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보다 여럿이 같이 볼 때 꽃은 더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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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보다 여럿이 같이 볼 때 꽃은 더 아름다워요"
  • 곽주희
  • 승인 2008.07.25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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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m 꽃길 조성하고 있는 보은읍 풍취리(진설미) 선우수 어르신
▲ 지난 4년전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됐지만 운동으로 건강을 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마을안길 꽃길 조성. 부인 이삼애씨가 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꽃길을 조성한다는 선우수 어르신.
▲ 지난 4년전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됐지만 운동으로 건강을 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마을안길 꽃길 조성이다. 부인 이삼애씨가 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꽃길을 조성한다는 선우수(83)어르신과 부인 이삼애(75)씨.

# 에필로그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은읍 풍취리(진설미)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는 이병호(49)씨로부터다.

우리 마을에 이상한 노인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더니 몸도 성치않은 어르신이 매일 아침마다 마을 안길에 잡초를 뽑고 그 곳에 꽃을 심는다는 것이다.

이병호씨는 처음에는 몸이 안 좋으신 분이니깐 길 옆 풀밭에서 무슨 약초라도 캐는 줄 알았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을 안길의 잡초를 뽑아 걷어내고 그 곳에 예쁜 백일홍과 코스모스 등 꽃을 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15일 아침 7시30분 이병호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그 어르신이 꽃길을 만들고 있으니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것이다.

궁금했다. 왜 그런 일을 하시는 걸까?

그것도 몸도 성치않은 분이. 대충 세수만 하고 그 곳으로 달려갔다.

정말 몸의 절반인 좌측 부분이 마비가 되어 일반인처럼 잘 걷지도 못하시는 어르신이 곡괭이와 호미를 가지고 억센 풀들을 뽑고 계셨다.

또한 꽃 사이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조그마한 통을 의자삼아 앉아서 일을 하고 계셨다.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한 250여m 가량의 꽃길을 조성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잡초를 뽑다

▲ 화사한 꽃길로 바뀐 마을 안길. 선우수씨가 아침마다 2시간씩 잡초를 뽑고 꽃씨를 뿌려 조성한 마을 안길로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 있다.
말고 고개를 들으셨다.

250여m의 마을 꽃길을 조성하신 선우 수(83)어르신이다.

“무슨 일인데 사진을 찍으시나. 건강삼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 허허허. 이렇게 꾸며 놓으니 보기 좋쟎수.”

때묻지 않는 순수함과 순진함, 순박함이 가득 묻어있는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 꽃길을 조성하는데도 규칙이 있다

그냥 꽃길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마을 안길 옆에 설치된 가드레일 2개 정도의 길에서 잡초를 뽑고 가신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침을 먹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정확히 아침을 9시나 9시30분에 드신다고 한다.

83세 고령의 나이에도 또한 몸도 성치않은 가운데에서도 왜 이런 일을 할까? 의구심이 생겼다.

“다른 것은 없수다. 우리 마누라가 꽃을 좋아하고 내가 운동삼아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라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병호씨와 함께 마을회관 옆에 있는 선우수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 잘 정돈된 잔디밭과 그 옆으로 옥수수, 배, 복숭아, 고추 등을 심은 밭, 집 앞으로 꽃밭과 푸른 잔디밭이 다시 나타났다.

정말 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정원이 무척 아름다웠다.

# 꽃을 좋아하는 부인 위해 꽃길 조성

“지난 6월부터 운동삼아 시작했수다. 집에 있는 밭에 배와 복숭아 등 과수나무와 고추, 옥수수 등 농작물을 심고 잔디밭을 만들고 그것을 다하고 나니 다른 것을 하고 싶어 꽃길을 만들려고 시작한 것인데. 그게 취재거리가 되나. 허허허허.”

“실은 우리 마누라가 꽃을 좋아하죠. 내 집에 있으면 나만 보게 되는데 이 꽃들이 길에 피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잖수. 그래서 꽃길을 만드는 거라우.”

풍취리(진설미) 마을 안길 250여m는 지금 백일홍 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꽃씨들은 작년 가을에 선우수 어르신과 부인 이삼애씨가 직접 키운 백일홍 씨앗을 받아 놓았던 것.

길 옆이라 흙이 좋지 않아 어떤 곳은 꽃이 크게 피고 어떤 곳은 작게 피지만 그래도 심은 곳에서는 활짝 예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백일홍 말고도 맨드라미, 서광 꽃씨를 뿌렸고, 거기에다가 코스모스까지 심었다. 욕심도 대단하다

▲ 보은읍 풍취리 129-1 선우수씨 집이다. 잡초하나 없는 잔디와 아름다운 여러가지 꽃들이 잘 가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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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는 부인 이삼애(75)씨가 학림 주유소 인근에 있는 코스모스 꽃밭에서 솎아온 것이다.

# 공기 좋은 곳 보은에 정착하다

선우수 어르신은 원래 평안북도 태천이 고향으로 1·4후퇴 때 홀연 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 왔다고 한다.

고향에 부모님과 2살 아래의 동생을 남겨두고 말이다.

아버님이 광산으로 떠돌아다녀 정작 태천이 고향이지만 태천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평양에도 있었고, 압록강 근처에도 있었고, 금강산 지역에서도 살았을 정도로 많이 떠돌아 다니셨다고 한다.

▲ 보은읍 풍취리 129-1 선우수 어르신 집이다. 잡초 하나없는 잔디밭과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 정원이 너무 아름답다.

그러니 지난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도 부모님과 동생을 찾으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계속되는 이산가족찾기를 했어도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젠 포기하셨다고 한다.

부인 이삼애씨는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명절 때가 되면 눈물을 보이신다”고 귀뜸한다. 어찌 혈육의 정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대리만족으로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이라도 갔다오시죠” 라고 기자가 물으니 “그 곳이 고향이 아니지 않느냐”라며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혼자 내려온 선우수 어르신은 방위군으로 자원 입대해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대구 수송부대에서 3년6개월동안 군복무생활을 하셨다.

국군이 북진이라도 하면 고향 태천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군대에 자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고향인 태천에는 가지 못하셧다고 한다.

대구 수송부대 근무시절 29살 때 부인 이삼애씨를 만났다고 한다.

이삼애씨도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실향민이었다. 이삼애씨는 대부분 가족들이 같이 내려오셨다고 한다.

선우수 어르신과 부인 이삼애씨는 슬하에 2남1녀를 뒀다.

큰 아들은 대전 대덕연구단지 자원연구소 박사로 재직 중이며, 둘째 아들은 포항 조선내화 전무이사로 재직중이다. 둘 다 서울대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다.

막내딸은 전문대를 나와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지금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손자·손녀도 6명이나 된다.

군대를 제대한 선우수 어르신은 수송부대에 근무했던 장기를 살려 천일정기화물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전국 어디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화물을 싣고 나르고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나이 60이 되어서 퇴직할 무렵 큰 아들이 이제 집에서 편히 계시라고 해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계셨다고 한다.

보은에 오게 된 계기가 있다.

지난 91년 우연히 아들 내외랑 같이 속리산을 구경하러 오셨다고 한다.

큰 아들이 “이곳 보은에는 굴뚝이 없는 것으로 봐서 공기가 좋은 곳 같다” 며 “서울은 공기가 좋지 못한데 공기좋은 이 곳 보은에서 노후생활을 보내시는 게 어떠시냐”고 해서 보은으로 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정착한 곳이 보은읍 대야리라고 한다. 처음에는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텃새가 심했다고 한다.

집안에는 물론 마을 길 옆에 꽃을 심었는데 왜 남의 땅에 꽃을 심느냐며 마을주민들과 싸움을 하기도 했다.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선우수 어르신이 수송부대에 있으면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마을주민들의 농기계와 보일러 수리는 물론 수도와 전기도 고쳐주니 비로소 마을주민들도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마을봉사자인 이장도 5년이나 하셨다고 한다.

# 마음의 휴식처 - 아내와 천주교

부인 이삼애씨는 지난 85년 서울 신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세례명은 안젤라.

선우수 어르신은 지난 9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보은성당에서 박기현 실베스텔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세례명은 다니엘.

처음 보은으로 왔을 때 마을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등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을 때 성당 신자들이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부인 이삼애씨는 지금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잘 꾸며 놓은 대야리 집을 팔고 포항에 아파트를 사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공기가 좋지 못해 생활하는데 불편할 것 같아 다시 보은으로 내려왔다.

그것이 2002년도 일이다.

500만원짜리 적금을 찾으러 우연히 왔다가 보은성당 신자들이 보은에서 다시 살라고 해서 지금 살고 있는 풍취리 집을 5500여만원에 구입, 창고를 부수고, 정원을 꾸미는 등 아름답게 만들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러던 중 갑자기 2003년 선우수 어르신이 중풍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는 일이 있어났다.

그 전에만 해도 부인 이삼애씨와 4박5일 여행도 가고 등산도 하는 등 건강했었는데 말이다.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삼애씨는 말한다.

“다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렇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너무 감사드리고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가지고 있던 경차도 팔았다. 이제는 운전을 하지 못하시니깐 말이다.

힘이 드실 땐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다니시지만 꽃길을 만드실 때는 천천히 걸어 다니신다.

건강을 위해 운동삼아 꽃길을 조성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지난해 구상했던 일이라고 한다.

나보다는 남들과 같이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부인 이삼애씨도 “처음에는 정원만 다 하면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말리지 못하고 대신 무리하지 마라. 또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나신다.”고 이야기만 하신단다.

“저는 지금도 이야기합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큰 아들 옆에 아파트나 사서 그 곳에서 편히 살자고.”

옆에서 듣고 있던 선우 수 어르신은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다.

# 꽃은 같이 볼 때 더 아름답다

선우수 어르신은 올해 목표가 굴다리 앞 도로까지 꽃길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한 200여m 남았다.

하루에 도로에 있는 가드레일 2칸씩하면 얼마 안 걸릴 것 같다.

“내가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 무리하지 않고 아침 2시간씩 하면 올해 목표는 끝낼 것 같다. 내년에는 다시 풍취리 다리까지 꽃길을 조성해 보고 싶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허허허”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나의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그 조성된 아름다운 꽃길을 보는 마을주민들이라면 다 선우수 어르신의 마음을 알 것이다.

꽃은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볼 때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진리를 말이다.  

모쪼록 선우수 어르신이 만드는 행복한 마을 꽃길이 다 완성되어 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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