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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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둔덕
  • 곽주희
  • 승인 2008.07.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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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12월 마을입구 시내버스 승강장 옆에 세운 마을자랑비.

마른 장마가 무척이나 길어 군내 저수지나 하천, 계곡은 바닥이 보일 정도이며, 산골짜기 천수답은 이미 벼가 하얗게 타 들어가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12일과 13일 적게나마 비가 왔지만 해갈과 저수지, 하천의 물량에는 전혀 미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더워도 너무 덥다.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이니 말이다.

연일 온도계의 수은주는 32∼34도를 가르키고 있으니 말이다.

둔덕1리를 찾은 지난 15일에도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차량의 에어콘을 가장 세게 틀고 마을을 찾아갔다. 차에서 내리면 다시 온 몸에서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더웠다. 몸이 뚱뚱한 것도 있지만 더위도 너무 더웠다.

# 둔덕1리 찾아오는 길

둔덕1리는 보은읍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보은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보은읍 죽전리 보은고등학교를 지나 수정삼거리에서 7번 군도를 따라가다보면 도로 양 옆으로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이 바로 둔덕 1리이다.

삼승면에서는 가장 끝마을이기도 하다.

# 둔덕1리 마을의 유래

삼승면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마을인 둔덕1리는 보은읍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 동은 보은읍 금굴2리, 서는 수한면 묘서1리, 남은 선곡·송죽리, 북은 보은읍 지산1리와 접하고 있다.

둔덕에 마을이 있다하여 둔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를 병합하여 둔덕리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둔덕이란 언덕이란 말과 상통하는 말로 언덕은 땅이 비탈진 곳이자, 그것을 둘러싸는 지대보다 높이 솟아 오른 비교적 좁은 곳으로서, 지형 종류의 한 가지이다.

언덕은 평원보다는 고저차가 크고, 산지보다는 고저차가 작은 곳을 가리키나, 산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언덕이 진 곳을 가리키는 말로 구릉, 둔덕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둔덕은 언덕을 가리키는 대한민국 함남, 황해 지방의 방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을자랑비에는 금적산 정기를 이어받아 비옥한 옥토와 산줄기가 둘러 쌓여 있는 양지바른 곳으로 맑은 물이 솟아 흐르고 민심이 순박하고 예절이 바르며, 효행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산다고 해서 둔덕(屯德)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70년대 말까지만해도 40여 가구 300여명이 살았으나 도시화와 핵가족화 등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26가구 7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봉사자로는 유금열(62) 이장, 김두희(49) 새마을지도자, 서점열(56) 부녀회장, 이윤성(76) 노인회장이 살기좋은 마을,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전 창원 황씨(昌原 黃氏)가 크게 세를 떨쳤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전무하고 경주 김씨가 10여가구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둔덕(屯德)은 둔덕리의 중심 마을이고 양짓말은 마을회관이 있는 둔덕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며 큰말은 보은읍 지산리에 가까이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그곳에 많이들 살았다고 한다.

# 수련보호구역인 효자연못

둔덕1리가 효행심이 많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 것의 기원이 되는 것이 바로 효자연못(孝子池)이 있어서다.

효자연못에 대해 마을주민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삼승면 둔덕1리 백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흘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성이 지극해 그 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뿐인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셨다.

그러던 어느 해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이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좀처럼 낮지 않았다.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백리 밖까지 가서 모셔다 어머니를 치료하였고 좋다는 약은 모조리 구하여 복용토록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 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중에 어머니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젊은이는 생선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연못이나 냇가에 나가 잡아야 되는데 겨울이라 모두 꽁꽁 얼어붙어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청산 강가에 가서 잡든지 누구에게 사정을 하든지 하여 구하고자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눈과 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쌓인 눈이 하얗게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옷깃을 여미고 옷속으로 고개를 웅크리고 걸었지만 후들 후들 떨렸다. 정말로 칼날같이 추운 날이었다.

젊은이가 동구밖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연못에서 ‘우지직,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발길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연못 한쪽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얼음사이로 팔뚝만한 잉어 한마리가 뛰어 올라왔다. 한마리 두마리 잉어는 계속하여 10여마리나 뛰어 올라 얼음 위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젊은이는 너무나 기뻤다. 정신없이 잉어를 잡아 가지고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는 정성을 다하여 잉어를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잉어를 잡수신 어머니는 그날부터 위중하던 병이 차차 낫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소문이 나자 듣는 사람마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둔덕못은 ‘효자못’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산제 지내며 풍요롭게 사는 마을

둔덕1리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정월 초나흗날 산제를 지내고 있다.

산제는 마을 남자들만 밤 12시에 지내는데 제물은 마을논을 농사짓고 있는 사람이 준비를 하고 마을에서는 제관을 뽑아 목욕제게를 하고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린 다음 가가호호 세대주들이 집안의 번영과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적은 소지올리기로 마무리를 한다고 한다.

유금열 이장은 “1년에 한번 부녀회와 위친계에서 마을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대신해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있다” 며 “마을 집들이 별로 좋지 못하지만 벼농사와 과수농사로 대부분 알부자다. 외지에 집 한 채 씩은 다 있을 정도이고, 빚이 없는 동네”라고 자랑하신다.

# 효자연못 정리 및 관리 필요

마을회관이 협소해 다시 짓기를 바라는 주민들도 있지만 유금열 이장은 “몇 해 전 마을회관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등 앞으로 몇 년은 그냥 써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같은 어려운 시기에 그 정도면 마을주민들이 이용하는데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을입구에 있는 효자연못에 대해서는 주변정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군에서 효자연못에 2천만원을 들여 수생식물인 수련 1450본을 식재하는 등 저수지 환경정비작업을 펼쳤지만 그동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효자연못에는 수련말고 다른 수생식물들이 많이 자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유금열 이장은 “수련을 식재하는 등 정비를 했지만 그 이후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련을 뽑아 가려던 외지 사람과 싸움을 하기도 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 라며 “효자연못 주변 정리와 관리를 통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또한 “둔덕소류지에는 희구식물인 가시연꽃이 자생하지만 그곳도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효자연못과 마찬가지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빚이 없는 마을, 마을주민들의 무사안녕을 위해 아직도 산제를 지내고 있는 둔덕1리 마을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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