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재지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신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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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신곡리
  • 곽주희
  • 승인 2008.05.16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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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마을이야기 130 - 회남면 신곡리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부들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을 때 신곡리를 찾았다.

신곡리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물어서 농작물에 물을 주고 있는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신곡리 마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뒷골에 가자 고추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토란대를 심고 있는 임문순(60)씨와 사촌형인 임기순(74)씨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자 했더니 그 첫 마디가 대청댐으로 인한 피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청댐이 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많은 피해를 현재까지 주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 신곡리 찾아오는 길

신곡리는 보은읍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회인 IC 부근에서 송평리 쪽으로 571번 지방도를 지나 남대문리에서 다시 50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보면 마을 앞으로 대청호를 끼고 산 아래 모여 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예전 대청호로 수몰되기 전의 회남면소재지였던 신곡리다.

신곡리는 동쪽으로 용호리, 서쪽은 어성리, 남쪽은 사음·사탄리, 북쪽은 남대문리와 접하고 있다.

# 신곡리 마을의 유래

신곡리는 회인군 서면 지역으로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봉안한 흥인사가 있어 영당 또는 신읍, 흥인리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곡리, 양중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읍과 후곡의 이름을 따서 ‘신곡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로 면사무소를 거교리로 이전하고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되었다.

예전에 면소재지였던 신곡리는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면소재지로 면사무소와 경찰지소, 초등학교, 우체국, 농협 등이 있었던 영당(신읍)과 지금 양지공원가든 앞쪽에 있던 새별 등 2개 마을은 현재 수몰되어 없어지고, 현재는 5가구가 살고 있는 양중지와 뒷골, 2개 마을이 있다.

현재 신곡리는 30가구 5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고추와 옥수수 등 밭작물과 감 등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 봉사자로 김석현(51) 이장과 임각순(80) 노인회장, 이분예(68) 새마을부녀회장이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뒷골 마을에서 토란대를 심고 있던 임문순(60)씨는 “예전 회남면 소재지였을 때는 100여가구에 한 200여명이 살았던 아주 큰 마을이었다”면서 “지금은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마을도 수몰되고 농사도 안돼 주민들도 떠나고 초라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 주민 피부에 와닿는 지원 필요

회남면과 회인면 일부 지역은 대청댐 때문에 혜택을 본 것도 있지만 오히려 주민들은 삶의터전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등 힘든 생활은 하고 있다고 한다.

임기순(70)씨는 “대청댐으로 인해 잃은 것이 더 많다”며 “지원은 됐지만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혜택이 되는 것은 전혀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청댐 때문에 농사도 잘 안되고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에서 지원되는 댐 지원사업비도 마을 주민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농기계 등을 지원하고 있으나 주민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임문순(60)씨는 “마을 공동시설로 지원되는 것이지만 마을에 효용가치가 없으면 예산만 낭비되는 것 아니냐”며 “농기계 등을 지원하는 것 보다 가구당 얼마씩 생계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효과가 크고, 더 나아가 대청댐을 이용한 관광 자원화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을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지원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청댐 조성으로 인한 불이익을 대신해 보조금 지원으로 농기계를 지원, 마을주민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목적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농경지도 농기계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비탈진 곳에 있어 농가의 생산성을 높여야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이분예(68)씨는 “대청댐으로 인한 안개 때문에 감 농사도 잘 안돼 옥수수를 재배, 수확할 때 쯤이면 저녁 늦게까지 옥수수를 따 새벽에 쪄서 대전행 버스를 타고 나가 대전역 근처에서 좌판을 벌여 노점을 하고 있다”며 “다 팔아야 겨우 2∼3만원 정도 벌어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럴 바에야 마을 주민들의 바람대로 댐 지원사업비를 생계 보조금식으로 지원해 주거나 농작물 피해 보상 차원으로 현금 지원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신곡리는 댐 조성 전까지만 해도 면소재지로 가장 큰 마을이었고, 최고의 품질로 각광을 받았던 감 주산지였으나 댐 조성으로 감 농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지금도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지만 대청댐으로 인한 안개때문에 꽃과 과실이 모두 빠져 전혀 수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기순(74)씨는 “좋은 전답은 대부분 대청댐에 수장시키고 산비탈 밭을 놀릴 수가 없어 고추와 옥수수를 경작하는 것이 고작이다. 올해 밭을 일궈 감나무를 심었지만 잘 되려나 모르겠다”며 “농가의 소득이 될 수 있는 소나 돼지, 닭 등을 사육하려고 해도 상수원보호구역, 수변구역이라 각종 규제가 많아 가축 사육은 꿈도 못꾼다. 규제가 너무 많아 아무 것도 못한다”고 푸념했다.

어부를 하고 있는 주민들 중에도 설상가상으로 최근 기름값이 치솟아 배를 띄우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ㄱ횟집을 운영했던 임문순씨는 “횟집을 하다 안돼 문을 닿고 외지에 나갔다 다시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다”며 “인근 대전지역은 대규모 처리시설을 준공해 식당 등 각종 업소들이 호황인데 비해 회남쪽은 정화조 설치 등 각종 규제로 식당등 업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땅을 놀릴 수가 없어 밭에 토란대를 심고 있는 임문순씨와 임기순씨의 바람대로 댐 지원사업비가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지원이 되어 주민들이 껄껄껄 환하게 웃으며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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