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80)-내속리면 상판리
상태바
마을탐방(80)-내속리면 상판리
  • 보은신문
  • 승인 2006.12.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공원 속리산의 관문으로 정이품송이 있는 마을
포근했던 날씨가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며 다시금 추워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텔레비전에서는 눈이 내릴 거라고 예보하고 있었다.
춥다, 춥다 노래를 부르고 꽁꽁 언 발을 동동 굴러도 겨울을 나는 사람들은 흰눈이 기다려진다. 상판리를 찾은 날,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김남수 이장은 상판 매표소 옆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속리산 버스터미널까지의 거리가 2㎞라고 했다. 조금만 더 가면 속리산 국립공원이었다.
문득 눈이 오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지, 아니면 눈길이 미끄러울까 걱정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지 궁금해졌다.
학창시절 선생님들과 함께 학년 전체 150여 명의 학생들이 문장대를 올랐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속리산은 흰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등산로를 오르다 정상을 조금 남겨 두고 산 아래를 내려가 봤을 때 설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와아! 소리가 절로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올 겨울 속리산의 겨울산을 보기 위해 상판리를 거쳐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을까,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그냥 스쳐 가질 않았다.

저 자동차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속리산을 왔다가는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일까. 자꾸만 궁금해졌다.

지난 26일 마을 총회를 했다는 주민들. 강원도 주문진에 산다는 출향인이 돼지 한 마리를 냈으며 그는 평소 회 거리도 보내주는 등 마을에 애정 어린 관심을 쏟는다고 한다. 몇몇 출향인들은 여전히 고향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한다고 했다.상판리는 매년 산신제와 시제를 지낸다.

시제는 마을에 살다가 특별한 연고도 없이 작고한 분들을 위해 주민들이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다. 시제를 지내는 사람은 12명으로 이들이 마을에 희사한 땅은 대지 4필지, 전 4필지라고 한다.

76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상판리 마을봉사자로는 김남수(38) 이장과 나명환(75) 노인회장, 김선욱(36) 새마을지도자, 박찬숙(49) 부녀회장이 있다.


# 국립공원 속리산의 관문
상판리는 내속리 면소재지에 있는 마을로 속리산 국립공원의 관문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는 곳이다.

보은군 속리면 지역으로서 늘근이 위쪽이 되므로 웃늘근이 또는 상판근리라 하였는데 1914년 지방바우, 진대, 조항, 생왕동, 칠송정을 병합하여 상판리라 하였으며 1947년 속리면이 외속리면과 내속리면으로 분할됨에 따라 내속리면에 편입되어 면소재지 마을이 되었다.

보은에서 말티재를 넘거나 금년에 개통된 동학터널과 속리터널을 지나오면 상판 삼거리에서 두 길이 만나 상판리 마을 앞을 거쳐 속리산으로 향하게 된다.

말티재 방면에 있는 흥운 유스타운에서 상판리 마을과 정이품송을 지나 속리산 유스타운까지가 상판리 구역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전망할 수 있다.

자연마을이 새목이, 생왕동(새양골), 웃늘근이(양지마을), 지방바우, 진터, 칠송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는 면사무소와 농협, 속리중학교, 수정초등학교 법주분교, 속리산 관리사무소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 운영되던 우편취급소가 폐소돼 주민들은 사내리에 있는 우체국을 이용한다고 한다.

새목이는 속리산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마을 뒷산 모양이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며, 생왕동은 현재는 마을이 없어지고 속리산 유스타운이 건설되어 있다.

속리중학교와 농협이 있는 지방바우에는 마을 앞 하천에 문지방 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었는데 물길을 막는 등 수해의 우려가 있어 하천 정비를 하면서 없앴다고 한다.

진터는 정이품송이 서 있는 부근에 위치한 마을로 면사무소가 있는 곳과도 가까운 거리다.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김종서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마침내 단종까지 몰아낸 뒤 왕위에 오르자 그의 딸이 충언을 하고 통곡하였다 한다. 이에 세조가 크게 노해 공주가 이곳까지 피난하였고 그러던 중 겨우 살아남아 깊은 산중에 숨어살던 김종서의 손자를 만나게 되었다. 숯을 구우며 가마골에 숨어 지내던 두 사람을 찾아 세조가 군사를 이끌고 진을 친 곳이라 진터라 하고, 마을에서 들어간 골짜기에 숯을 굽는 가마가 있었다하여 가마골이라 한다고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상판 삼거리를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기와로 지붕을 올려 나름대로 멋을 낸 내속리 면사무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에는 매표소, 주유소, 식당, 양조장, 슈퍼 등 상가가 형성돼 있었다.

주민들은 한 가지 생업에 종사하기보다는 장사와 농사를 병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직장을 갖고 있거나 송이버섯 채취로 소득을 올리는 등 농업과 상업을 복합으로 하지만 농경지면적은 다른 지역에 비해 협소한 편이라고 한다.

상판리는 관광 지역 및 산악지형이라는 특색이 두드러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성을 살린 개발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속리산 경기 침체의 영향 탓인지 계절 탓인지 가게 앞은 너무나 한산했다.

# 정이품송과 칠송정
말티고개를 넘은 세조 일행이 상판리에 다다르니 길가에 우산 모양을 한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었다.

세조는 소나무 아래 잠시 쉰 후 다시 길을 떠나려고 연(輦)을 타고 보니 늘어진 가지에 연이 걸릴 것 같았다. 이를 염려하여 세조가 연을 메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나무에 '연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 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또한 세조가 피접(避接)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갈 때 이 소나무 아래 이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왔고 세조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세조는 "올 때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도다" 하면서 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
그 후 나무는 정이품송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혹자는 연걸이 소나무라고도 부른다.

법주분교가 있는 마을 칠송정.

옛날 안정 나씨 7형제가 마을에 벌초를 하러 갔다오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소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는데 현재는 법주분교 안에 한 그루만 남아 있고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칠송정은 학교 운동장에 있던 몇 그루의 소나무 중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그 모습이 남달랐다. 굵은 가지가 두 갈래로 벌어져 있었는데 갈라진 틈 사이에서 해마다 한번씩 송이버섯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날씨 관계가 좋지 않아 송이버섯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상판리에 내려오는 전설 중 은구석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사내리로 접어드는 커브길에 튀어나온 산모퉁이를 은구 모퉁이라 부른다. 은구 모퉁이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은구석이라는 바위가 있었다.

세조가 문장대를 오르는 길에 있는 복천암에서 기도를 끝내고 병이 낫자 기쁨을 참지 못하여 속리산 안의 모든 스님들을 모아 복천암에 있는 바위에 줄을 메고 끌고 가다가 힘이 빠져 멈추는 곳까지의 모든 토지를 절 소유로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스님들이 있는 힘을 다해 바위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이품송이 바라보이는 산모퉁이에 다다르자 힘이 빠졌는지 물욕이 다했는지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고 세조는 약속대로 그곳까지의 토지를 법주사 소유로 내주었다.

그때 그 바위를 은구석(恩救石) 이라 하고, 그 바위가 멈춘 모퉁이를 은구 모퉁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내리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은구석'이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긴 했지만 원래 은구석은 아니라고 한다.

취재를 마치고 보은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말티재를 내려가던 버스가 커브길에서 잠시 멈췄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창 밖을 내다보니 아래쪽에서 버스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워낙 경사가 심한 곳이라 도로 사정이 안 좋다보니 상행선 차량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길을 올라와 바로 옆을 지나던 버스 안에는 손님이라곤 법복을 차려 입은 스님 한 명뿐이었다.

조금 전 버스를 탈 때 봤던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등산객 3명이 참 소중하게 여겨졌다.

속리산은 보은의 자랑이며 보은 사람들의 자부심이며 지역 경제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개발과 투자가 속리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들의 한숨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속리산행 버스 안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날 상판리 마을에도 활기가 넘칠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

▲법주분교 안에 있는 칠송정.
옛날 안정 나씨 7형제가 소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는데 현재는 법주분교 안에 한 그루만 남아 있고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굵은 가지가 두 갈래로 벌어져 있었는데 갈라진 틈 사이에서 해마다 한번씩 송이버섯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날씨 관계가 좋지 않아 송이버섯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체육관으로 임대를 했던 옛날 마을회관. 마을에 체육관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건물을 헐고 마을 회관을 짓고 싶지만 부지가 좁다고 한다.


▲속리중학교와 농협이 있는 지방바우. 마을 앞 하천에 문지방 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었는데 물길을 막는 등 수해의 우려가 있어 하천 정비를 하면서 없앴다고 한다. 마을 뒷산 위에는 속리중학교가 있다.

▲상판리는 속리산 국립공원의 관문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는 곳이다. 수세가 왕성했던 정이품송과는 달리 지금의 정이품송은 왠지 가냘퍼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