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79)-보은읍 봉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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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79)-보은읍 봉평리
  • 보은신문
  • 승인 2006.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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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모두 막혀 물나가는 곳이 안 보인다는 명당 마을
사막에 눈이 내리는 걸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하시겠지요?
여기 눈 내리는 사막 마을이 있습니다.
20일 보은읍 봉평리를 찾은 날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마을 들녘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사막 마을 봉평리이다.
봉평리는 전체 72가구가 살지만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어 농가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마을별로 분산돼 있었다. 자연마을은 내사막과 외사막, 도촌으로 내사막이 웃말과 아랫말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자연마을이 4개인 셈이다.
이곳은 보은군 내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내사막, 외사막, 도촌을 합하여 봉평리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87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보은읍에 편입되었다.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잘 알려진 보은읍 종곡리(북실)에 살던 선비들이 움막을 짓고 학문을 연마했던 것에서 유래해 선비 사(士)자와 장막 장(帳)자를 써 사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을 봉평리라 한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광표 노인회장은 사막 마을 진입로 쪽 넓은 들을 예전에는 새들이라고 불렀는데 새는 봉황을 가리켜 봉황새 봉(鳳)과 들 평(坪)자를 써 봉평리라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했다.
사방이 모두 막혀 물 나가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막 마을.
그래서 마을이 들어선 자리가 명당 자리이고 옛날에는 피난지로도 알려진 곳이었다고 한다.
보은에서 37국도를 타고 가다 봉평, 노티리로 진입하는 곳에서 우회전해 군도를 따라가다 보면 봉평리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마을이 여기 어디쯤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도촌 마을만 있을 뿐 사막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간 산아래 깊숙이 자리한 눈 덮인 사막 마을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다가왔다.
도촌 마을 앞에서 하천 제방을 따라 보은읍 용암리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으로 이어진 좁은 포장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에 눈 내리는 사막 마을이 있다.
마을 봉사자로는 김종현(48) 이장과 사막 마을 이광표(76) 노인회장, 도촌 마을 정정석(82) 노인회장, 김성갑(45) 새마을 지도자, 노재순(55) 부녀회장이 있다.

# 살기 좋고 경치 좋은 마을
작년에 지어 새 건물인 사막 마을 경로당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요즘은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어 결코 낯설지 않지만 남자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시골 경로당에 이런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경로당 출입문 양쪽에 붙어 있는 '금연시설' 스티커.
사막 마을 경로당은 금연건물이었다. 거실 미닫이문에도 벽에도 금연 스티커가 붙어 있을 정도다.
주민들은 서로 뜻을 모아 좋은 방향으로 마을일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경로당을 금연 공간으로 정하는 등 내가 불편해 싫은 것보다 다수의 편리를 먼저 생각하는 주민들의 배려심이 사막 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 있었다.
사막마을에 경로당이 생기기 전에는 멀리 도촌 마을에 있는 경로당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불편이 뒤따랐다. 경로당 부지는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이광표 옹이 마을에 희사한 것이라고 한다. 도촌 경로당 노인회 회원은 19명, 사막 경로당 회원은 35명이다.
마을 앞 들판 한가운데 있는 웃말샘은 오래 전 봉평리 주민 모두가 물을 길어다 먹었던 샘으로 아직도 주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양수기로 우물 안의 물을 다 퍼내고 돌 사이에 낀 이끼 등을 청소한다. 그래야 여름 철 들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우물물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더위도 식힐 겸 우물물 한 바가지 떠서 들이키는 그 시원함에 땡볕 더위도 잠시 잊게 된다.
샘을 아끼고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남다르다. 실생활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뿐 아니라 긴급한 일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우물은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2년 전에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 우물 위에 지붕을 만들어 세우고 뚜껑도 덮어놓는 등 정성을 기울인다.  누군가의 눈에는 수도시설이 잘 돼 있는 요즘 작은 우물 하나가 별 쓸모 없는 옛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막 마을 주민들에게는 건강을 지켜주는 약수로 더위를 식혀주는 냉수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곳이다.
사막 마을은 15년 전 상수도 시설을 갖췄으나 한두 집이 물을 쓰면 그 아랫집에 물이 안 나올 정도로 수량이 적어 지금은 집집마다 지하수를 이용한다고 한다.
마을은 그전부터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안사막 웃말에는 범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범대미 산이 있다. 그런 이유로 마주 보이는 바깥 사막에서는 개를 못 키웠다고 한다. 범대미에는 한쪽 면이 거울처럼 매끈한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마을에서 잘 보여 경치가 참 좋았으나 이제는 나무가 너무 우거져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김종현 이장은 예전에는 삼산, 동광, 중초 초등학교 학생들이 범대미(범바우)로 소풍을 많이 왔었다고 한다.
안사막에서 바깥사막을 지나 바깥말 고개를 넘어 도촌으로 넘어가면 보은어린이집이 있는 도촌 마을이 있다.
마을 안에는 산 모양이 동그랗게 생긴 동그락산이 있으며 산아래 주민들이 왕래하는 길 바로 옆에는 거무주둥이 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 당도 높은 사매기 고구마 재배
김종현 이장은 다른 마을에 비해 귀농하는 30대 젊은이들이 많아 마을을 대표하는 소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봉평리는 고구마 재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 어른들이 젊었던 시절에는 사매기(사막을 사매기라 부르기도 했다) 고구마하면 사람들이 알아줄 정도로 보은군에서는 유명했다고 한다.
찰흙과 모래가 섞인 마사토로 되어 있는 농경지는 특히 배수가 잘 돼 고구마 농사를 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춘다. 사매기 고구마는 다른 고구마에 비해 당분이 높아 먹어 본 사람들은 다들 그 맛을 못 잊는다고 한다.
이농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농사지을 사람들이 줄고 차츰 고구마가 소규모로 재배되다 보니 옛날의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달콤한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주민들이 직접 모종을 해서 재배한 사매기 고구마가 품질을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주민들에게 좋은 수입원이 돼 주었으면 좋겠다.
고구마 외에도 사업성이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등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주민들은 노력하고 있다.
김종현 이장은 도농간 자매 결연도 맺어 활발한 교류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막 마을의 가장 큰 숙원 사업은 수로 정비이다.
장마 때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은데 도랑 폭이 좁아 물이 길로 범람하고, 쌓아올린 돌이 오래돼 붕괴 위험도 있다고 한다.
올해는 가장 위험한 구간 50미터 공사 예산만 책정돼 내년에 공사할 계획이지만 전체적으로 옹벽을 쳐서 안전하게 해줬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바람이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교통이 불편한 것도 주민들에게는 애로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음력 이월 초하루 날 사막 마을 주민들은 모두 경로당에 모인다.
예전에는 이날을 농민의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경로당에 모여 즐겁게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에서 음식을 해먹으며 함께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다음 해에도 꽃은 피고 지고 농민들은 울고 웃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농민들에게 좋은 일이 더 많아져 연초에 봄을 맞이하는 봉평리 주민들이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매기 고구마를 비롯한 소득작물 재배가 좋은 결실을 맺어 발전하는 봉평리가 되었으면 한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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