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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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신문
  • 승인 2007.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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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동덕여대 산업디자인과 2학년)
외속리면 남쪽에 위치한 작고 두루뭉실한 농촌 마을, 논밭을 끼고 다정하게 앉은 아담한 집들, 녹슨 대문과 우물이 있어 순박하니 예쁜 봉비리. 이곳이 우리 할머니 댁이다.

이 속에 앉아 하늘을 보며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도시와는 달리 하늘이 크고 새파란데다 구름이 한 덩어리씩 지나가는 것이 보고 있자니 나름 색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사계절 어느 때여도 비 오는 날만 아니라면, 이곳은 늘 나에게 큰 화폭을 제공한다.

아파트 사이로 보던 조각난 하늘을 이 곳에서는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와, 저 대단한 색상 변화! 끝내주는 그라데이션.... 파스텔을 어떻게 문질러야 저 색깔이 나올까,  손목을 어떻게 돌려야 저런 구름을 만들까...

보고 있자니 입 꼬리가 자꾸만 올라가고 실실 웃음이 난다. 웃고만 있으니까 딸이 심심해한다고 느끼신 건지, 아빠가 그러고 있지만 말고 동생 데리고 요 앞 우물가라도 가서 발이나 담그고 놀다 오라고 하신다. 얼결에 떠밀려 나오기는 했지만 가기 싫다. 몇 년 전부터 우물가엔 물도 적어졌고, 이끼도 많이 끼기 시작했으니까.

어디 갈까. 하다가 동네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21살이 되도록 봉비리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라곤 마을로 들어가는 쭉 뻗은 길과 할머니 댁, 교회, 우물가, 청색 녹이 슨 대문 집이 다였으니까. 집에 들어가겠다는 동생을 살살 꼬드겨 산책을 했는데, 구병산-이라고 하나? 그 뒷산이 윗마을과 상당히 가깝게 붙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항상 디자인 적 효과, 시각적 효과를 관찰하는 것에 익숙한 내 눈은 강조된 색 하나 없이 주조 색-엘로, 블루, 보조 색-브라운, 그린, 레드가 사용된 자연을 읽었는데, 튀지 않고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그 회화적인 풍경이,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햇살 쨍쨍한 한 여름의 가운데, 바람소리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자연 속 그곳은 마음속에 그리운 향기와 아쉬움과 새로운 감동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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