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내북면소재지였던 이원리(泥院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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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내북면소재지였던 이원리(泥院理)
  • 곽주희
  • 승인 2008.05.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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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32 내북면 이원리

# 이원리 찾아오는 길

보은에서 청주쪽으로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다보면 국도 옆으로 주유소와 상점, 허름한 약국이 눈에 들어온다.

면소재지도 아닌 마을에 약국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 곳이 예전 내북면 면소재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초등학교까지 있었던 이 곳이 바로 내북면 이원리.

#이원리의 유래

조선시대에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문라원(門羅院)이 있어 원마을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운동, 웅곡, 누곡을 병합하여 이원리라 했다고 한다.

내북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1934년 중초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되어 소재지가 되었으나 1984년 다시 창리로 소재지가 옮겨갔다.

이원리는 6개 자연마을로 넓게 펼쳐져 있다. 아랫말, 웃말, 건너말, 마을 앞에 다래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다락골, 옛날 원님이 청주 왕래도중 쉬어가면서 이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따뜻하며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고 물도 맑아 산수가 좋다고 칭찬한 도장이(도장(道場)은 안방(閏閤)의 고어), 또 최영 장군이 이곳을 지날 때 마을이 항상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고 하는 백운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원리의 백운동과 도장이골은 천연 스레트 광산(채석장)으로 인해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원리는 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아랫말이 1반, 웃말이 2반, 건너말 3반, 다락골 4반, 백운동과 도장이를 합쳐 5반이다.

이원리는 현재 74가구 18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지난 56년 면소재지였을 때는 188세대가 사는 큰 마을로 그 위세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현재 이원리 마을 봉사자로는 노인회장 천정환(81, 건너말)·정석주(78, 다락골), 이장 이재권(62), 부녀회장 김옥희(53)씨가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연 스레트 광산 폐광에 따라 몰락

천연 스레트를 생산하는 채석장이 일제 때부터 들어서기 시작해 6·25이후인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채광업이 성업, 외지로부터 많은 광부들이 물려들기 시작하면서 이원리는 높은 소득을 자랑하는 부촌으로 내북면 면소재지로서의 역할을 했었다.

또한 70년까지만 해도 154가구에 939명이 거주했으며, 직행버스도 이 곳에서 정차할 정도였다.

그러나 1934년 중초리에서 옮겨왔던 내북면사무소가 1987년 1월 1일 6개 마을(노티, 봉평, 산성, 용암, 장속, 중초)이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보은읍에 편입돼 50년만에 다시 이원에서 창리로 1984년 이전, 면소재지가 옮겨가면서 마을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은읍 상수원의 상류인 보청천 바닥에 흰색앙금이 발생하는 오염원이 바로 상류지역에 위치해 있는 이원리 구봉산 일대의 천연 스레트를 생산하는 6개의 채석장의 채석광과 보수해 놓은 채석 잔여물에서 발생되는 것으로 밝혀져 군에서 채석 허가기간을 연장시켜 주지 않았다.

매장량도 많지 않은데다 이같이 오염원이 된다는 점에서 허가 연장이 되지 않자, 하나 둘 채석장이 문을 닫고 말았다.

채석장 일에 종사했던 주민들은 하나 둘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이원리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

50여가구가 살았던 백운동은 4가구, 도장이는 3가구로 줄어들었으며, 이원초등학교도 지난 90년 분교로 격하되고 6년 뒤인 1996년 3월 1일 폐교되었다.

#이원리의 자랑 석성국 의사

한말 의병장 한봉수의 참모장으로 왜병과 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나 1908년 적정을 탐색하기 위해 홀로 출진하여 적들에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체포되자 온갖 고문에 굴치 않고 혀를 깨물어 끊고 저항하다 마침내 자신의 성기를 뽑고 자결한 의사 석성국과 남편의 시신을 업고 고향에 돌아와 장례를 치루고 묘앞에서 자결한 그의 부인 성산 이씨를 합장한 의사 석성국 묘가 바로 이원리에 있다.

지난 1968년 내북면 애향동지회(회장 남준희)에서 묘비를 건립하고 석성국 의사와 그의 부인 성산 이씨의 충정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향은 매년 음력 3월 첫 정일에 올리고 있다.

그동안 장소가 비좁고 묘에 가는 길조차 없어 추모제를 지내는데 상당히 불편했으나 지난 2006년 3월 군에서 3400여만원의 군비를 투입해 석성국 의사 묘역단장 및 묘 앞의 사유지도 매입해 조경을 하는 등 후손들에게 항일 교육의 장으로서 손색이 없게 가꾸어 놓았다.

#마을의 살림꾼, 활력소인 부녀회

이원리의 살림꾼이자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녀회(회장 김옥희)다.

지난 79년 발족된 이원리 부녀회는 마을 주변 미화정리, 국도 19호선 꽃길 조성은 물론 마을하천에 버려진 농약병, 비닐, 고철 등을 수집해 그 수익금과 회비로 경로잔치, 노인목욕봉사, 불우이웃돕기, 경로당 유류비 지원 등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오춘희(65) 부녀회원은 “김옥희 회장은 시어미니께 너무나도 잘하는 효부 중에 효부다” 며 “몸이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불편하지 않도록 동창회 모임이 있어도 집에 혼자 두지 않고 꼭 모시고 같이 갔다 오는 등 극진히 봉양하고 있다. 2년에 걸쳐 자비로 마을 65세 이상 노인들 목욕봉사를 실시하는 등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청광석재산업 마을 일에 앞장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지난 2000년 마을주민들은 또다시 분개했다.

천연 스레트 광산 때문에 마을에 도움은 됐지만 그로 인한 환경 파괴는 주민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그런데 또다시 다락골 뒷산에 채석장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채석장 절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채석장 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고 있는 (주)청광석재산업(대표이사 정현영)은 마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원리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병년(66)씨는 “청광석재에서 지난 2006년 마을유래비 건립 때 5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이원리 마을에 행사가 있을 경우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권 이장도 “청원석재산업이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지원해 줌은 물론 채석장의소음 및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주민들과 같이 협의해 조율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청광석재산업에서는 지난 2003년 내북초에 학교 발전기금 350만원을 기탁했으며, 매년 이원리 마을 경로잔치에 행사 비용과 경로당 유류비를 지원하는 등 이원리 마을과 함께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원리 앞 보청천에는 올갱이(다슬기)와 물고기들이 많아 사람들이 올갱이나 물고기를 잡으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예전의 오염됐던 하천에서 지금은 아주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시내버스 자주 다녔으면 바람

이원리가 면소재지였을 때는 직행버스도 정차했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1시간에 한 대 밖에 다니지 않아 주민들이 일을 보기 위해 보은읍이나 면소재지인 창리를 가려면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재권 이장은 “예전에는 40분에 한번 꼴로 시내버스가 다녀 불편한 지 몰랐지만 요즘 1시간에 한 대 밖에 다니지 않아 버스를 놓칠 경우 1시간을 꼬박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며 “비록 인구가 감소해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이 적지만 우리 마을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들이 120여명으로 노인들의 편의를 위해 다시 40분에 한 대씩 다닐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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