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동덕여대 산업디자인과 2학년)
외속리면 남쪽에 위치한 작고 두루뭉실한 농촌 마을, 논밭을 끼고 다정하게 앉은 아담한 집들, 녹슨 대문과 우물이 있어 순박하니 예쁜 봉비리. 이곳이 우리 할머니 댁이다.이 속에 앉아 하늘을 보며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도시와는 달리 하늘이 크고 새파란데다 구름이 한 덩어리씩 지나가는 것이 보고 있자니 나름 색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사계절 어느 때여도 비 오는 날만 아니라면, 이곳은 늘 나에게 큰 화폭을 제공한다.
아파트 사이로 보던 조각난 하늘을 이 곳에서는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와, 저 대단한 색상 변화! 끝내주는 그라데이션.... 파스텔을 어떻게 문질러야 저 색깔이 나올까, 손목을 어떻게 돌려야 저런 구름을 만들까...
보고 있자니 입 꼬리가 자꾸만 올라가고 실실 웃음이 난다. 웃고만 있으니까 딸이 심심해한다고 느끼신 건지, 아빠가 그러고 있지만 말고 동생 데리고 요 앞 우물가라도 가서 발이나 담그고 놀다 오라고 하신다. 얼결에 떠밀려 나오기는 했지만 가기 싫다. 몇 년 전부터 우물가엔 물도 적어졌고, 이끼도 많이 끼기 시작했으니까.
어디 갈까. 하다가 동네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21살이 되도록 봉비리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라곤 마을로 들어가는 쭉 뻗은 길과 할머니 댁, 교회, 우물가, 청색 녹이 슨 대문 집이 다였으니까. 집에 들어가겠다는 동생을 살살 꼬드겨 산책을 했는데, 구병산-이라고 하나? 그 뒷산이 윗마을과 상당히 가깝게 붙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항상 디자인 적 효과, 시각적 효과를 관찰하는 것에 익숙한 내 눈은 강조된 색 하나 없이 주조 색-엘로, 블루, 보조 색-브라운, 그린, 레드가 사용된 자연을 읽었는데, 튀지 않고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그 회화적인 풍경이,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햇살 쨍쨍한 한 여름의 가운데, 바람소리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자연 속 그곳은 마음속에 그리운 향기와 아쉬움과 새로운 감동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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