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보은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보은군수님께 전기불좀 넣어주세요’라는 의견이 올라와 있었다.
궁금했다. 아니 최첨단 시대, 그것도 21세기에 의도적으로 오지 체험을 즐기는 사람도 아닌데 아직까지 전깃불도 들어가지 않는것에 살다니. 누구일까.
내북면 하궁리 이장댁에 전화를 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집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장의 대답은 행정구역만 내북면 하궁리이지 생활권은 수한면 율산2리라고 했다.
무작정 수한면 율산2리를 찾아가 정말로 이런 분이 계신가 확인을 했다. 정말로 배수리라고 불리는 골짜기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단다.
그곳은그 집으로 통하는 진입로이기도 했고 농로이기도 했는데 포장이 되지 않고 또 생긴 대로 놔둬 요철이 대단히 심했다.
도로에서 집까지 1㎞넘게 들어갔다. 정말 집 한 채가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개들이 크게 짖어댔다.
그곳에는 모자를 눌러쓴 채 나무를 패고 또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찾고 있던 서강엽(67)씨다.
“아니 뭐 이런데를 찾아와유. 저번에 사람들이 와서 이것조것 조사해 가더니 그 뒤로 자꾸 사람들이 오네. 뭐하러 오는지 그만 왔으면 좋겠어유.”
그런면서도 때묻지 않는 순수함 순진함 순박함이 가득 묻어있는 얼굴로 기자를 반긴다.
# 전기불 없는 67년 삶
방 2개 부엌, 마루조차 없고 댓돌 하나 놓여있는 뜨락을 나오면 바도 마당으로 이어진다. 그런 집에서 서강엽씨가 살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해가 뜨면 아침이요 해가 지면 밤이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른다. 집밖의 세상이 궁금하지 않다.
어둠은 호롱불이 밝히고 호롱에 들어간 기름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후레쉬를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초 2자루도 준비해놓았다. 이것이 서강엽씨가 67년간 어둠을 밝혀온 도구이다.
부엌은 늘 나무를 지펴서 천정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이날도 무쇠솥이 걸려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고 있었다.
한쪽에 가스렌지가 놓여있었지만 한참을 이용하지 않은 것 같이 먼지가 쌓였다.
부엌 뒤쪽 벽은 이미 무너져 있었고 그곳을 비닐로 대충 대서 바람이 술술 들어왔고 그래서 부엌에 떠다 놓은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지하수를 파지도 않고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별히 오염원이 없으니 살아있는 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 살고있는 집도 40년 넘은 골동품
원래 평안남도가 고향인 서강엽씨는 해방 후 부모와 2남3녀인 형제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재산이 없던 가족들은 보은읍내에서도 살다가 중초리, 노티리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들어와 화전을 일궜다. 내북면 하궁리 산20번지에 들어온 지 한 40년이 넘었을 것이라고만 할 뿐 몇 살 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27살 때 4살 아래인 율산리 출신인 부인과 결혼해 4남2녀를 뒀다.
결혼해서 초가 3칸으로 새로 집을 짓는 등 없는 살림에도 행복하게 살았지만 부인은 80년 막내딸이 첫 돌 이틀 남기고 지병으로 작고했다.
이후 서강엽씨는 혼자 몸으로 어린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공부를 시키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그래도 가정형편때문에 중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자녀들은 대처로 나가 공장에 취직, 야간고등학교도 다니고 모두 제짝을 만나 결혼해 '손주'녀석들도 품에 안겨줬다.
초가지붕만 슬레이트로 바꿨을 뿐 가족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그 집에서 서강엽씨는 설을 쇠기 위해 찾을 자식과 손주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 자식들도 나가자고 한다
67년간 이같은 삶을 살았으니 전혀 불편한 줄 모르는 서강엽씨는 명절이나 아버지 생신 때면 ㅈ찾는 자식들이 이젠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대처로 나갈 것을 강요하지만 오히려 대처가 불편해서 나가지 않는다.
5년전 경운기 사고로 경기도 안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치료후 다시 산속으로 들어왔다. 아직은 이곳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에 젖어있는 자식들도 명절 때 집에 오면 차례를 지내고 바로 돌아간다고 한다. 너무 불편해서다. 손자들도 컴퓨터도 되지 않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는 할어버지 집에서 빨리 가자고 졸라댄다고 한다. 누구든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소, 개, 토끼가 유일한 친구
서강엽씨의 친구는 다섯마리의 소와 네 마리의 개, 한 마리의 토끼이다. 하루 종일 가축들과 벗하며 자연속에 있으니 심심하지도 않고 인기척이 나면 개들이 짖어 밖의 상황을 감지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름 생활방법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봄이면 산나물을 뜯으러 오고 가을이면 버섯을 따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런 곳에서 무서원서 어떻게 사느냐고 다들 한마디씩 하지만 서강엽씨에게 이곳은 가장 편하게 내 한몸 뉠 수 있는 지상 천국이다.
서강엽씨에게서 편안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세상사는 사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