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사상 일깨우며 살아가고 있는 노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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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사상 일깨우며 살아가고 있는 노루실
  • 곽주희
  • 승인 2008.06.20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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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34 - 보은읍 장속리

마치 비라도 내릴 양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몇 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보은읍 장속리 마을을 찾았다.

# 장속리 찾아오는 길

장속리는 보은읍에 속해 있어 찾아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보은읍내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장신교를 지나기 전 우측으로 아스콘으로 포장된 3번 군도를 따라가다 보면 바로 장속리 마을이 나타난다.

도로 우측으로 산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바로 장속리다.

마을 입구에는 대한불교 천태종 화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 장속리 마을의 유래

장속리는 지형이 노루의 머리와 흡사하다 하여 노루실 또는 장곡(獐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모정리, 내지동, 소지동을 병합하여 장속리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그 뒤 1987년 1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보은읍 편입된 것이다.

장속리는 보은읍의 북서쪽에 위치하여 동은 산성리, 교사리, 서는 용암리, 남은 봉평리, 북은 중초리와 접하고 있다.

장속리의 자연 마을로는 지형이 노루의 머리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노루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 노루실(큰말)과, 노루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 모양이 저울대처럼 생겼다 하여 명명된 쇠저울(작은말), 노루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신평 이씨 종중의 묘를 관리하던 사람이 살아 온 집이 있어 붙여진 산직골이 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옛 이름 가운데는 앞산에 있는 겅금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는 겅금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멍석모양의 멍석바위, 물방아 다리 모양의 물방아다리, 이리가 자주 내려왔다는 시라니(골), 골짜기의 모양이 까마귀 머리를 닮았다는 오두래골, 노루실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신평 이씨 선조중 이몽경이라는 사람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를 살았다고 붙여진 시모골, 남쪽에 있는 들로서 옛날 총잡이가 노루를 잡아 상감에게 진상하러 가는 길에 쉬었다는 층량이들 등이 있다.

이밖에 노루실 동북쪽 골짜기로 태봉산 밑에 있으며, 아들을 낳으려고 덧두리를 하던 덧두니, 논에 큰 수렁이 있는데 이 곳에서 소가 논을 갈다 수렁에 빠져 죽었다는 마상골, 강산리로 넘어가는 길 가운데 가장 높은 고개인 욱골, 쇠저울에서 노루실로 넘어가는 안골고개, 산직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 임금의 태가 묻혔다고 전하나 이름도 모르고 있으며, 마을에서 올려다 보면 동그런 산으로 저수지 위쪽에 있는 태봉산 등이 있다.

장속리에는 두 개의 경로당이 있어 노인회장도 두 명이다.

노루실 노인회장 한석진(80), 쇠저울 노인회장 이병준씨, 마을 심부름꾼으로 7년째 봉사하고 있는 이장 임기춘씨(51), 부녀회장 이석민씨(45), 새마을지도자 이길용씨(54) 등 103가구에 300여명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며 살고 있다.

# 청년회·부녀회 마을살림꾼

장속리 마을에는 청년외와 부녀회가 마을 살림꾼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청년회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와 효도관광은 물론 경로당 수리에도 나서는 등 마을 일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부녀회는 회원들이 폐품수집 등을 통해 기금을 마련, 경로잔치가 있을 때 잔치음식을 만드는 등 마을 대소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청년회와 부녀회가 있기 때문에 장속리는 효를 일깨우며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속리는 밭보다 논이 더 많다.

장속소류지가 있어 농사 짓기 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 수해때 소류지 물이 넘쳐 집과 농경지 피해를 입은 적도 있다.

지금은 장속소류지물은 그 위의 농경지를 적시고 있고, 마을 앞 농경지는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항건천 물로 하고 있다.

밭농사는 고추와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각종 잡곡류와 채소도 재배하고 있다.

특히 고추의 경우 작목반을 결성해 여기서 생산된 고추는 도시에 공동출하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또 한우와 함께 과수(사과, 복숭아 등)도 재배하는 등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 이몽경 효열문

장속리 노루실 마을 입구에는 이몽경 효열문(李夢慶 孝烈門)이 세워져 있어 인륜의 근본인 효 사상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신평인(新平人) 이몽경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성을 다하였다. 5년간의 병환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는데 하늘에 뜻이 닿아 ‘죽은 참외 덩굴에서 참외가 달렸고, 옥천 강가에 얼음이 갈라져 한 겨울에 잉어가 솟아 올라 잡아다가 아버지를 봉양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월이 흘러 부친이 사망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하며,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선조(宣組)때 명정(命旌)되었다.

그 뒤 1645년(인조 23년) 그의 후손에 의하여 중수한 바 있다.

이몽경의 정문 옆에 나란히 세워진 남양 홍씨(南陽洪氏) 효열비는 신평인(新平人) 이취신(李就新)의 부인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단아하고 열행이 돈독하여 1729년(영조 5년)에 명정 되었다.

이몽경 효열문이 있어서 인지 장속리 마을은 마을 사람들 모두 서로 상경하애하며 오손도손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물 걱정 안하는 날이 오기를 …

지난 2005년 양계장 증축 관련 반대 농성을 벌였던 주민들은 사업자가 사업 포기 의사를 밝혀 한 시름 놓은 적이 있다.

그 때 사업자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마을발전기금으로 1000만원을 기부해 은행에 정기예금을 해 놓았다고 한다.

장속리에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은읍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 바로 장속리다.

96년 기자가 취재했을 때 농어촌생활용수시설이 엉망이어서 생활에 불편을 겪었던 마을이었는데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몇 억을 들여 설치한 생활용수 이용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지금도 일부 주민들은 기존의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상수도가 들어오면 좋지만 그 비용부담과 수도세를 어찌 감당할 수 있으려는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노인들만 사는 집에서는 그 비용이 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기존의 지하수를 먹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장속리 주민들이 물 걱정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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