졌다며 서열을 뛰어넘는 높은 벼슬을 하사하였으나 끝내 임금을 대하지 않았다.
성리학의 대가로 당대의 뛰어난 대학자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백호 임제, 토정 이지함 등에게 성리학을 강하시고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조임금이 제문을 내려 애도 하였으며 승지로 추증되었다.
우리역사에 크게 빛나는 충암 김정과 대곡 성운이야말로 북실과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보은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대수롭지 아니하게 여겨왔다.

오늘날!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백호 임제, 토정 이지함 등과 연을 가지고 있는 다른 여러 고장이야말로 이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선양운동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자! 보은사람들이여! 이제라도 뜻 있는 사람들의 역량을 모아 잠자고 있는 북실에 한국유교문화의 성지를 만들어 보자.

다시 말하자면 북실에 충암 김정과 대곡 성운의 빛나는 과거를 중심으로 한 대단위기념공원을 건립하여 한국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성지로 만들고 여기에 전통가옥형태의 수련원을 비롯한 전통문화체험장 및 학습장 등을 대단위로 건립하고 수려한 자연과 문화적 전통을 승화시킨다면 국내외 가족을 비롯한 학교와 기업체에서 열광할 것이다.
한국 유교문화 성지의 브랜드 효과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탄부 평각출신, 추사김정희선양국민운동본부 회장 김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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