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를 섬기며 화합하는 수리티, 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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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를 섬기며 화합하는 수리티, 차정
  • 곽주희
  • 승인 2008.05.02 19: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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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리 찾아오는 길

보은읍에서 회인방면으로 25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보청(동정)저수지를 지나 높은고개라는 의미가 있는 수리티재가 나온다.

그 수리티재 아래 왼쪽으로 21번 군도를 따라 도로변 우측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4개의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차정리다.

차정리는 동쪽으로 동정, 오정리, 서쪽은 회인면 건천리, 남쪽은 옥천군 안내면, 북쪽은 산척리와 인접하여 있다.

# 차정리 마을의 유래

차정리는 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수리티 고개 아래 있다하여 수리티 또는 차령, 차정 등으로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월리를 병합하여 차정리라 하고 회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수한면에 편입되었다.

차정리는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1집만 살고 있는 구소골은 상차정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노인들이 모이면 구수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하며 지형이 구유처럼 생겼으므로 구수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구소골이 되었다고 한다.

중차정이라 불리는 밤나무골은 밤나무가 많아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

차정리 남쪽 제일 위쪽에 있는 마을인 상차정은 바로 도로 건너 마을이 동정리다.

하차정이라 불리는 수리티는 수리티고개 아래 있다고 해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또한 차정리에는 많은 지명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상차정에서 회북면 건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가래모양으로 길다고 해서 가래재, 중차정과 상차정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고려장이 있어 무섭다하여 생긴 이름인 검사골, 중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다하여 구밤낭골, 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성리 점볼까지 4km정도 이어지는 구소골, 조리대가 자라는 들이라고 하여 대밭들, 중차정과 하차정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큰바위 밑에 둠벙이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며 섬겼다는 덤박골, 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도둑들이 자주 출몰하여 거주하였다는 도덕골, 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산삼이 많이 났나고 하는 삼박골, 중차정 서쪽에 있는 산으로 시루처럼 생긴 시루봉, 수리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측량시 푯대를 꽂았다고 하며, 옛날에 봉화를 올려 마을 사이에 연락을 하였다고 하여 신호봉이라고도 하는 푯대봉, 수리티에서 동정리 두푸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호박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호박골 등이 있다.

현재 차정리에는 41가구 8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쌀과 오이, 더덕, 호박, 도라지, 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봉사자로 박광명(46) 이장과 강대연 노인화장, 정구성 새마을지도자, 우미숙 부녀회장이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 충효를 바탕으로 화합하는 마을

후율사가 있는 탓일까? 차정리 주민들은 노인공경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상차정과 중차정, 하차정 3개 마을에 각각 상조회가 있다고 한다.

각 상조회에서는 마을 부녀회 등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애사는 물론 1년에 한번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간단한 경로잔치와 기금을 모아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 등 경로효친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차정리는 상차정 서남쪽에 있는 산에 산제당이 있어 매년 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앝타깝게도 지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 후율사, 교서비, 하마비, 수리티고개, 두 개의 느티나무

차정리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수리티재는 하차정에서 회북면 건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 중봉 조 헌 선생이 의병들을 지휘하여 석전으로 왜병을 전멸시킨 곳으로 경사가 심해 수레가 다닐 수 없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리’는 높다는 뜻으로 높은고개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차정(수리티)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바로 커다란 느티나무다.

지난 82년 8월 보은 11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720년이며, 수고가 24m, 나무둘레는 6.5m나 된다.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때 중봉 조 헌 선생이 왜군과 싸우다가 이 나무에 말을 매고 군사들과 휴식을 취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의 느티나무는 중차정 마을 입구에 우둑커니 버티고 있다.

보은 12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이 느티나무는 하차정에 있는 느티나무와 같은 수령으로 수고도 24m로 같고 둘레가 5.6m이다.

이 느티나무 밑에는 조그만 빨래터가 있는데 더운 여름철에는 마을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목욕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차정 느티나무 옆 개울가에 조그맣게 하마비가 보인다.

이 하마비는 중봉 조 헌 선생이 말을 세워 두었던 곳이다.

하차정에는 지방문화재 15호로 지정된 후율사가 있다.

후율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금산싸움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절한 중봉 조 헌 선생과 의병 박춘무, 김절, 조완기 등 20인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로써 조선 숙종 때 보은, 옥천, 청주, 회인의 유림들이 그 충성스러운 영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처음 왜군을 만나 석전으로 승리한 이곳에 세웠으며, 고종 때인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한 것을 1928년 복건했다.

후율사에 교서각이 있으며, 그 안에 교서비가 있다. 

# 차정리 마을이정표 옮겨야, 후율사 안내판 정비 필요

차정리 마을을 가다보면 마을 입구에 차정리 마을이정표가 잘못 세워져 있다.

이정표를 마을유래비가 있는 쪽으로 이동해 다시 설치해야 하며, 후율사 안내판 글씨 페인트가 벗겨져 잘 보이지 않는 등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차정리는 보청천 최상류지역으로 물이 맑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외지인들과 봄철 산삼이 많이 난다는 삼박골을 중심으로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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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수 2008-05-06 17:05:16
마로면 임곡리 취재를 부탁합니다.
고향인데요 초 3 까지 지나다 부산에서 살고있구요 지금은 인척이 없어 가보기도 어려운처지입니다. 15-6년전 취재파일을 보고 있으니 다시 현재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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