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韓流 발자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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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韓流 발자취를 찾아서
  • 보은신문
  • 승인 2006.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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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은 수·시인
지난 11월12일부터 4일간, 각계 인사 34명이 일본 오사카, 나라 등지로 ‘일본속 민족사 학술탐방’에 나섰다. 이들 일행은 13일 [왕인문화협회] 창립총회를 갖고 금진호 전상공부장관을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앞으로 왕인박사의 빛나는 업적을 널리 알리는 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시인으로 홍윤기 외대교수, 문효치 국제펜클럽 회장, 정호승 시인, 조인자 시인 장은수 시인 등 한국문단 현역 시인들은 25명이 참가했다.

왕인박사 연구로 저명한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 교토산대 일본고대문화연구소장/겸직 교토시립역사자료관장) 교수의 [왕인박사의 업적]을 주제로하는 특강이 있었다. 이노우에 미쓰오 교수는 “이 왕인 묘역 성지는 일본인들이 존숭하는 왕인 박사의 거룩한 백제 문화의 터전으로 영구히 빛날 것입니다. 이 곳 왕인 묘역은 이 고장 시민들 누구나 저마다 자랑으로 여기며 모두 앞장서서 청소와 정비 등 왕인 묘역 정화에 힘쓰고 있습니다”라고 왕인 박사를 찬양해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왕인박사는 일본 최초의 정형시가(定型詩歌)인 와카(和歌) [난파진가](難波津歌)를 짓고, 인덕왕(仁德王, 5C)을 등극시키는 등 백제계 일본 고대 왕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왕인박사에 대해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백제에서 건너와 일본 문화를 일으켜 주신 은인”(1984년9월9일 독일 함브르크대학 초청 강연에서 도쿄대학 우노 세이이치 교수 연설)으로 추앙하는 일인들이 많다고 홍윤기 박사는 밝힌다.

10세기 일본 제61대 스자크천황(930∼946 재위)은 왕인박사를 찬양하며 조정의 신하들에게 ‘왕인’ 제하의 와카를 짓는 경시대회도 베풀 정도로 왕인박사의 위상은 일본 학계에서 잘 알려지고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의 왕인박사를 국내에서도 이번을 계기로 하여 앞으로 제2세 교육 등 한일 고대문화 교류 발자취의 탐방과 연구 등에 힘쓸 것을 기대한다.

교토의 ‘신라 농신 큰사당’인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에서는 나카무라 유타카(中村 陽) 궁사(宮司)의 환영 다과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일본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京都大 史學科 名譽敎授) 박사는 이 후시미이나리대사가 모시는 신라농신의 유래를 소상하게 말하며, 신라인 진이여거공(秦伊呂巨公)이 8세기에 이 사당을 세운 발자취와 더불어 교토 지역의 관개 농업 등 벼농사가 신라의 선진 농업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소상하게 밝혔다. 그런데 “이 신라농신 큰사당에서는 신라 농신을 제사 모실 뿐 아니라, 해마다 11월8일에는 [한신인장무](韓神人長舞)라는 제사춤을 공연하면서 고대 한국신을 맞이하는 큰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신인장무] 제사춤은 이 신라 큰사당과 도쿄의 황거(천황궁)에서만 거행하며, 이 제사 때의 축문에는 [한신](韓神)이라는 한국신을 초혼하는 축문이 낭창되고 있음을 우에다 박사가 힘주어 강연혔다. 축문에는 신라어라는 경상도말인 “아지매 오게 오,오,오,오, 오게”(阿知女 於介 於於於於 於介)“가 나온다는 뜻깊은 설명으로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일본 왕실의 발자취를 여실하게 살피게 했다.

회원들은 비와코호수 너머 유서 깊은 1천4백년 역사를 지켜온 샤카산(釋迦山) 백제사(百濟寺/東近江市百濟寺町323번지)도 탐방했다. “성덕태자(574∼622)의 간청으로 서기 7세기초인 서기606년에 백제인들을 위해 백제국의 범각(梵閣) ‘용운사’(龍雲寺)를 본더 창건되었다”(‘백제사 寺傳’)고 전한다. 이 고찰은 백제에서 나라땅 아스카 왕실에 와 있던 고구려 학승 혜자(惠慈) 스님 등이 창건에 참가했고, 백제 학승 혜총(惠聰) 스님이 주지직에도 있었던 유서깊은 백제 명찰이다. 한 때 자그만치 승방 6백을 헤아렸던 산상 대가람 벡제사는 일본에서 무장들이 난립했던 이른바 전국시대(1467∼1568)에 무장 오다 노부나가(1534∼·1582)가 그의 군사력에 저항하던 백제사 승병 세력에 불만을 품고 쳐들어와 모든 법당과 승방들을 불질렀다. 백제사 가람은 그 후 1650년 재건된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특히 이 사찰의 소형 청동불상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총높이 27센티)이 유명한 비불이기도 하다. “이 불상은 교토 고류지의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독같은 형식이라는데 주목된다”(불교사학자 原田伴彦)고 한다. 즉 이 불상은 고대 백제나 신라로부터 건너 온 귀중한 불상이 아닌가 한다는 것.

학술 탐방단은 그 밖에도 교토에 있는 일본왕실 사당 히라노신사 제1신전(神殿)에 제신(祭神)으로 모신 백제 제26대 성왕(523∼554 재위)의 신전을 참배했고, 나라 이카루가땅의 법륭사를 탐방하며 7세기초 백제 제27대 위덕왕(554∼598 재위)이 왜왕실에 보내준 녹나무 국보 불상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을 배례하며 뜻깊은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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