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42)내북면 두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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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42)내북면 두평리 
  • 곽주희
  • 승인 2008.08.22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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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이 두멍처럼 생겼다 하여 두멍뜰
▲ 1992년 3월 두멍뜰 마을 입구에 세운 마을자랑비.

들녘에는 벼이삭이 패고 밤송이도 제법 굵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하늘에는 잠자리떼가 벌써 날아다니고 산은 더욱 더 푸르름으로 짙게 물들어 가고 있다.

농촌에는 농민들이 참깨, 고구마, 고추 등 농산물을 수확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난 18일과 19일 내북면 두평리를 찾았다.

# 두평리 찾아오는 길

보은읍에서 청주쪽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달리다 보면 도로 우측으로 주유소가 보이고 조그만 개천 좌측 편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두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두멍뜰이다.

그곳에서 다시 콘크리트 포장된길을 따라 시루산 쪽으로 한 2km 들어가면 예전 가장 큰 마을이었던 곰장이 마을이 나타난다.

곰장이 마을로 가기 전 우측편으로 조그만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1km 콘크리트 포장된 길과 포장이 안된 1km 길을 따라가다 보면 허름한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이곳이 예전에는 사람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북상골이다.

# 두평리 마을의 유래

면적 5.33㎢인 두평리는 23가구에 60명이 살고 있다.

두평리는 내북면소재지로부터 남쪽 10㎞ 지점으로 내북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과 북은 산외면 봉계, 중티, 길탕리, 서는 이원리, 남은 서지리와 인접하고 있다.

본래 보은군 내북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두멍처럼 생겼다 하여 두멍뜰 또는 두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웅장리(熊場里, 곰장이), 북상골을 병합하여 두평리(斗坪里)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웅장리(熊場里, 곰장이)는 두멍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두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현재 7가구 12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부인과 함께 고추를 따러 가기 위해 경운기 시동을 걸고 계신 송길수(77)어르신은 “예전에는 이 곰장이가 가장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떠나고 사람들이 없어. 현재 71세 되는 사람이 나이가 가장 작아. 허허허. 한 10년 지나면 글쎄 다들 저승길 가고 나면 마을이나 남아 있으려는지… ”하고 한숨을 쉬셨다.

두멍뜰은 두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번 국도변에 있었으나 지난 70년대초 취락구조 개선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두멍처럼 생긴 웅덩이가 두 개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상곡(北上谷, 북상골)은 이종탁 이장이 초등학교 다녔을 때에만 해도 10여호 살고 있었지만 지난 2000년부터는 사람들이 살지않는 마을로 변했다고 한다.

이종탁 이장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북상골에 10여호 30명 정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차츰차츰 떠나고 지난 8년전 교회가 들어 왔지만 바로 떠나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는 마을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북상골은 원래 마을 뒷편에 복숭아 나무가 있어 '복상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북상골'이 되었다고 한다.

두평리에는 웅장(熊場, 곰마당)이라고 있는데 곰장이 뒷산으로 북쪽 윗골 마루턱에 있는 넓고 평평한 마당이다.

그 크기가 약 3천평 정도된다고 한다.  

100여년전에는 이곳에서 곰들이 많이 모여 놀았다고 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등 옛 지리서에는 고을 특산품에 웅담(熊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곰들이 놀았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국어학자들은 '곰'은 '뒤와 북'의 옛말로 마을 뒤, 즉 북쪽에 있는 넓은 마당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두평리에는 굴바우가 있는데 두멍뜰 북쪽에 있는 바위로 굴이 여러 개 있고 현재는 입구를 막아 버렸다고 한다.

생인봉(生人峯)은 북상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송이버섯이 자생하고 있어 8∼9월이면 송이버섯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시루산은 곰장이 북쪽에 있는 높이 482m인 칠봉산(七峯山)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시루처럼 생겼으며, 토정 선생의 비결문에 보면 이곳이 보은의 4증8항(四甑八項)의 하나로 북증(北甑)이라고 일컬어 왔다고 한다.

옛 선조들로부터 난세의 피난처로 널리 알려져 왔다.

욱골은 곰장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길이가 4km이며, 시루산 밑까지 이어진다. '윗골'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화전민이 살았으나 76년 화전정리 때 폐촌되었다고 한다.

절터굴멍은 북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질골고개 밑이며, 6.25전까지만 해도 절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담배를 많이 했으나 지금은 담배농사는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마을봉사자로는 이종탁(47) 이장, 유권봉(58) 지도자, 박용애(56) 부녀회장, 홍종만(82) 노인회장이 실기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부녀회, 청년회 마을 활력소

두평리는 65세이상 노인인구가 90% 이상을 차지해 전체인구 60명중 5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마을의 모든 일은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부녀회는 고추재배로 인해 발생되는 폐비닐을 수거하고 농약병이나 빈병 등을 수집해 그 것을 판 돈으로 기금을 마련, 마을 일이나 경로잔치 등에 쓰는 등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청년회(회장 조재길, 60)는 22명의 회원이 마을의 애사시 상여를 메는 등 모든 장례 절차를 도맡아 상가집에서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돈을 모아 마을 앰프도 다시 설치하는 등 마을 일에 앞장을 서고 있다.

또한 청년회에서는 부녀회와 함께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여는 등 마을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두평리 마을은 농한기인 겨울에는 경로당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 쌀과 반찬 등을 조금씩 가지고 와 점심과 저녁을 해먹고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기름값이 너무 올라 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올해 기름보일러에서 심야전기 보일러로 경로당 보일러도 교체할 예정이다.

# 세월교 너무 낮아 다리 다시 설치, 북상골 가는 비포장 도로 포장 바람

두평리에 고민이 있다.

보청천에 설치된 세월교 때문이다.

너무 낮게 설치되어 있어 비가 많이 올 경우 범람해 보청천 넘어에 있는 논과 밭에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교를 낮게 설치하는 바람에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해 대우가 달린 경운기 등 농기계를 제외하고는 다른 경운기들은 운행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심한 경사로 인해 경운기 등에서 떨어지는 등 마을주민들 대부분 안 다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종탁 이장은 “수차례 군에 이야기 해봤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껏 해 놓았다는 것이 군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물이 범람하면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 표지판 이다” 며 “주민들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 세월교를 높게 설치해 주었으면 한다”고 주민들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또한 두멍뜰에서 곰장이 마을까지 2km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불편함은 없지만 두평뜰에서 북상골로 가려면 1km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어 그나마 괜찮지만 나머지 1km는 비포장으로 북상골에 농경지가 있는 주민들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종탁 이장은 “북상골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도로를 포장해 주었겟지만 사람이없어서 아마도 포장을 안하는 것 같다. 그곳에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불편한 만큼 포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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