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선생(圃隱 鄭夢周先生) 묘(墓)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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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선생(圃隱 鄭夢周先生) 묘(墓) 답사기
  • 보은신문
  • 승인 2006.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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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재 웅(전 삼산초등학교장, 수맥전문가)
2006년 12월 17일에 한국정통풍수지리교육원 주관으로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를 답사하는 일행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날씨가 눈이 내리고 일기가 좋지 않았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묘소에 가기로 되어 있어 당일 09시까지 위 교육원 앞에 집결하여 대절한 관광버스에 탑승하였다. 일행은 21명이 참여하였다. 필자는 훌륭한 옛 선조의 묘를 답사하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었다. 오전에는 해주오씨묘(1602∼1685)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산 45-1번지를 답사하였다.

이 묘소는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의 하나인 와혈로서 깊이가 뒤가 6m, 앞이 3m로 소쿠리 모양의 와혈로 명당이라 한다.

점심때 덕봉산가든의 정식은 맛깔스럽고 정성이 듬뿍들어 있어 영원히 잊지 못할 진미를 경험하였다.

오후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산3번지에 소재한 포은 정몽주 선생묘를 답하였다.

# 포은 정몽주 선생 묫 유래(由來) 경기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호
포은 선생의 묘소는 문수산 안자락 해발 145m의 나지막한 양지바른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왕릉 부럽지 않은 장대한 묘소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명당중의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생의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천묘지를 정하고 면례(緬禮)행렬(行列)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리 경계에 이르러 잠시 멈추어 쉬고 있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명정(銘旌)이 하늘 높이 날아가 이 곳(현 묘소)에 떨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이 명당자리라 하여 선생의 유택을 이곳으로 정하여 부인 경순택주 경주이씨와 합폄 한 장하였다.

# 영모재(永慕齋) 포은 선생의 제향을 위해 건립한 재실
영모재의 창건 연대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영모재(永慕齋)란 편액(扁額=널판지에 글씨를 써서 방안이나 문위에 걸어 놓는 액자)을 썼으니 이조 현종, 숙종 연간(1660∼1689)으로 추정되므로 약 320년이 되었다. 그동안 포은 선조, 후손들이 수차 보수의 공로가 있었으나 현재 건물이 노후되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2005년 포은 선조 묘역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당국의 지원을 받아 중건계획을 세우고 있어 머지 않아 훌륭한 재실(齋室)로 거듭날 것이다.
여러 가지 훌륭한 사료가 많으나 일부만 소개하여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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